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로 꼽히는 '인플레이션 리덕션 액트'(인플레 감축법안)가 마침내 성사됐다. 당초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2조달러 규모의 '더 나은 미국재건 법안'(BBB)에 비하면 대폭 축소된 것이지만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 법안을 우여곡절 끝에 성사시켰다.

바이든 민주당이 상원에서 가결한 인플레 감축법안은 대기업 세금인상 등으로 10년간 7390억달러의 세입을 늘려 이 가운데 4330억달러를 헬스케어와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에 투자하고 3000억달러는 적자감축에 쓰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당초 구상보다 규모는 대폭 줄었지만 미국민들의 의료비와 에너지 비용을 절약하도록 지원하고 에너지 전환을 촉진해 기후변화에 대처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참패가 예상되던 바이든 민주당이 '서민물가 잡기'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성사시키면서 선거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상원에서 가결, 하원 통과도 확실

인플레 감축법안에 민주당 상원의원 50명 전원이 합의함에 따라 반년 이상 지연돼온 바이든 민주당의 대규모 패키지법안이 주말인 6일(현지시간)과 7일 연방상원에서 가결됐다. 절차표결과 본안표결에서 50대 50의 가부동수가 나와 민주당 소속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가결시켰다. 현재 여름 휴회 중인 연방하원은 12일까지 워싱턴에 다시 모여 표결할 예정인데 민주당이 다수당이란 점에서 통과가 확실해 보인다.

바이든 민주당은 지난 1년여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을 초당적 지지로 성사시키자마자 '더 나은 미국재건 법안'을 밀어붙였다. 예산조정과 관련된 법안은 상원의 60표가 아니라 단순과반인 51표로 승인할 수 있다는 미 의회 규정을 활용해 공화당의 지지 없이 민주당의 힘으로 독자가결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이런 구상에 대해 민주당 소속 조 맨친 상원의원과 크리스텐 시네마 상원의원 등 2명이 여러차례에 걸쳐 조목조목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12월 맨친 의원이 백악관과의 협상결렬을 선언하면서 더 나은 미국재건 법안은 사실상 좌초되는 듯 했다. 협상을 되살리기 위해 바이든 민주당 지도부는 당초 규모를 3조5000억달러에서 2조2000억달러로 대폭 축소하고 그 안에 담겼던 복지확대 방안 대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고도 7월 초 다시 한번 무산됐다. 지출규모를 4300억달러로 더 축소하되 대기업 세금인상과 오바마케어 정부보조 연장, 처방약값 낮추기, 에너지전환 및 기후변화 대처 방안을 담은 인플레 감축 법안으로 내용을 바꿔 이번에 성사시켰다.

미국민 의료·에너지 비용 낮춘다

인플레 감축 법안은 향후 10년간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인상과 탈세 추적, 처방약값 낮추기 등으로 7500억달러 이상의 세입을 거둬들여 4330억달러는 헬스케어와 에너지 전환에 투자하고 3000억달러는 적자감축에 쓴다는 내용이다.

우선, 640억달러를 투입해 1300만명이 이용하고 있는 ACA오바마케어의 정부보조를 2023년 1월부터 3년간 연장한다. 정부보조가 연장되지 않았다면 내년 1월 1일부터 ACA건강보험의 월 보험료가 58% 급등해 수백만명이 정부 건강보험 가입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둘째, 6500만 노년층과 장애인이 이용하는 건강보험 처방약값을 낮춘다. 상당한 의료비 절감 혜택이 예상된다. 우선 메디케어 처방약값의 본인부담금 한도가 연간 2000달러로 설정돼 이를 넘으면 내지 않아도 된다. 건강보험 이용자 86만명이 연간 900달러의 의료비를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26년부터는 10종, 2029년부터는 20종에 대한 처방약값을 최소 25% 할인 받게 된다.

셋째, 전기차를 살 때 신차는 대당 7500달러, 중고차는 대당 4000달러의 세금환급을 받게 된다. 다만 신차의 경우 연 과세소득이 개인 15만달러, 부부 30만달러 이하여야 한다. 중고차의 경우 개인 7만5000달러, 부부 15만달러 이하에 혜택이 주어진다.

대기업·부유층 세금인상

바이든 민주당은 10년간 헬스케어와 에너지 전환, 기후변화 대처에 지출할 4330억달러와 적자감축에 투입할 3000억달러 등의 재원을 대기업과 부유층의 세금인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핵심 세금인상안은 연매출 10억달러 이상인 150여개 대기업들에게 15%의 최저 법인세를 부과해 10년간 3130억달러를 더 거둬들인다는 내용이다. 또 펀드매니저와 투자매니저, 부동산 투자업자들의 이자세 감세 혜택은 현행대로 유지하는 대신, 대기업들의 자사주매입인 바이백에 1%의 세금을 물리게 된다. 이를 통해 세입을 1000억달러 이상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자세 세입은 당초 140억달러였는데 이를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대기업의 바이백에 1% 세금을 부과하면서 한해 700억달러의 세금을 더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세청(IRS) 예산을 800억달러 증액해 탈세추적을 대폭 강화하면서 향후 10년간 1000억달러 이상 추가 세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민주당이 계산한 재원마련의 총규모는 10년간 7390억달러였지만, 바이백 과세와 국세청 탈세추적을 통해 재원규모가 최소 8500억달러로 상향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간선거에 얼마나 도움될지 주목

인플레 감축 법안이 조만간 시행되더라도 미국의 물가급등을 완화하고 경기침체를 저지하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누구도 속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재원을 한꺼번에 마련해 단기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물가급등을 누그러뜨리는 직접적인 영향은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바이든 민주당이 물가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는 심리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계산 아래, 11월 8일 중간선거에서 내세울 선거용 무기를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까지 바이든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참패해 상·하원 다수당을 동시에 상실하고 바이든의 재선 도전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가지 호재로 민주당이 상원을 지키거나 거의 반분하는 선방을 할 수 있다는 신호들도 나온다. 바이든 민주당이 희망을 갖게 된 호재는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폐기하고 총기규제와 환경보호 등에 잇따라 보수적인 판결을 내려 여성 유권자와 진보진영이 하나로 결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의료비와 에너지비용을 낮추는 인플레 감축 법안을 막판에 성사시키면서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선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최근 공화당 예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 선언을 한 후보들을 적극 지원하는 전략까지 구사해왔다. 친 트럼프 극우 후보가 공화당 후보로 낙점되면 11월 본선에서 손쉽게 이길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바이든 민주당이 집권당의 중간선거 참패라는 징크스를 깨고 선방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 징크스대로 하원에서 5~50석, 상원에서 10석 안팎을 상실해 의회 다수당을 모두 잃거나 적어도 한 곳을 잃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워싱턴=한면택 특파원 hanm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