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전당대회 잇단 최저 투표율

"기득권 된 꼰대정당에 보낸 민심의 경고"

'유능한 민주당'은 안팎으로 열린 자세부터

"테레비 안 본지 한참 됐제. 하루종일 정권 욕허고, 또 한쪽은 민주당만 탓허고. 정치 이야기는 인자 징글징글허요"

7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종합터미널 부근에서 만난 택시기사 장 모(67세)씨는 지난 3월 대선 이후 TV나 라디오 대신 유튜브를 듣는다고 했다. 종일 운전하는 입장에서 '정신 사나운 소식' 대신 트로트나 가요가 훨씬 낫다는 이유에서다. 장씨는 "손님들도 뉴스보다 훨 낫다고 한다"면서 "라디오 틀어달라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안된다"고 했다. 대양택시 동료인 강 모(69세)씨는 "20대에 타지 생활 할 때도 투표는 꼭 했는데 6월에는 포기했다"고 말했다. '죽어라 찍어도 (대선에서) 톡 떨어져' 투표장 갈 맘이 나지 않았단다. 거기다 지방선거는 민주당 공천에서부터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북구 신안동 전남대 인근 상가에서 만난 전남대생 김 모(21)씨는 "민주당이 '우리당'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면서 "민주당이 광주에 뭘 해줬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의 일행 중 한 명은 "국민의힘보다 덩치만 큰 꼰대정당 아니냐"고 되물었다. 한 30대 정치인은 "6년 전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 대안이 된다 싶은 세력이 등장하면 당장이라도 돌아설 분위기"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의 모태, 어머니같은 존재"라며 매달리고 있지만 정작 거대야당 민주당에 대한 광주의 여론은 싸늘했다.

◆최저 투표율이 보낸 경고등 = 대선 등 전국단위 선거를 치른 민주당이 부활을 꾀하거나 혁신을 재다짐할 때 광주를 출발선으로 삼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잇달아 열린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광주가 민주당에 보여준 표심이 예사롭지 않았다. 3월 대선에서 광주는 81.5%로 전국 최고투표율을 기록했고, 민주당 후보(이재명) 득표율은 84.82%에 달했다. 6월 지방선거에선 투표율이 37.7%로 급전직하 했다. 전국 평균(50.9%)에 한참 뒤처졌다. 8월 전당대회 권리당원 투표율은 34.18%로 전국 평균(37.09%)보다 낮았다.

대선 패배에 따른 실망감, 경쟁없는 지역정치 구도 등 다양한 해석이 분분했지만 민주당에 대한 여론이 전과 같지 않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었다. 지방선거 직후 광주참여자치21은 논평에서 "투표율 37%는 민주당 독점 체제에서 비롯된 비민주적 정치 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진단했다. 호남 출신으로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던 이낙연 민주당 전 대표는 SNS에 "민주당은 대선을 지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방선거를 치르다 또 패배했다"면서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라고 규정했다.

◆기득권 지키기에만 열중 = 광주 국회의원을 비롯한 민주당은 통렬한 반성과 쇄신을 약속했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광주에서 발행하는 '무등일보'는 '민주당 독점이 부른 선거외면'으로 민주당에 대한 염증이 극에 달했다고 평가했다. 박지경 무등일보 편집국장은 7일 "광주시민들은 민주당이 우리정당이라는 생각이 없는데, DJ 때와 같은 당처럼 행동한다"면서 "공감이 없는 정당에 대해 희망을 갖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특히 "광주에서 민주당 간판으로 활동하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면서 "기득권에 갇혀 패거리만 키운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3번의 전당대회를 치르는 동안 최고위원에 출마한 호남 지역구 의원이 모두 탈락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김태진 전 민주당 비대위원은 "국민의당이 광주 8석을 석권했을 때가 광주정치의 전성기라고 평가하는 분들이 제법 많다"면서 "국민의당은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은 회복을 위해 힘쓰는 모습이 시민들에게 전해졌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 전 비대위원은 "가장 혁신적이어야 할 광주 민주당 안에서도 성공하려면 전국단위 활동보다는 지역위에 집중해야 살아남는 구조"라며 "내부 조직관리만 하다 시간을 다 보내는데 어떻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변화가 나타나겠나. 솔직히 6년 전보다 더 답답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제3정당에 대한 기대 = 광주가 보여준 극단적 투표율 변화를 민주당이 진짜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일한 후 광주로 내려온 한 인사는 "지역의 부정적 기류를 전달할 때마다 '설마 광주가…'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면서 "그 결과가 지방선거와 전당대회의 기권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이 호남 출신의 이른바 '올드보이' 정치인들 복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호남몫의 최고위원으로 지명한 임선숙 변호사는 "호남의 민주당의 정서가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민주당 또한 전국 정당화를 목표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정치력 있는 인물에 대한 열망 등 인식 차에서 오는 괴리감이 있다"고 평가했다.

임 최고위원은 "민생중심 정당, 특히 청년정치인의 안정적 정치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광주의 한 구청장은 "이재명 대표 취임 후 민생 위주, 실용적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힘에 부친다는 인상이 짙다"면서 "169석을 갖고도 동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전주대 임성진(행정학) 교수는 민주당이 대전환기에 부각되는 의제와 이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2016년 광주의 국민의당 돌풍은 정당 간 경쟁을 통한 호남민들의 정치개혁 열망을 담은 결과"라며 "제3당 실험이 실패한 후 그간 민주당으로 모였던 기대가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민주당 지지율이 기대 이하인 것은 민생, 개혁, 쇄신, 개발 등 다양한 의제를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안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열려있는 정당'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 의견에 대한 비상식적 배척이나 주류 입장에 대한 과도한 보호막은 '꼰대 정당'의 이미지만 강화할 뿐 이라고 했다. 김태진 전 비대위원은 "광주에서 시작한 '지방선거 청년선거구' 실험을 당 차원의 성공모델로 키워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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