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길' 취약층, 한도 30만원 대출에도 몰려

중소기업 대표 "앞이 보이지 않아 더 걱정 된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는 소위 '3고' 현상으로 한국 경제는 위기에 직면했다. 8월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하면서 한국 경제의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제2의 IMF와 금융위기를 우려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현재의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한국 경제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필요성이 커졌다. 경제 위기는 한계기업과 저소득층 등 가장 취약한 부문이 우선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기다. 정부와 기업은 장기 불황에 대비하기 위한 구조 개혁을 중장기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편집자주>

올해 9월말 20대 A씨는 담보와 보증없이 무이자로 최대 30만원을 대출해주는 '더불어사는 사람들'의 문을 두드렸다. 아르바이트를 2곳에서 하고 있지만 월 수입은 60만원. 아버지는 사업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돼 A씨 명의로 된 휴대폰을 이용하고 있지만 두 명 모두 요금을 내지 못한 상황이다. A씨는 "30만원이 너무 필요하다"며 "다른 어려우신 분들이 많겠지만 30만원이 안된다면 20만원이라도 대출해준다면 월급날 바로 갚겠다"고 호소했다.

30대 취업준비생인 B씨는 다단계 상품을 강매하고 상품가격을 대출금액에 포함시키는 일명 '다단계 대출'로 3000만원을 대출받았다. 매월 고금리 이자를 내고 원금을 일시에 납입하는 대출이지만, 결국 이자도 갚지 못하는 처지가 되자 이달 초 '더불어사는 사람들'을 찾았다. B씨는 "일용직으로 근근이 일하다가 그마저도 물량감소로 그만두게 됐다"며 "이 지옥 같은 현실에 잠시나마 숨통이 트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더불어사는 사람들'은 취약·빈곤계층의 자립지원을 위해 무이자대출을 해주는 곳으로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단체다. 연체이자도 받지 않는다. 다만 대출한도가 최대 30만원이고 1년간 매월 대출금을 분할상환해야 한다. 그 후 신용이 쌓이면 50만원, 100만원씩 한도를 늘려준다.

◆당장 생계 곤란해진 저소득층 = '더불어사는 사람들'은 이달 중순이면 누적 대출액이 20억원을 넘어선다. 기존 금융권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규모지만 대출 증가 속도가 최근 들어 급격히 빨라졌다. 2012년 1월 시작한 대출은 8년 만에 누적 10억원이 됐지만 그 후 10억원이 증가하는 데는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13일 이창호 '더불어사는 사람들' 대표는 "이런 속도면 2년 후 10억원이 늘고, 5~6년 후에는 매년 10억원 가량 대출이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3고(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시대'에 가파른 금리상승으로 이자를 감당하기 힘든 취약계층과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이 가장 먼저 위험에 직면하게 됐다. 다중채무를 짊어지고 있는 저소득층은 금리상승과 고물가로 인해 생활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심각한 경기 침체기에는 정부가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소득 불평등 해소에 나서야 한다"며 "법인세를 낮추는 게 아니라 올려서 소득 불평등 해소에 써야하고 취약계층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상승은 금융권의 대출금리에 반영돼 당장 갚아야할 이자비용을 상승시키고,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가상승은 가계의 가처분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기준금리는 계속 올라가는데 법정 최고금리는 낮아지면서 취약계층들의 대출 통로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며 "당장 생계가 곤란해진 저소득층은 1년이 아니라 한달 버티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1~3개월의 초단기 대출에 한해서만이라도 최고금리 상한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정부의 정책지원만으로는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간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며 "단기 자금에 대해서는 금리 규제를 완화해서 어려운 시기에 불법사채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돈을 빌려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태로운 한계기업과 소상공인 = 경기지역 가구제조업체 A사는 매출 추락으로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코로나 대유행 이전 150억원하던 매출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올해 예상매출은 70억원 이하로 예상된다. 물류파동으로 인한 물류비 상승과 철강 종이 등 원자재가격이 30% 이상 급등한 탓이다. A사가 더 크게 걱정하는 건 매출하락 추세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비심리가 얼어붙었고 공공조달 발주도 크게 줄어 매출이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최근 금리인상으로 비용부담은 더 커졌다. A사 대표는 "34년간 사업하고 있지만 올해처럼 힘든 해는 처음"이라며 "앞이 보이지 않아 더 걱정된다"고 전했다. 가구업계 B사 대표도 "가구업계 상황이 매우 안 좋다. 중저가 가구업체들을 중심으로 연쇄부도가 발생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대구지역에서 섬유염색업체 C사 공장가동률은 60%대로 떨어졌다. 고환율 여파로 수입하던 실 염료 등 원부자재가격이 급등한데다 스팀제조에 필요한 LNG가격이 1년 전보다 160% 가까이 오른 게 원인이다.

인천지역 포장상자 전문업체 D사는 3고 현상으로 적자가 확대되자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골판지 원자재인 라이너(표면종이)가격은 올해만 50% 가량 올랐다. 주문 물량은 30% 가까이 하락했고 판매량도 크게 줄고 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달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3%로 인상되면 4분기 연속 영업이익으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소상공인은 약 18.2%에 달하며, 영업이익이 5% 감소되는 상황까지 더해지면 약 18.6%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개인사업체(경제총조사 개인사업체 수)는 88만4186개, 한계 소상공인(중소기업기본통계의 소상공인 수)은 127만1606개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금리와 물가 변수만 고려했는데도 경영 상황이 양호한 사업자들까지 부실로 진입할 수 있다"며 "부실 및 한계 소상공인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스템을 도입하고, 특성에 따른 지원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중산층으로까지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사전적 신용상담 기능을 확대하고, 채무조정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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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김형수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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