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신뢰 바탕 기술격차 확보에 승부수 … 생태계협력 절실

한국 조선산업은 1인당 소득 3만달러 시대에도 경쟁국들과 초격차를 확보하고 세계시장 1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조선산업에 연관된 이들이 가진 공통 질문이다. 한국 조선산업은 2000년대 초반 유럽연합과 통상분쟁을 극복하고 2016년을 지나면서 수주량 기준 일본을 추월하며 중국과 세계 수주량 수위 다툼을 전개하고 있다. 조선산업은 엔진을 포함한 다양한 기자재와 선체를 조립하는 산업으로, 전통적으로 노동집약산업의 특징을 갖고 있다. 선주인 해운기업들이 경쟁사들보다 선박을 싸게 구입하는 게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에 조선소들은 기자재나 후판 등을 조립하는 인건비도 억제해야 했다. 조선산업은 고용유발효과가 크지만 1인당 소득 향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을 견디지 못한 유럽과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왔고, 한국은 후발인 중국과 수위 다툼을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탄소중립 디지털전환은 불확실성을 증폭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의 한국 조선산업이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갖춰야 할 기본요소들을 내일신문이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안광헌 현대중공업 사업대표 사장은 지난 15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바다저자·전문가와의 대화'에서 한국의 조선산업이 해운·물류산업과 함께 탄소중립, 디지털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감지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게 생존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에너지기업 셸 및 두산퓨얼셀, 하이엑시엄, DNV선급과 '선박용 연료전지 실증을 위한 컨소시엄'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선주들의 탄소중립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확보하며 미래선박시장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안 사장은 현대글로벌서비스 사장을 역임하고 현재도 현대중공업그룹에서 4개 계열사를 운영하며 세계 선주들과 다양한 모임을 갖고 있어 시장흐름에 민감하다.

조선산업은 선박을 발주하는 해운기업들의 변화로 탄소중립 디지털전환을 피할 수 없다.


안 사장은 "2021년 초까지만 해도 선박연료가 디젤유에서 LNG(액화천연가스)로 가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고, LNG 다음 단계는 좀 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안심하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LNG와 메탄올추진선까지 등장하며 급격한 변화가 왔다"고 설명했다.

올해만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LNG추진선박이 20여척 나갔고, 메탄올추진선은 내년초부터 운항할 예정이다. 순수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이 9월까지 20여척 발주됐고, 올해 연말에는 40여척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PG(액화석유가스)추진선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60여척 발주되고 있다. 이들 새로운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초대형 탱커선은 물론 중형선박인 피드선까지 전 선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안 사장은 "최근 갑자기 암모니아 선박들도 본격 계약단계에 들어갔다"며 "현대중공업은 싱가포르 선주사인 이스턴퍼시픽쉬핑(EPS)과 2025년도 인도기준으로 계약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탄소중립 미래선박 불확실성에 기술로 대응해야 = 한국은 새로운 흐름에서 일단 앞서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LNG LPG 메탄올 등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친환경선박 수주량은 2019년 535만CGT(표준선환산톤)에서 지난해 1051만CGT를 수주, 세계 친환경선박 발주량의 60% 수준을 점유하고 차지하고 있다.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에서 액화해 운송하는 LNG운반선은 올해 9월까지 발주된 115척 중 94척을 수주하며 시장을 압도했다.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영하 162도를 유지하며 액체상태로 변한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기술력이 뒷받침된 결과다.

운항비를 아끼기 위해 해운사들이 도입한 20만DWT(재화중량톤)급 이상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6m 길이 컨테이너 1만2000개를 실을 수 있는 1만2000TEU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 17만4000㎥ 이상 규모의 초대형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선박도 한국이 6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흐름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중국은 LNG선박에 이어 메탄올추진선도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머스크(덴마크) MSC(스위스)와 함께 세계 해운을 선도하고 있는 프랑스 선사 CMA CGM은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초대형 컨테이너선(1만6000TEU급) 6척을 중국에 발주했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암모니아추진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탄소화합물이 아닌 암모니아(NH3)는 LNG나 메탄올보다 탈탄소 흐름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코로나19와 탄소중립 흐름이 결합한 이후 세계 조선시장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안 대표는 "글로벌시장 추세는 5년 10년 단위가 아니라 6개월~1년 사이 상당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LNG선을 개발하고 LNG추진선을 만들어 탑재해 달라고 하는 순간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선박으로 가고 있으니 시대 변화가 빠르다, 선주들이 6개월 후 어떤 선박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대응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품질과 납기가 중요한 조선산업, 시간은 있다 = 불확실성이 커진 세계 조선시장에서 한국은 유럽연합과 일본이 가지 못했던 '1인당 소득 3만달러시대의 초격차 조선산업'을 실현할 수 있을까.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아직 시간은 있다"고 말했다. 판단근거는 '품질'과 '납기'다.

정 전 사장은 "선주입장에서 중국은 품질과 납기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며 "석탄이나 곡물을 운송하는 벌크선박이 대서양을 항해하다 두동강 나서 침몰하면 하루 뉴스로 끝나지만 초대형원유운반선이 태평양에 빠지면 원유오염 문제로 1년 뉴스가 된다"며 "초대형원유운반선이나 초대형컨테이너선 LNG선 등이 싸다고 중국에 가기 어려운 이유"라고 말했다.

품질과 납기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인건비 경쟁을 넘어 기술경쟁을 구현할 수 있는 대규모 자본투자도 따라야 한다.

정 전 사장은 "한국의 조선산업이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있는 한 3만달러시대에 생존하기 어렵다"며 "기술과 자본집약산업으로 탈바꿈하는 게 한국 조선산업이 직면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19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조선산업 초격차 확보전략'을 발표하며 한국의 조선산업이 고기술 주력선박에 대한 중국의 본격적 추격, 무탄소·자율운항 등 미래선박기술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유럽연합 일본 등 기술강국들과 경쟁을 극복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2~3년치 일감을 수주하며 시장은 회복하고 있지만 기존 인력은 이탈하고 새로운 인력은 들어오지 않고 있어 조선산업은 밑동에서 흔들리고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23일 확대된 물량에 대응하고 미래인력양성을 위해 올해 말 1만여명, 2027년까지 4만3000여명이 새롭게 추가 투입돼야 한다고 발표했다. 중소조선소들과 기자재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부족해 조선산업 생태계가 위태로운 것도 취약요소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조선산업 초격차 전략을 발표했지만 정부 정책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시대"라며 "초격차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대·중소형조선소 기자재산업 해운기업과 노동계 학계 등 조선산업을 이루고 있는 생태계가 책임을 지고 협력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연근 이경기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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