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 대구대 교수,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이탈리아가 된 영국.'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2일자에서 자조적인 이 제목을 표지로 사용하고 연유를 심층분석했다. 유럽에서 빈번한 정권 교체와 낮은 생산성으로 비판받던 이탈리아를 영국이 따라갔다는 내용이다. 영국(Britain)과 이탈리아(Italy)를 결합한 '브리탈리'(Britaly)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영국이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총리는 계속 바뀌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잦은 총리교체, 낮은 성장률도 닮은꼴

2차대전 후 건국된 이탈리아공화국의 총리 평균 재직 연한은 1년 반 정도였다. 파편화한 정당구조 때문에 총리가 빈번하게 교체되었고 정치적 불안정이 잇따랐다. 반면에 최초의 의회민주주의 국가 영국에서는 보통 4~5년에 한번씩 총선이 치러졌고 도중에 총리가 바뀌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2016년 6월 23일 국민투표에서 영국 유권자들이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를 결정한 후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달 25일 총리가 된 리시 수낙을 포함하면 6년 반 기간에 5명의 총리가 나왔다. 지난 9월 초부터는 7주 만에 3번째 총리다. 그것도 집권 보수당에서 당수가 중도에 물러나 당수 겸 총리가 바뀌었다. 수낙의 전임자 리즈 트러스는 44일 근무한 최단기 총리라는 불명예도 안았다.

영국의 낮은 생산성도 이탈리아와 닮은꼴이다. 2009년부터 10년 간 영국의 생산성 증가는 서방 선진 7개국(G7) 회원국 가운데 이탈리아에 이어 두번째로 낮았다. 낮은 규제를 자랑하던 영국이 이 정도로 생산성이 낮다는 것은 장기적·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함을 말해준다. 또 G7 가운데 2019년부터 2년간 영국의 무역성장률은 최저를 기록했다. 브렉시트로 무역의 절반을 차지하던 EU와의 교역이 감소했지만 다른 국가와의 교역으로 이를 만회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두 나라 모두 시장에 휘둘렸다. 이탈리아는 2011~2012년 유로존 경제위기 때 국채금리가 치솟는 바람에 EU가 요구한 구조개혁에 착수해야만 했다. 당시 이탈리아에 투자한 국내외 기관 투자가들은 경제상황이 악화하고 정부의 개혁의지가 부족하다고 여겨 더 높은 금리를 요구했다. 영국도 9월 말 국채금리가 치솟고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는 유사한 리스크를 겪었다. 그런데 총리가 바뀐다고 이런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까?

최초 소수인종 출신 총리 앞에 쌓인 난제

리시 수낙은 최연소(42세), 최초 소수인종 출신 총리다. 영국으로 이민을 온 인도계 부모 밑에서 성장한 그는 사립중고등학교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투자 자문회사와 헤지펀드에서도 일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경제안정과 신뢰회복을 내세웠다. 재무장관 출신이기에 경제를 제대로 운영해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전임자 트러스 총리는 9월 23일 재정충당 계획 없이 대규모 감세와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한 후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트렸다. 수낙은 트러스와 보수당 당수 선거전 때 이런 정책이 경제적 혼란을 유발할 것이라 비판했는데 이는 적확했다.

트러스 경제정책 대다수가 폐기된 후 영국 금융시장은 다소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현실을 무시했던 무모한 경제정책은 서민에게 계속 부담을 가중시킨다. 지난 3일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기준금리를 0.75%p 올렸는데 이는 33년 만의 최고치다. 이전에는 0.5%p씩 연이어 올렸지만 이번에는 인상폭이 컸다.

트러스의 정책이 번복될 때까지 2주간 영란은행은 시중에 돈을 풀었다. 국채금리가 치솟고 거래가 급감하자 이를 해결하려고 국채를 대규모로 사들여 유동성을 확대했다. 올 초부터 잇따라 금리를 인상하면서 영란은행은 보유중인 국채를 시중에 판매해 유동성을 거둬들이던 차였다. 두 자릿수 퍼센트 넘게 상승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트러스의 정책 때문에 돈 거둬들이기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오히려 돈을 풀어야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 엇박자가 크게 났다. 시중에 돈이 더 풀리고 물가상승 압력이 커지자 중앙은행은 금리를 더 많이 올려야 했다. 치솟는 물가는 고스란히 서민에게 부담이 됐고 될 것이다.

물가는 치솟고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긴다. 영란은행은 앞으로 반년 간 물가상승률이 10%가 넘고, 2023년 물가상승률도 5%가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2022년 2분기 국내총생산(GDP)을 100으로 할 경우 2025년에 가서야 겨우 그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짙은 안개가 끼어 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수낙은 관리형 총리로 경제안정에 집중할 전망이다. 원래대로 법인세를 19%에서 6%p 올리기로 했고 부자감세도 철회했다. 정부 지출을 최대한 줄인다. 원래 2년간 지원하기로 한 에너지 보조금 지급도 내년 4월까지 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에너지요금 급등으로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졌다. 물가상승률이 두자릿수가 넘지만 월급은 여기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월급생활자는 사실상 마이너스 생활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케임브리지 경제학 박사 출신에 실물 경제도 아는 콰시 콰탱 재무장관이, 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다 준 트러스의 경제정책을 왜 발표하고 시행하려 했을까? 브렉시트 강경 지지자들이 원했기 때문이다. 트러스는 지난 7월 두달간 진행된 당수 선거전에서 경쟁자 수낙을 16%p 차로 이겨 당수·총리가 됐다.

보수당 하원의원들은 수낙을 더 많이 지지했지만 평당원들은 트러스를 압도적으로 원했다. 트러스가 공약으로 내건 대규모 감세와 대폭적인 규제완화가 그들의 이익에 적합했다. 이들은 EU를 탈퇴했으니 더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다고 여겼다. 대규모 세금인하가 곧바로 경제성장으로 연결된다는 실증적인 증거가 빈약한데도 '브렉시트=규제완화'라는 이념을 앞세워 밀어붙였다.

브렉시트 여파로 계속 보수당 분열

경제는 알지만 하원의원 7년 경력밖에 없어 정치적 리더십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수낙에게 난제가 쌓여있다. 보수당 내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과 온건파들은 브렉시트 이후의 정책을 두고 계속해서 대립한다.

지난 2월 선거가 끝났지만 북아일랜드의 자치의회가 구성되지 못했다. 아무리 빨라야 내년 봄에 다시 선거가 치러질 듯하다. 친영파인 민주연합당은 EU와 합의한 의정서를 거부하며 이를 이유로 의회 구성을 반대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영토라 원칙으로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간에 통관절차를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1998년 평화협정으로 어렵게 이뤄낸 북아일랜드 평화가 다시 깨질 수 있다. 이렇기에 북아일랜드 상품 교역의 경우 EU의 단일시장에 잔류하기로 영국과 EU가 합의했다. 즉 영국 제품이 북아일랜드로 갈 때 통관을 해야 한다. 민주연합당은 이게 영국과의 연합을 훼손한다며 철폐를 주장해왔다.

내년 안에 EU규제를 전부 영국 규제로 바꾼다는 법도 현실적으로 실행이 어렵다. 그럼에도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아직도 탈퇴한 EU 규제를 따라야 하느냐고 몰아붙인다. 영국의 주요 기업들은 교역의 절반을 차지하는 EU 시장과 상이한 국내 규제를 다시 만드는 게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고 반발한다. 하지만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여전히 이념을 앞세운다.

또 늦어도 2023년 가을 스코틀랜드는 연합왕국 영국에 잔류를 묻는 제2 주민투표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브렉시트를 반대한 스코틀랜드는 원치 않는 이혼을 당했기에 2014년에 이어 다시 주민투표를 치를 태세다.

이런 여러 가지 갈등요인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영국이 이런 내분을 슬기롭게 대처해 이탈리아와 다른 경로를 밟을지 관심이 쏠린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