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권력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7일 우리나라를 방문한다. 2019년 6월에 이어 두번째다. 이번에는 홍해 연안 북쪽 타북(Tabuk) 지역에 총사업비 5000억달러(약 658조원)를 들여 서울 면적 44배 크기의 대형 스마트 신도시 네옴(Neom) 건설사업을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려놓으려 하기에 빈 살만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린다.

네옴은 새롭다는 뜻의 그리스어 네오(Neo)와 미래를 가리키는 아랍어 무스타끄발(Mustaqbal)의 합성어로 '새로운 미래'라는 말이다. 네옴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먼저 더라인(The Line)이라는 친환경 도시다. 넓게 펄쳐진 기존 도시와 달리 더라인은 길이 170㎞, 너비 200m 규모의 선과 같은 도시로, 양 옆에 500m 높이의 유리담을 쌓아 태양광으로 재생에너지를 만들어 200만명의 거주민에 공급한다.

둘째, 전세계 물동량의 13%를 담당하는 홍해에는 바다에 뜬 7㎞ 너비의 친환경 산업단지 옥사곤(Oxagon)을 짓는다. 옥사곤은 영어로 산소를 뜻하는 옥시전(oxygen)에서 따왔다. 그만큼 친환경지향임을 드러낸다. 7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9만명이 거주한다. 끝으로, 아카바만 인근 해발 1500~2000m에 이르는 산악지역에 스키장을 갖춘 관광단지 트로제나(Trojena)를 개발한다. 2029년 동계아시안게임이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사우디에 눈이 온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겠지만, 스키리조트를 지을 수 있는 기후를 가진 지역도 있다.

두바이와 본격적으로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빈 살만 왕세자는 네옴은 두바이의 아류가 아니라며 "두바이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보여주겠다"고 자신했다. 더라인 옥사곤 트로제나는 말 그대로 경천동지할 만한 대규모 친환경 주거 산업 관광단지 조성 사업이다.

그런데 주거나 산업단지와 달리 트로제나 같은 관광단지가 굳이 필요할까 의문을 갖겠지만,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하고 두바이가 엑스포를 연 것에서 보듯 이것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발전도식에서 벗어나려는 산유국의 처절한 노력이다. 돌이 있어도 석기시대가 끝났듯, 석유가 있어도 석유시대가 막을 내릴 수 있다는 경각심에서 대규모 이벤트를 개최해 세계적 관심을 끌어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화석연료 의존 탈피하려고 애쓰는 이유

영국 사업가 다시(William Knox D'Arcy)가 1908년 이란의 마스제데 솔레이만(Masjed-e Soleiman)에서 중동지역 최초의 석유를 발굴한 이래 1927년 이라크 키르쿠크의 바바 구르구르, 1932년 바레인의 자발 앗두칸, 1938년 쿠웨이트의 부르간, 사우디의 담맘 7호정 등 중동의 석유는 모두 서구가 탐사 발견 생산 유통했다. 산유국은 채굴권을 팔았고, 석유가 나오면 로열티를 받았다.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후 중동산유국은 서구로부터 자원주권을 찾아왔지만, 자원에 의존하는 지대국가(rentier-state)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경제를 활성화해 국민경제성장에 따른 세금보다는 마치 건물주가 월세에 의존하듯 서구 석유회사가 입금하는 석유판매대금이나 자원을 국유화한 후 스스로 팔아 거둬들인 에너지수출대금으로만 국가를 경영했다.

한해 예산은 다음해 예상유가에 판매량을 대입해 결정했다. 중동산유국은 원유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크기에 유가 등락폭에 따라 한해 국가경제가 롤러코스터를 탈 수밖에 없다. 국민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와는 재정건전성 측면에서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각 국가마다 불어난 국가살림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다르기에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석유 1배럴당 재정균형유가도 서로 차이가 난다. 재정에 적자가 나지 않는 최저 유가가 재정균형유가인데 이는 산유국마다 다르다.<표 참조>

다른 산업기반 없이 석유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황은 심각하다. 미국발 셰일혁명에 놀란 산유국들은 생산단가가 높은 셰일에너지 생산자를 시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생산량을 늘려 유가를 재정균형유가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다. 스스로 피를 흘리며 셰일축출작전을 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중상을 입었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은 불어나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도입했고 산업다각화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산유부국이 살 길'이라는 사실을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서야 깨달은 것이다.

왕국 체질 개선하려는 빈 살만의 꿈

빈 살만은 사우디의 석유중독증을 고치려 한다. 막대한 원유매장량을 가진 자원부국이지만 자원의 꿀물만 빨다가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과감하게 탈석유 친환경에너지로 왕국의 미래를 설계하려는 것이다. 협의를 중시해온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바로바로 명령을 내리고 확인하는 통치스타일은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여성운전 허용, 종교경찰 해산, 종교극단주의 배격 등 개혁정책으로 사우디 인구의 절반이 넘는 30대 이하 젊은층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연로하고 결정이 느린 아버지 세대의 협치 리더십으로는 왕국을 바꿀 수 없다는 절박함마저 보인다.

빈 살만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이자 아부다비 국왕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를 멘토로 삼아 역내 질서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했다. 그렇다고 빈 살만이 가는 길이 빈 자이드의 길과 같다고 봐서는 안된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자국을 향한 사랑이 깊고, 외부세력에 기대지 않고 자주적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빈 살만은 사우디의 그 어떤 왕자들보다 애국심이 강하다. 대학졸업 후 아버지인 현 국왕이 리야드 주지사였던 때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좌하며 왕국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 설계했다. 2015년 제2왕세자로 임명된 첫날 24시간 내에 국가와 관련해서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변화와 변혁의 의지가 굳건하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빈 살만이 실리콘밸리의 영웅들처럼 창의적인 방식으로 일을 한다면 사우디는 놀랍도록 무서운 속도로 새로운 왕국이 될 것이다.

역내 숙적 문제, 대미 관계 등 난제 산적

다만 역내 숙적 이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쉽게 해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연소 국방장관 시절 전격적으로 밀어붙인 예멘전쟁은 퇴로가 보이지 않은 채 여전히 진행중이다. 후시반군의 드론은 이미 사우디 유전시설을 폭파한 바 있다. 네옴의 더라인에 폭격용 드론이 접근한다면 막을 수 있을까? 또 친중·친러 행보, 카슈끄지 살해사건, 원유증산 이견 등으로 냉랭한 대미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지도 사우디 안보에 중차대한 이슈다.

미국에 기대지 않고 페르시아만 건너 이란의 미사일로부터 네옴과 아람코를 방어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면 큰 일이다. 위기가 현실화된다면 탈화석연료 정책이 성공하기는커녕 화석연료 보물창고가 화염에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보없는 경제는 불가능한 법. 역내 적성국이나 적대세력과 차가운 평화를 이루거나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변혁의 발길도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빈 살만이 꿈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를 응원한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