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 재출마를 선언한 지 사흘 만에 조 바이든 행정부의 연방법무부가 특별검사를 임명해 형사범죄 혐의를 수사하겠다고 나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중간선거에서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둔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복귀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전에 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당 진영이 친트럼프와 반트럼프로 분열돼 트럼프 보호에 얼마나 일치단결할지 불투명하다. 하지만 바이든 민주당의 총공세는 맞받아칠 것으로 보여 법적·정치적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 진영이 트럼프를 내세워야 백악관 탈환이 가능하다고 볼지, 아니면 분열과 패배를 초래하는 트럼프 대신 새로운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고 볼지 관심사다. 어느 의견이 우세해지느냐에 따라 공화당의 차기대선 후보가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트럼프 재출마 선언 뒤 특별검사 지명

메릭 갈랜드 연방법무부장관은 18일(현지시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불복을 조장한 1.6 의사당 점거사태와 기밀문건 방치 등 형사범죄 혐의를 수사할 특별검사에 잭 스미스 검사장을 지명했다. 스미스 특별검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0년 대선결과를 뒤집기 위해 1월 6일 의사당 점거를 조장했는지, 퇴임하며 기밀문건들을 마러라고로 가져가 방치했는지 등 두가지 중대 형사범죄 혐의를 집중 수사하게 된다.

스미스 특별검사는 성명을 통해 "전직 대통령의 두가지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지연시키지 않겠다"며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스미스 특별검사는 2010~2015년 연방법무부 부서장으로 30명의 연방검사들을 지휘하며 공직부패와 선거사범을 집중 수사한 바 있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옛 유고연방의 코소보 전쟁범죄 혐의 수사의 검사장을 맡았다.

워싱턴포스트는 19일 "갈랜드 장관은 당초 특별검사 지명을 선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 재출마를 선언하고 현직 대통령인 바이든도 재선에 뛰어들 채비를 하자 특별검사 임명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신중하지만 담대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연방대법관 후보에 올랐으나 트럼프 반대로 무산됐던 갈랜드 장관은 현재 연방검찰과 연방수사국(FBI) 수사만으로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형사범죄혐의 입증이 충분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 차기대선 대결구도가 본격화하면서 "법무부 주도의 트럼프 수사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특별검사를 임명하게 됐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스미스 특검은 예전의 특별검사들과는 달리 워싱턴 정치권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세 없는 로우프로파일 인사로 꼽힌다. 최근 트럼프의 러시아 내통의혹 스캔들을 수사했던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는 FBI국장을 10년 역임한 유명인사였다. 클린턴의 화이트워터 스캔들과 르윈스키 스캔들을 수사했던 켄 스타 특별검사 또한 임명 전부터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었다.

반면 스미스 특검은 15년 이상 연방검사로 일한 검사장 출신이지만 옛 동료들 외에는 잘 알지 못하는 인물로 분류된다. 하지만 옛 동료들에 따르면, 그는 연방법무부에서 30명의 연방검사를 지휘하며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존 에드워즈 후보의 선거자금 유용 스캔들을 매우 공격적이고 신속하게 수사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워싱턴포스트는 "스미스 특별검사가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 사건을 질질 끌거나 두리뭉술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공화당 내부분열 직면

대선 재출마 선언을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스미스 특검의 수사망을 뚫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에 앞서 공화당 진영의 내부분열이라는 장벽부터 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화당 진영에서는 이번 중간선거 대승 실패의 주된 요인으로 트럼프를 꼽는 의견이 많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공화당 후보들 중 2020년 대선결과를 부정하는 이른바 '대선 불복론자'(election denier)들이 이번 선거에서 절반 가까이 당선됐다. 공화당 전체 후보 561명의 51%인 291명이 대선 불복자들이고 이 중 절반인 150여명이 당선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접전지에 나섰던 대선 불복자 48명 중 펜실베이니아 상원선거의 오즈 후보, 네바다의 랙설트 후보, 애리조나의 매스터스 후보 등 트럼프가 열성적으로 지지한 후보는 모두 낙선했다. 12월 6일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조지아의 허셸 워커 후보도 승산이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이 대승을 거둬온 역대 중간선거와 달리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압승에 실패했다. 이는 트럼프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유권자들의 공포와 연방대법원이 50년 만에 박탈한 여성낙태권 때문이란 점을 상당수 공화당원들도 인정한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재입성에 앞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통과할 수 있느냐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공화당 진영의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당을 분열시켜 망치고 결국 선거패배를 초래한 트럼프를 계속 내세울지, 아니면 트럼프의 그림자를 물리치고 새 인물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공화당 진영의 절반 정도는 트럼프의 재출마를 강력 지지하거나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같은 강경파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 백악관 재입성을 위해 전폭 지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반면 트럼프 복귀를 막으려는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4년간 트럼프를 보좌했다가 1월 6일 의사당 점거를 계기로 돌아선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은 최근 ABC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다시 선출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건 미국민들이 결정할 문제지만 공화당에는 그보다 더 나은 선택지가 많다"며 트럼프 재출마를 저지하는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국의 사위'로 불리는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도 "트럼프는 매번 이기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우리는 매번 지고 있다는 데 신물이 났다"며 "그는 끝난 사람"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트럼프 대 디샌티스' 구도 분위기

이번 중간선거를 계기로 공화당 진영에선 '새 인물을 내세워야 공화당이 살고 백악관 탈환도 가능하다'는 의견이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약 20%p 차이로 압승해 재선에 성공한 플로리다의 론 디샌티스 주지사가 트럼프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올해 44세인 디샌티스 주지사가 76세에 대통령까지 지낸 트럼프의 맞수가 될 수 있을지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늘어날수록 새 인물에 대한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미 언론들은 디샌티스 주지사가 공화당원들이 삼고초려하는 대안으로 등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