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0일 앞당겨 9월에 제출했지만 국회 심사는 두 달 지난 11월부터

정기국회땐 먼저 국정감사에 총력 쏟은 뒤 예산심사엔 소극적으로

'국감은 정기국회 전 개최' 법 규정 있지만 한번도 지켜진 적 없어

예산안 심사가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그 첫 단추인 상임위 예비심사부터 부실심사가 시작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기재위 회의실 의원석에 놓인 예산안 자료l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석에 예산안 자료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27일 국회 예산결산특위 관계자는 "수천 개의 사업을 제대로 검토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특히 물리적으로 국정감사 이후 며칠 만에 그 많은 사업들을 보고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부가 내놓은 639조원 예산안에는 8000개 내외의 사업들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할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국회는 국가재정법을 고쳐 정부의 예산안 제출시한은 10월 2일에서 9월 2일까지 당겨놨다. 2014년까지 회계연도 시작 120일전(약 4개월)까지 제출했지만 국회 선진화법의 일환으로 2015년부터 3년 동안 10일씩 줄여 2017년부터는 90일전(약 3개월)까지 국회에 보고하게 만들었다. 헌법에서 규정한 '90일 이전'을 넘어서는 파격적인 법 개정이었다. 예산안 심사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가 먹힌 것이다.

하지만 전문성이 있는 상임위 심사는 나아지지 않은 채 '부실 심사의 시작'으로 낙인 찍혔다.

법률상 심사 가능기간이 늘어나긴 했지만 현실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첫 장애물은 예산심사 앞에 놓여있는 국정감사다. 정기국회가 시작하는 9월뿐만 아니라 10월까지는 국정감사의 시간이다. 9월은 준비기간이고 10월은 빡빡한 국정감사 일정을 소화해내야 한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2조에서는 '국회는 국정전반에 관하여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매년 정기회 집회일 이전에 국정감사 시작일부터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감사를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켜진 적이 없다. '다만, 본회의 의결로 정기회 기간 중에 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이 관행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정기국회 100일 중 3분의 2 가량을 국정감사에 투입하는 등 왜곡된 운영이 예산안 심사를 부실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통과 못해도 괜찮은 상임위 심사 = 상임위 심사가 예산안 심사 전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023년도 예산안'은 각 상임위에 9월 2일에 회부됐지만 대부분 상임위는 두 달 이상 지난 11월 7일부터 본격적으로 상정하기 시작했다. 상임위 심사는 간단하게 이뤄졌다. 예산안을 예결소위로 넘기는 전체회의에 이어 2~3번의 예결소위로 통과시킨 후 다시 전체회의를 열어 예결위로 넘겼다. 운영위와 교육위는 전체회의에서 통과하지 못했다. 상임위에서 통과되지 않더라도 예산안 심사엔 큰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중복상임위인 정보위를 제외한 모든 상임위가 예비심사 시한을 맞추지 못했다. 국회의장은 "예비심사기간을 2022년 11월 7일 오전 9시 30분까지로 지정"했다. 11월 7일에 통과시킨 외교통일위 역시 시한 내에 처리하지는 못했다. 이는 예결위 심사를 진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12월 2일까지는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그렇지 못할 경우 이날 본회의에 자동상정해야 하므로 예결위 심사를 위한 최소한의 시간인 20일 정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상임위의 심사결과는 법적인 효력이 상실됐다.

◆예결위 심사에 맞춘 '상임위 심사기한' = 국회법에서는 상임위 예산안 심사 의견은 시한 내에 통과된 부분만 수용하게 돼 있다. 국회법 84조에서는 '의장은 예산안과 결산을 소관위원회에 회보할 때에서는 심사기간을 정할 수 있으며 상임위가 이유 없이 그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아니한 때에는 이를 바로 예결위에 회부할 수 있다'고 했다. 의장이 정한 예산안 심사기한을 넘겨 통과된 상임위 심사결과는 반영할 의무가 없어지는 셈이다. '예산결산특위는 소속 상임위의 예비심사내용을 존중해야 하며 소관 상임위에서 삭감한 세출 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액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경우에는 소관 상임위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국회법 규정 자체가 무력화된다는 얘기다. 물론 관행적으로 심사시한을 넘긴 상임위 심사결과를 반영하지만 이는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 예산심사 과정에서의 상임위의 역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 예결위 고위 관계자는 "정기국회 내에 대부분의 시간을 국감 등에 사용하다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고 예산안 심사에서 상임위의 권한이나 역할이 그리 크지 않다"면서 "그러다보니 의원들이 예산안 심사에 많은 에너지를 쓰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예견된 부실 예산심사"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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