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 편성 단계부터 입법부와 정보 공유

"예산 재원배분, 예산요구서 미리 보고" 제안

결산 빨리 끝내고 국정감사는 정기국회 이전에

법안 낸 김진표 의장 "여야 원내대표 꽤 많은 공감"

부실한 예산심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충분한 시간과 정보를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경제통'인 김진표 국회의장은 취임일성으로 '예산심의 강화'를 내놨다. 헌법에서 적시한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역시 헌법에서 보장한 국회의 예산 심의권과 확정권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김 의장이 지난 9월에 내놓은 국가재정법과 국회법 개정안은 이러한 고민 가운데 나왔다.

30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김 의장은 국회법과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으며 "국회의 재정권한과 예산심의권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국정감사와 결산심사를 조기에 실시하고 시정 요구된 사항을 다음 회계연도 예산안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국회가 국가적 재원 배분의 방향설정 단계부터 관련 정보를 파악하고 검토할 수 있도록 하고 결산심사 결과의 예산안 반영을 의무화하여 재정권한의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여당 불참 | 지난달 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국무조정실 등 정무위 소관 예산안을 심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4월까지 재원배분방안을 예결위에 보고하라" = 김 의장은 정부의 예산편성 초기단계부터 국회가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다. 4월말까지 분야별 예산배분 방안을 국회 예결위에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법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각 부처의 장관에게 각 부처별 지출한도를 명시한 예산안 편성지침을 통보하도록 돼 있고 이 예산안 편성지침을 국회 예결위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국회로 제출되는 예산안 편성지침에는 중앙 부처별 지출한도가 빠져 있다. 17대 국회 예결위에 미리 보고되기도 했던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 추진상황 및 2006년 예산안 편성방향 보고(2005년 3월 16일), 국가재정운용계획안 보고(2005년 5월 24일, 25일, 26일), 2007년도 예산안 편성방향보고 및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 추진상황 보고(2006년 3월 29일)는 이후 사라졌다.

정치개혁특위 박태형 수석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예산안과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각 분야별 재원배분에 국회가 사실상 관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거시적 조정과 심사를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고 촉박한 예산안 심의기간 동안 세부사업 위주의 미시적 심사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매년 4월 30일까지 예결특위에 다음연도의 분야별 재원배분방안을 보고하도록 해 국회가 재원배분의 방향 설정 단계부터 관련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 국회가 분야별 재원배분 방안의 타당성과 적정성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했다.


기재부는 사실상 사전심사로 보고 헌법상 보장된 예산안 편성권 침해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가 심의하거나 의결하는 게 아닌 만큼 정부 결정에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만큼 예산편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게 전문위원실의 의견이다.

◆5월 이전에 부처 예산요구서를 국회 보고 = 또 김 의장은 각 부처가 매년 5월 31일까지 기재부장관에게 보내는 예산요구서를 미리 소관상임위에 보고하고 이에 대한 상임위 의견을 존중하도록 하는 내용도 제안했다. 국가재정법에서는 예산요구서 보고는 강제하고 있지만 의견 반영 절차는 빠져 있다. 기재부는 이 또한 예산편성권 침해 가능성과 함께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우려했다. 하지만 검토보고서는 "국회 상임위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한 것은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며 "소관 상임위의 의견은 예산안 편성의 참고사항으로 정부의 예산안 편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결산심사를 7월 15일까지 마무리 = 결산 심사와 국정감사 일정을 앞당겨 예산심사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국가재정법은 정부 결산보고서 국회 제출기한을 5월 31일로 잡고 있고 국회법은 정기회 개회 전에 결산심사를 끝내도록 하고 있다. 김 의장의 개정안은 결산보고서를 5월 15일까지 내고 7월 15일까지는 심사를 마치도록 했다.

박 수석전문위원은 "연례적으로 8월에 결산을 상정해 심사를 진행하고 있고 이때는 이미 예산안 편성절차가 마무리돼 결산을 심의, 의결해도 다음연도 예산안 편성때 국회 결산심사 결과를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국회 "국정기회 이전 국정감사 실시" = 국가재정법에 맞춰 국정감사를 정기회(9월 시작)이전에 마무리하는 것 역시 충실한 예산안 심의를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국회가 국회법 5조2에 따라 작성한 '2023년도 국회운영기본 일정'을 보면 '2023년 국회운영 기본방향'에서 "정기회 이전 국정감사 실시로 예산안 심의기간을 충분히 확보하겠다"고 했다.

정기회 일정에 국정감사를 넣지 않고 '매년 정기회 집회일 이전에 30일 이내의 기간을 정해 실시한다'는 의무 조항을 강조했다.

김 의장과 함께 국가재정법, 국회법, 국회예산정책처법 개정안을 낸 맹성규 의원은 "다부처에 걸친 사업들이 효과적으로 조정, 조율되지 못하고 있고 국회 심의과정에서도 8800여개에 이르는 지출사업을 세세히 심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개별 상임위의 온정주의 관행, 예결위가 1년 한시 특위로 운영돼 연속성·전문성의 부족문제, 심사 기간의 물리적 한계 등으로 예산심사 과정에서 사실상 국회의 역할이 제한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결위 상임위화와 함께 독립상임위로 분리할 것을 제안했다.

김 의장은 "예산편성 단계별로 국회 상임위와 예결위가 의견을 미리 주고 정부가 이를 참고해 예산을 편성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며 "여야 원내대표와 꽤 많은 공감이 이뤄져 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예견된 부실 예산심사"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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