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장 1차 책임, 용산구청장 구속

재난안전기본법·중대재해법 처벌 대상

이태원참사 부실 대응과 진상규명에 나선 경찰 특수본은 지난 3일 박희영 서울용산구청장을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이번 참사의 1차적 책임이 기초지방자치단체인 용산구청에 있다고 판단, 지난달 26일 박 구청장을 구속한데 이어 이날 사건을 검찰에 넘긴 것이다.


전문가들은 박 구청장 구속이 재난안전 예방·대비와 관련, 기초 단체장 책임에 대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주최측이 없는 행사도 재난안전기본법을 적용, 안전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재난대책본부를 구성·운영해야 할 책임이 지자체장에게 있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시 등 광역지자체와 행안부에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 있다. 서울 자치구 관계자들 사이에선 "재난 대비, 재난관계기관 소집, 출동 요청 등 모든 권한이 광역에 있는데 기초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초단체장, 발등의 불 = 특수본 수사에 대해 '꼬리 자르기'란 비판이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특수본은 행안부와 서울시가 이태원동에 한정된 재난안전관리 기본계획을 세울 의무가 없다고 결론을 냈고 이에 따라 두 기관에 재난 대응 책임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기초단체장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재난에 대한 국가기관의 대비·대응 의무 등을 규정한 재난안전기본법 상 재난발생 지역 기초단체장에 1차 책임을 묻게 됐기 때문이다.

단체장들은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기도 하다. 최근 제2경인고속도로 과천 갈현고가교에서 발생한 방음터널 화재 사고가 사례로 꼽힌다. 부실공사가 입증되면 공사업체가 처벌 받겠지만 공사 발주나 시설 관리와 관련, 해당 단체장 책임이 드러날 경우 중대시민재해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새로운 위험 곳곳에 도사려 = 전문가들은 시민 안전은 물론 단체장 개인을 위해서도 재난안전 대비가 지자체장 최우선 책무로 떠올랐다고 지적한다. 이태원참사 같은 인파관리 사고 뿐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재난이 터질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다. 최근 방음터널 화재와 같은 터널과 지하도 사고가 특히 위험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터널과 지하도로 사고가 문제되는 것은 대형 재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다 상대적으로 안전 대비가 소홀하기 때문이다. 밀폐된 공간이라 사고 발생 시 소방의 접근이 어렵고 사람들이 오갈 곳이 없기 때문에 피해를 키운다. 재난 대비 훈련과 최신 기술 투입이 부족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1999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몽블랑 터널 화재가 시사점을 준다. 화재 발생 당시 이탈리아 쪽 출구에서 연기제거 팬을 돌렸지만 방향을 반대로 돌린 탓에 화염에 강한 공기를 공급, 41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을 입었다.

국내 대형 터널 사고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05년 11월엔 대구달성터널에서 추진체와 함께 운반 중이던 공군 미사일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5년엔 중부고속도로 상주터널에서 시너를 실은 차가 폭발했다.

안전시설도 엉망이다. 강원 춘천시 신북읍과 화천군 간동면을 잇는 배후령 터널은 길이가 5㎞가 넘지만 한쪽 차선에 아예 비상주차대가 없다. 서울 한복판 남산 1호터널도 1.5㎞가 넘지만 비상주차대가 설치돼 있지 않다.

지난달 30일 사고가 났던 방음터널은 국토부가 관리하는 47개 방음터널 중 하나다. 하지만 지자체가 관리하는 방음터널만해도 전국에 150여곳이 넘는다. 지자체장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셈이다.

◆자치단체장 재난안전 교육 '필수' =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지하도로에서 1명 이상이 사망하는 사고가 나면 중대시민재해가 적용, 단체장이 최대 징역 1년, 벌금 10억원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담당직원의 경우 시설물안전에 대한 특별법이 적용되면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며 "지자체와 단체장들이 재난 관리에 지나치게 안이하다"고 지적한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당일 현장을 분주히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구속에까지 이른 것은 현장에 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것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단체장은 재난이 발생할 경우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으로 현장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도록 돼있다. 사고 발생 후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상황을 전파하는 것과 동시에 상황회의를 주재해 현장상황을 총괄지휘하는 역할도 해야한다.

재난안전기본법에서는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주체로 국가(중앙정부)와 함께 지방자치단체를 지목한다.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임무를 맡은 단체장들은 스스로 배우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재난안전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이 때문에 행안부 등이 나서 단체장들에 대한 재난안전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많은 기초 단체장들이 "단체장의 책무가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고 이야기 하는 것도 재난 책임자로서 단체장이 할 일을 모르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새로 선출된 단체장은 전체 단체장(광역 17명, 기초 226명) 가운데 무려 163명(광역 13명, 기초 159명)에 달한다. 재난안전 대비에 대한 단체장 책무를 배울 기회가 없던 이들이 전체의 67%나 되는 것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단체장들이 재난 대비에 관심과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물론 취임 후 가장 우선적으로 재난안전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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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형 홍범택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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