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만에 54% 폭락한 단지도 등장

깡통전세 급증, 혈세로 막아야할 상황

"'전세사기' 이어 '깡통전세' 덮친다" 에서 이어짐

최근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우려 등의 여파로 아파트 가격이 빠르게 하락 중이다. 연간 누적 하락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의 2배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는 6.47% 떨어졌다. 전월 하락 폭(-4.55%)보다 확대된 것은 물론 2006년 2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16년 9개월 만에 최대 하락이다. 실거래가지수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실제 거래 계약이 신고된 사례만 취합해 지수를 작성하기 때문에 시세와 근접한 통계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1월 실거래가지수 누적 하락률은 18.86%다. 계약 이후 30일 이내 신고하면 되기 때문에 12월 실거래가지수는 최종 집계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12월 잠정치(2.95%)까지 고려하면 지난해 누적 하락률은 20%를 넘는다. 과거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지수가 가장 크게 떨어진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2008년(10.21%)이다.

주택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서울 잠실의 한 부동산에 '초급매 상담 문구 환영' 문구가 걸려있다. 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부동산원 관계자는 "고금리에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절대 거래량이 줄어든 가운데 직전 거래가보다 하락 거래가 늘면서 실거래가를 끌어내렸다"고 설명했다.

◆서울·수도권도 자유롭지 못해 = 가파른 집값 하락은 곳곳에서 '깡통전세'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지난해 매매된 전국 아파트 9863곳 중 2244곳(23%)이 기존 최고 전셋값보다 낮은 가격에 팔렸다. 산술적으로만 해석하면 아파트를 매각해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아파트가 4채 중 1채에 달한다느 얘기다. 이 비율은 지난해 2분기(8%)에 비해 4분기(39%)에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돼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수도권도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로 인천 미추홀구 주안더월드스테이트 전용 84㎡는 2021년 12월에 전세 4억5000만원으로 거래됐지만 지난해 3억5000만원에 팔렸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 효성해링턴플레이스 전용 84㎡는 지난해 5월 5억4500만원에 전세 거래됐지만 같은 해 12월 5억500만원에 팔렸다. 집값이 전세보증금보다 낮아지는 데에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전세 물건 1년새 75% 증가 = 주택가격 하락과 함께 전세가도 빠르게 하락하면서 깡통전세 증가에 기름을 붓고 있다. 계약이 만료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지만 전세가 하락으로 여윳돈이 없는 집주인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아파트동향'에 따르면 1월 2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전주 대비 1.15% 하락했다. 지난해 6월 13일(0.01%) 하락 전환한 뒤 30주째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61.2를 기록하며 지난해 6월 6일(95.0) 이후 지수 1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전세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지수가 이보다 낮으면 전세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진 것을 의미한다.

임차인 우위시장에서 전세가격 추가 하락 기대가 커지면서 호가 하향 조정과 급매 거래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전셋값 하락의 원인으로 물량 증가를 꼽는다. 물론 물량 증가의 배경에는 수요 감소도 한몫을 한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19일 현재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5만5034건으로 조사됐다. 1년 전 전세물량(3만1386건)보다 75.3%(2만3648건)나 증가했다.

KB부동산의 '월간주택가격동향 시계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보증금은 6억3694만원이었다. 1년 전 평균 전세보증금(6억6614만원) 대비 4.4%(2920만원) 떨어졌다. 일부 권역에서는 폭락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에 위치한 래미안옥수리버젠 전용면적 59㎡가 지난 14일 6억1740만원에 전세로 거래됐다. 2021년 5월 최고가(13억5700만원)에 비해 7억3960만원(54%)이 하락했다.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상계주공7단지는 지난해 12월 전용면적 79㎡가 3억원에 전세로 거래됐다. 지난해 7월 최고가(5억원) 대비 40%(2억원)나 떨어졌다.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레이크팰리스'는 최근 전용면적 116㎡가 10억3950만원에 전세로 거래됐다. 지난해 6월 최고가(19억5000만원) 대비 9억1050만원(46%)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전세시장 약세가 지속될 경우 전세 계약 만기가 지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입주물량 증가 = 이런 가운데 올해 입주물량 증가도 예정돼 있어 하락세가 더 가팔라질 수 있다.

올해 전국 총 554개 단지에서 35만2031가구(임대 포함)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는 작년보다 5.8% 증가한 규모다. 송파구 A공인중개사 사무소 대표는 "대규모 입주에 따른 전세가 하락은 불가피하기에 물량이 쏟아지면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면서 "지난 2018년 송파구에서 1만가구에 육박하는 헬리오시티가 입주했을 때도 강남·송파·강동구는 물론 수도권 일부까지 전세가 하락으로 몸살을 겪은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월 입주 예정인 강남구 개포동 '개포자이프레지던스'(개포주공4단지 재건축)다. 전세 물량이 많다보니 지난해 13억까지 치솟던 전용 59㎡ 전셋값이 최근 6억원대로 급락했다.

많은 전세 물량은 주변 아파트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와 가까운 '디에이치아너힐즈' 전용 84㎡는 지난해 6월 17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전세 거래가는 11억5000만원으로 6억원 하락했다. 또 다른 주변 단지인 레미안블레스티지의 전용 84㎡는 18일 8억원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10월 26일 최고가(18억3000만원)에 비하면 10억3000만원(56%)이 떨어졌다.

집주인들의 부채비율이 높다는 것도 깡통전세를 증가시킬 요인으로 꼽힌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허그)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8월부터 작년 11월까지 보증 보험에 가입한 국내 개인·법인 임대 사업자의 임대주택 70만9206가구 중 38만2991가구(54.0%)는 집주인 부채비율이 8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부채비율은 주택의 주택담보대출 등 담보권 설정 금액과 전세 보증금을 합한 금액을 집값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해 산출한 비율 값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 비율이 80%를 넘게 되면 지금과 같은 집값 하락기에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커져 '깡통주택'으로 간주한다.

지역별로는 울산(68.5%), 광주(63.2%), 경기(60.6%), 인천(60.0%), 서울(59.1%) 등이 평균 대비 부채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깡통전세 급증이 국민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허그에 따르면 지난 2021년 5790억원이었던 사고금액은 지난해 1조1726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허그의 대위변제액도 지난 2021년 5040억원에서 지난해 9241억원으로 증가했다. 깡통주택 증가와 전세사기 우려가 커지고 보증보험 가입자가 증가하면서 보험 발급 금액도 55조4510억원으로 전년 대비 3조9000억원가량 증가했다.

깡통전세 도미노 현상이 발생하면 결국 혈세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 대책 마련 시급 = 사정이 어렵다보니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 세입자들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그보증 강화와 함께 깡통전세 위험 주택 매입을 통한 공공임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동수 서울세입자협회 대표는 "우선 정부가 연착륙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깡통전세 위기 속에서 그나마 세입자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허그의 보증 강화가 사실상 유일한 연착륙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깡통전세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자산가치가 낮은 빌라 등 저층 주거지나 나홀로 아파트 등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이들 주택은 정부가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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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박광철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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