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2월 13일 이란 라이시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수행한 정부 인사 면면을 보면 이란이 중국과의 협력에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외교장관을 비롯해 장관만 무려 6명(도로와 도시개발부, 석유부, 산업광산통상부, 농업부, 경제금융부)에 중앙은행장, 대통령실장, 관계부처 차관들이 모두 대통령을 수행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중국행은 미국 트럼프행정부가 이란에 재부과한 경제제재로 어려워진 경제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 이란과 안전보장상임이사 5개국+독일이 체결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이 이란의 핵개발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며 불승인한 데 이어 2018년 5월엔 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그리고 이란에 핵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담은 새로운 협약을 다시 체결하자고 요구하면서 대이란 '최대 압박' 경제제재를 부과했다.

제재가 이어지면서 이란은 경제와 국제관계 활로를 유라시아에서 찾고자 노력해왔다.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키르기스스탄이 회원국인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과 2018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막힌 경제 숨통이 조금이나마 트였다. 또 2022년 9월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인 상하이협력기구(SCO)의 9번째 정식회원국 승격 절차를 밟았다.

올해 4월 공식적으로 정회원국이 되면 이란은 경제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플러스 효과를 누릴 것이다. 2021년 이란과 SCO 회원국 간 무역액이 6510억달러를 넘어섰는데, 정회원국이 되면 제재 해제를 위해 미국이나 유럽에 양보해야 할 필요가 줄어들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서방과 러시아가 편이 갈라진 상태에서 이란은 한층 더 러시아 편에 설 수밖에 없다. 트럼프행정부 당시 페르시아만에서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자 러시아는 '미국의 도발에 굴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이란을 응원하기도 했다. 2019년 6월 페르시아만에서 이란 해군이 미군의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를 격추하면서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극심한 단계로 치닫고 있을 때 이란은 옵서버 자격으로 SCO 회의에 참석해 회원국의 지지를 얻어냈는데, 이제는 정회원국으로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하며 예전보다 더 쉽게 친이란 반미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이 유라시아의 EAEU, SCO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은 미국의 제재가 풀릴 조짐을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사실 러시아나 중국은 이란의 친서방적인 성향을 늘 염려했다. 기본적으로 이란이 러시아나 중국보다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을 더 좋은 경제협력 파트너로 여기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행정부의 경제제재 재부과, 솔레이마니 사령관 폭살 등 예측하기 어려웠던 사건의 여파로 이란이 궁지에 몰리면서 러시아와 중국에 다가서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군사적으로는 러시아에, 경제제재의 여파로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한층 더 깊게 기울어졌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이란의 유라시아행은 준비가 부족한 여정이다.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 이란 주변 유라시아 국가는 이란이 혁명을 수출하려 한다고 경계했다. 타지키스탄이 대표적인 예다. 타지키스탄은 이란과 페르시아어로 서로 통하는 나라지만,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5년(1992~1997년) 간 내전을 벌였던 이슬람주의자들의 '이슬람부흥당'을 이란이 지원하는 바람에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타지키스탄정부는 방송에서 '이란이 내전 당시 반군을 도와 유력 정치인들을 암살하고, 타지키스탄정부를 돕던 러시아군을 공격했다'고 비난했다. 이란이 SCO 정회원국이 되면 안된다며 타지키스탄이 줄곧 반대표를 행사한 이유다.

북쪽 이웃국 아제르바이잔과도 사이가 좋지 않다.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이스라엘에 대사관을 개설하기로 하고 대사까지 임명했다. 반이스라엘 정책을 펴는 이란이 좋아할 리 없다. 이스라엘이 아제르바이잔의 공군기지를 거점으로 이란 공격에 나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댄 이란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다. 이란은 자국민의 약 20%를 차지하는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아제르바이잔 민족주의에 동화해 이란에서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아제르바이잔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약하면 이란 내 아제르바이잔 민족주의자들이 아제르바이잔과 민족적 통일을 염원하면서 분리독립 운동을 펼 수도 있다고 본다. 이란은 아제르바이잔을 견제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의 이웃국이자 맞수인 아르메니아를 지원한다.

이란은 분명 유라시아 국가들과 정치·경제·문화적 관계를 발전시켜 지역 주도권을 잡으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도 미국의 제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가야 하는 절박한 심정이다. EAEU나 SCO 같은 유라시아 지역 기구에 참여해 지역 국가와 거래를 다양하게 하며 양자와 다자 관계를 강화해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와 봉쇄정책을 무력화하려 한다. 또 러시아, 중국과 함께 미국이 유라시아 지역에 군사기지를 세우지 못하도록 막는다.

히잡시위에 중국 선물보따리 절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정신이 없는 현 상황에서 이란이 경제적으로 기댈 곳은 중국이다. 이란은 중국의 세계 경영전략인 일대일로를 활용해 철로와 도로를 연결하면서 자국을 중앙아시아 중국 인도로 잇고, 카프카스 남부지역과 유럽으로 뻗어나가고자 한다. 지역의 에너지 허브로 자리매김해 궁극적으로 천연가스와 원유를 유럽에 수출하고, 파이프라인을 깔아 중앙아시아와 카스피해를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으로 연결하려 한다. 제재 때문에 이러한 야심을 펼치기는 어렵지만, 중국과 경협을 활성화해 제재를 버텨내는 것이 급선무다.

이번 방중에서 이란은 지난 2021년 중국과 맺은 포괄적 장기 협력을 구체화하려고 애쓸 것이다. 이란이 안정적으로 원유를 공급하고 중국은 25년간 4000억달러를 투자한다는 내용의 협약이다. 그러나 2021년의 약속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미지수다. 사실 중국과의 협력은 2016년 시진핑 주석의 이란 방문 때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제안했으나 중국은 침묵했다. 그러다가 미중 갈등이 달아오르자 미국이 보란듯이 맺은 것이 바로 25년 협력이다. 당시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외교를 펼치고 있던 이란의 자리프 외교장관 역시 국내 비판 여론을 피하고자 중국과 협정에 서명했다는 평가도 있다. 협정의 서명자가 양국 외교장관이라는 점 역시 약속의 중량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부정적인 시각에도 이란은 이번 방중에서 구체적인 선물을 들고 와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절박하고 엄혹한 상황이다. 히잡시위로 떠난 민심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5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에, 화폐가치는 역대 최악인 달러당 45만5000리알로 추락했다. 오바마행정부의 경제제재 당시 4만리알보다 10배 넘게 떨어졌다. 그럼에도 '중국이라는 바구니에 달걀을 모두 다 담아서는 안된다'고 염려하는 이란 개혁파 신문의 기사가 눈에 띈다.

푸틴의 불장난이 없었더라면

2022년 연두 국정연설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이 키이우를 탱크로 포위할 수는 있어도 결코 이란인의 마음을 얻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인을 이란인으로 잘못 말한 것이다. 그런데 타결될 수 있었던 이란 핵협상이 우크라이나전쟁 때문에 물거품이 되었으니, 결국 푸틴은 이란인의 마음을 얻지 못한 셈이다. 푸틴의 불장난이 아니었다면 이란이 굳이 동쪽으로 갈 필요가 있었을까? 이란 정세는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