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분산기업뿐만 아니라 지배주주기업에도 필요

전문가들 "부당한 인사 개입 아닌 ESG 관점 평가"

2018년 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은 지난 5년간 매우 소극적으로 주주권 행사를 이행하며 각계각층으로부터 비판받아 왔다. 주주이익과 기업가치 회복을 위해 당연히 시도할 수 있는 대표소송 등 적극적인 주주활동은 제대로 시도조차 못하고, 기본적인 기업과의 대화조차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국민연금이 갑자기 변했다. 뜬금없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를 내세우며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CEO 인사에 적극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의도와 독립성이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주주들의 이익과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면 긍정적인 변화로 박수 받을 일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는 제한적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수용하고 ESG 평가를 주주권 행사에서 제외하는 등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래 의도와 반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지배주주에 의한 소액주주 이익 침해 사례가 비일비재함에도 말이다. 학계와 시장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를 위해 어렵게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국민연금이 부당하게 왜곡한다며 우려의 소리를 높였다.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주주가치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바로 세우기 위한 방안을 찾아본다. <편집자 주>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의 주주활동(모니터링 + 주주관여 + 의결권) 강화를 통해 투자 대상 기업의 지속가능성 및 지배구조 수준을 제고함으로써 투자자와 기업 간의 상생을 도모하게 하는 글로벌 모범 규준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금을 대신 맡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이 투자처인 기업 경영에 활발하게 관여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규범화 한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가입'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수탁자 책임이나 ESG에 대해 '실질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대화(Engagement)의 횟수만이 아니라 '대화의 품질'까지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재무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비재무적인 정보도 파악하고, 기업의 ESG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해야 한다.

국민연금 글로벌 기금관 전경. 사진 국민연금 제공


◆주주대표소송 한 건도 시도 못해 = 2일 한국ESG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는 총 205개사다.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6년 말에 도입됐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도입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채택된 후인 2018년에야 제도를 도입했다. 2018년 말 국민연금의 도입 이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기관투자자들은 급속히 늘었다. 수백조원에 달하는 국민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국민의 소중한 재산과 국민연금이 투자하고 있는 수십조의 주식재산에 대한 책임 있는 파수꾼의 자세로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 이사회를 투명하게 하고,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일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로 시장에 큰 변화를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그간 스튜어드십 코드를 매우 소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국민연금이 주주가치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적절한 관여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경제개혁연대는 최근 논평을 통해 "기업가치 회복을 위해 주주로서 당연히 시도할 수 있는 대표소송도 소 제기 결정 주체 등에 관한 부차적인 논란으로 지금까지 단 한 건도 시도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소유분산기업 CEO 견제? = 이랬던 국민연금이 돌변했다. 그동안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소극적이던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를 내세우며 소유분산기업 CEO 교체에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작년 12월 27일, 9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게 된 서원주 신임 기금운용본부장(CIO)가 취임 당일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열어 뜬금없이(?)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를 차기대표로 낙점한 것을 두고 절차상 투명성을 문제 삼으며 소유분산 기업의 건강한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했다. 일체의 질의응답없이 이 문제를 얘기하기 위해 기자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기금운용본부장으로 앞으로 기금을 어떻게 운용하고 수익률은 얼마나 올릴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나 포부도 없었다. 이날 기금운용본부장의 대언론 메시지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승인과 투자목적 변경 공시도 없어 절차상의 하자도 거론된다.

국민연금이 이렇게 숨가쁘게 소유분산기업 CEO 견제에 나선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1월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스튜어드십은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 구성 과정에서 모럴해저드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엔, 적어도 그 절차와 방식에 있어선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한 것을 수용했다는 분석이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소유분산기업 CEO를 견제하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좋지만, 그것을 핑계로 관치가 이루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포스코의 경우 CEO의 성과와 상관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바뀌어왔다"며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방향이 정부 의견이 아니라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이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계 기관투자자들 또한 정치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국민연금의 무분별한 스튜어드십코드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운용 독립성의 원칙은 국민연금의 기본적인 기금운용 원칙이자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 제 4조) 수탁자책임 원칙의 중요한 전제다. 경제개혁연대는"정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애초에 스튜어드십코드 범주에 포함될 수 없고 기금운용 원칙이나 수탁자책임 원칙에도 명백히 위반된다"며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에 대한 왜곡 우려를 지우고 이제라도 세부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에 따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스튜어드십코드를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또 윤 대통령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해 말한 점에 대해 "그 동안 '연금사회주의'라는 궤변으로 일관해 온 재벌들의 입장을 맹종해 왔던 국민의힘 정권에서 '스튜어드십'이라는 말을 긍정적 의미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일견 흥미로운 변화로 보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스튜어드십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그리고 왜 스튜어드십이 우리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주주권 행사에서 ESG 평가 제외? = 이런 우려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서 ESG 평가를 제외한 점에서도 드러난다.

국민연금은 최근 정기 ESG 평가지표를 삭제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수탁자책임소위원회는 지난해 말 최종 회의를 열고 주주활동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수탁자책임활동 지침 개정안 논의를 마무리 지으며 주주권 행사에 '정기 ESG 평가'를 활용하지 않고, 재계의 반발이 거셌던 주요 쟁점 중 하나인 '환경·사회 관련 중점 관리 사안 신설'안의 경우 중복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지표를 삭제하고 명확한 평가 기준을 세우면서 도입을 결정했다. 기관투자자들은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통해 기업의 재무적 요인 외에도 ESG(환경-사회적 책임-기업지배구조)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선제적으로 스튜어드십과 ESG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이 ESG 평가를 주주권행사에서 제외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편 ESG평가가 주주권 행사에서 제외되고,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다섯 가지 중점관리사안이 발생했거나 ESG와 관련해 예상치 못한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우려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에 기업들과 비공개 대화, 주주제안 등의 수탁자 책임활동을 전개해 왔다. 중점관리사안은 기업 배당정책이 합리적이지 않거나 임원 보수한도 적정성이 의심, 법령상 위반 우려 및 기업가치 훼손 우려,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음에도 개선이 없음 등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바로 세우기"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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