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 대구대 교수,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156만4000여명, 105만5000여명, 16만4000여명. 폴란드와 독일, 영국에 들어온 우크라이나 피란민의 숫자다. 영국은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는 아주 적극적이지만 러시아의 침략전쟁을 피해 자유를 찾아온 피란민을 수용하는 데에는 아주 인색하다. 그런 영국이 이제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영불해협을 건너오는 난민 신청자들을 한명도 받지 않겠다는 법안을 내놓았다. 왜 난민관련 국제법 위반 소지가 짙은 이런 법안을 내놓았을까? 영국 국가브랜드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폴란드 독일, 피란민 수용 어려움 늘어

우크라이나전쟁이 발발한 지 1년1개월이 지났다. 전황은 교착상태다. 앞으로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2월 28일 자료에 따르면 81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조국을 떠났다. 이번 전쟁으로 서방세계의 최전선이 된 폴란드에 1/5 가까이 몰렸다. 이웃 독일의 경우 105만명 넘게 들어왔다. 피란민들은 두 나라에서 임시보호를 받고 있다. 1년 간 난민과 동일한 대우를 받으며 연장도 가능하다.

폴란드나 독일 모두 피란민을 환영했지만 이제 그 부담이 만만치 않다. 피란민이 들어오기 전에도 주택난 때문에 임대료 상한선 등의 정책을 실행 중이던 베를린의 경우 거처 마련에 어려움이 크다. 몇차례 16개주 내무장관들이 모여 난민 분담을 논의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독일정부의 추산에 따르면 난민 1명에 1년에 약 1만유로, 한화로 1300만원이 들어간다. 주택과 각종 복지수당, 취학아동이 있는 경우 학교 교육 등이 포함된다. 독일에 들어온 난민 100만명을 기준으로 할 경우 1년에 13조원이 지출된다. 올해 대구시 예산보다 약 2조원 더 많다.

영국은 두 나라에 비해 상황이 나은 편이다. 섬나라라는 특성에다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보다 우크라이나에서 비교적 멀다. 인터넷으로 서류를 갖춰 난민신청을 하고 영국에서 초청한 사람이 있는 경우에만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받아들였다.

폴란드와 독일은 일단 피란민을 받고 나서 차후에 관련 서류를 요청했지만 영국은 정반대다. 난민 입국 규제를 외치던 영국의 보수 언론조차 정부의 이런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초 리시 수낵 총리는 '보트를 멈추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영불해협은 가장 좁은 곳이 30여㎞에 불과하다. 영국에 들어오려는 난민신청자들은 작은 보트에 몸을 맡기고 대부분 이 경로로 건너온다. 지난해의 경우 유럽 본토에서 영불해협을 통해 영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이 4만5756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과 비교해 1.6배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다. 보통 난민신청자들은 한사람에 약 2000파운드, 약 300만원 정도를 지불하고 목숨을 걸고 보트에 탄다. 대개 불법 범죄조직이 보트 운영에 연관되어 있다.

지난 8일 영국 하원에 제출된 불법이민방지법안에 따르면 이처럼 불법 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은 아예 난민신청이 불가능하고 이들의 조국이나 안전한 제3국으로 송환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국에서 난민 신청이 불가능하다. 이 법안이 발표되자마자 유엔난민기구는 난민 관련 국제법을 위반한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온 사람들이 요청할 경우 난민신청을 받아 심사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그런데 영국은 아예 이를 차단하려 한다. 영불해협을 통해 영국에 입국한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리비아 국적이 많았다. 이곳 입국자들의 90% 정도가 영국에서 난민을 인정받았다.

집권 보수당의 한 장관도 불법이민방지법안이 국제법을 위반할 소지가 크다고 실토했다. 그러면서 안전한 경로로 난민을 신청하라는 말만 늘어놓았다. 아프간이나 시리아 등을 탈출한 사람들이 서류를 갖춰 다른 나라의 영국 공관에서 난민을 신청하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설령 이 법이 제정된다 하더라도 실행과정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영국은 지난해 4월부터 아프리카 르완다에 1억2000만파운드(약 1900억여원)을 지불하고 영국 내 난민신청자를 르완다로 보내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해 6월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제동이 걸린 뒤 실행하지 못했다. 이제는 아예 난민신청자를 영국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르완다 송환 계획에 이어 법적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은 불법이민방지법안도 감행중이다.

지지율 바닥인 집권 보수당의 무리수

이를 모를 리가 없는 영국정부가 무리수를 두는 것은 내년 말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수당은 불법이민 규제, 법과 질서 수호라는 프레임으로 난민에 비교적 관대한 노동당을 집중 공격해 왔다.

2010년 집권한 보수당은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과가 나온 후 2020년 1월 브렉시트를 단행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코로나19와 브렉시트의 부정적 효과가 겹치면서 영국은 올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최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쟁 중인 러시아보다 낮다.

영국 교역의 절반을 차지하는 EU에서 탈퇴한 후 이를 만회할 대체시장 찾기가 아직 요원하다. 게다가 영국에서 일하던 EU 회원국 사람들이 브렉시트로 영국을 떠나면서 요양보호사 같은 3D업종 인력은 물론 의사와 간호사 등의 인력도 부족하다. 경제가 이렇게 좋지 않기 때문에 지난해 중반부터 제1야당 노동당의 지지율이 집권 보수당보다 20%p 정도 앞섰다.

작년 10월말 총리에 취임한 리시 수낵은 올 초 5개 분야의 우선과제를 발표했다. △10% 넘는 물가상승률 절반 낮추기 △경제성장 △공공부채 감축 △무료 건강보험(NHS) 대기자수 감축 △영불해협 건너오는 불법 이민자 봉쇄 등이다. 집권 보수당이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연초부터 최대치의 목표를 제시했다. 여기에다 지난 13일 수낵 총리는 2년간 국방비를 50억파운드 증액하겠다고 발표했다.

영국경제는 침체중이다.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키고 어떻게 NHS와 국방에 더 투자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정책을 다 이룰 수 있을까?

버터(복지)보다 총(안보) 선택해온 영국

정책은 선택의 문제다. 국방산업에 투자하는 것(총)과 사회복지에 투자하는 것(버터) 사이에 선택이 불가피하다. 한정된 재정 여력에서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할 경우 다른 분야에 쓸 돈이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NHS 대기자수가 급증했다. 특히 간호사와 응급의료 인력이 지난해 12월부터 석달 넘게 파업을 하면서 의료 분야 공백이 커졌다. 간호사와 응급 인력은 정부와 임금인상 협상 중이다. 긴급수술 환자를 제외한 병원 치료 대기자수는 지난해 1월 460만명이었다. 그러다 11월 말 기준 720만명으로 폭증했다.

돈줄 확보에 급급한 보수당은 해외원조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유엔은 국민총소득(GNI)의 0.7%를 공적개발원조로 주도록 회원국에게 권고한다. 영국은 2014년 관련법까지 만들어 0.7% 준수를 공약했다. 그러나 코로나19 때 부족한 재정을 메우기 위해 법을 고쳐 해외원조액을 0.55%까지 줄였다. 국방비 증액과 NHS 투자에 밀려 이번에도 해외원조액 비율이 0.5%까지 떨어질 듯하다. 유럽의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 전세계에 자유무역과 민주주의 가치를 전파하겠다고 한 '글로벌 영국'의 브랜드와 배치된다.

세계 각지에서 분쟁이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빈곤이다. 이를 퇴치하려는 것이 해외원조다. 반면 무기 지원은 의도하지 않았을지언정 자국 방산업체에 큰 이득이다. 과거 제국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영국은 총과 버터 사이에서 대부분 총을 선택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