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환 경기대 교수, 언론인

독일의 중국전략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공급망실사법으로 중국 인권탄압·환경유해 제품의 유럽·독일 수출이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반도체 배터리 2차전지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우리 기업들이 EU·독일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독일은 최근 처음으로 '중국전략'(China Strategie)을 발표했다. 한 국가를 상대로 전략을 발표하는 건 이례적이다. 그 중심에 진보정당 녹색당과 아날레아 베어보크 외교부장관이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중국전략으로의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메르켈정부가 추구한 경제적 실리보다 자유민주주의·인권 등 가치외교로의 중심이동이다.

그러나 '디리스킹'(de-risking, 위험축소) 용어에서 급격한 변화보다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7월 13일 독일의 '신호등'(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립정부는 내각회의를 통해 중국전략을 의결했다. 독일 외무부가 작성한 64쪽 분량의 중국전략은 향후 중국을 어떻게 대하겠다는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독일은 이미 한달 전인 6월 14일 첫 '국가안보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서 이미 중국전략 방향이 정해져 있었다.

메르켈 전략 폐기, 가치외교로 선회

미국과 달리 독일 중국전략의 핵심 기조는 중국과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이 아닌 '디리스킹'에 있다. 하지만 독일정부는 중국전략에서 '일당독재' 중국을 강하게 비판한다. 독일은 "중국이 체제 라이벌로서 일당독재 체제의 이익에 의거해 국제질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는 것에 우려한다"면서 "중국은 이를 통해 인권상황을 상대화하는 등 규칙에 기반한 질서의 근원을 흔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독일은 또 일당독재 중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인도·태평양지역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현상변경'하려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독일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사태 전개가 유럽·대서양 지역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인도·태평양의 긴밀한 파트너들과 함께 안보 군사적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중국이 인도·태평양지역에서 공격적으로 나오면 이에 맞서겠다는 각오를 독일정부가 처음 밝힌 것이다. 이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의 중국전략 폐기를 의미한다.

또한 독일정부는 자국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러 관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독일정부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관계를 확대하겠다는 중국의 결정은 독일에 있어 안보 정책적으로 큰 위험이 된다"면서 "중국이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경제력을 이용해 주변국은 물론 그 너머까지 관계가 매우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독일정부는 또 중국전략에서 '중국의 첩보활동'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선언했다. 즉 "중국의 독일에 대한 첩보활동이 사이버공간에서 늘어나고 있다"며 "중국 정보기관이 디지털공간에서 첩보활동과 방해공작을 하는 것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미 유럽연합(EU)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이 발표한 대중국 3대 원칙, 즉 △기후보호 등에선 파트너로 협력하고 △기술과 경제는 경쟁자이며 △체제는 라이벌이라는 가치가 독일의 중국전략에 그대로 녹아 있다. 올해 독일과 EU는 '공급망실사법'을 통과시켜 인권탄압이나 환경을 침해한 중국 제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베어보크 독일 외무부장관은 "중국시장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이에 따른 재정적 위험을 스스로 더 많이 져야 할 것"이라며 "기업의 위험한 결정에 대한 책임이 명확해진다는 게 새 중국전략의 취지 중 하나"라고 말했다. 독일 기업에게 중국 의존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권고다.

경제·국내정치·국제정치 환경의 변화

독일은 왜 이 시점에서 중국전략을 발표하게 되었는가. 크게 3가지, 즉 경제 국내정치 국제정세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경제적 요인이다. 과거처럼 중국이 독일 이익추구에 크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산업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계 최고 생산량을 자랑하는 폭스바겐그룹(아우디·포르쉐·폭스바겐 등)이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석유·디젤의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배터리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연기관차 성공이 전기차 시대엔 '성공의 저주'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독일 전기차가 중국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오히려 비야드(BYD) 등 중국 전기차가 독일에서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또한 독일은 중국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징후를 보고 있다. 예상보다 심각한 저성장 저출산 빈부격차에다 시진핑 독재까지 더해져 중국경제가 위기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러 요인으로 중국 경제성장률이 상반기 3%대로 떨어졌다는 발표가 나왔다. 독일의 최대 수출시장인 EU가 지경학적으로 더욱 중요해졌다.

둘째, 독일 국내 정치지형의 변화다. 전통적 중도좌파 사민당이 아닌, 녹색당의 지지도가 상승하고 있다. 사민당 슈뢰더와 기민당 메르켈정부 25년 동안 '코끼리연정'(대연정)을 통해 독일은 경제적 이익추구를 국가 핵심전략으로 삼았다. 값싼 에너지는 러시아에 의존하고, 값싼 제품 구매와 고가 제품 수출은 중국에 의존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같은 구도가 깨진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독일 경제·에너지를 위협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근육질을 키워 대만 현상변경 등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독일정부는 '시대전환'을 선언했다. 군비증강뿐만 아니라 탈러시아 에너지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도 적용된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시진핑 3연임 이후 서방 지도자로는 최초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스마트 다변화', 즉 디리스킹 전략을 추구했지만 진보당 녹색당의 베어보크 외교부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전략'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셋째, 국제정세의 변화다. 지난 30년 탈냉전의 시대에 독일만큼 혜택을 누린 국가도 없다. 하지만 신냉전으로 미중 전략경쟁뿐 아니라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같은 이익 추구를 유지할 수 없는 환경이다. 미국은 반도체 등 핵심기술에서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으로부터 퇴출시키는 전략, 즉 디커플링을 추구하고 있다. 독일 역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요청받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은 자유민주주의, 인권 등 국가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중국보다는 유럽·미국과 연대하며 인도·태평양 전략에 참여하고 있다.

독일 전략변화가 우리에게 도움될 수도

향후 독일은 중국에 어떤 전략을 취하고, 우리는 어떤 시사점을 얻을 것인가. 독일 대중국 전략은 크게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헷징' 외교다. 중국에서 여전히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시장개척에 나선다.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독일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전기차 시장이다. 이미 BYD 등 중국 전기차가 테슬라 등 미국 전기차와 경쟁하는 시대에 독일 자동차산업은 샌드위치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은 "베를린 근처에 연 100만대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 자동차산업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독일의 중국전략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공급망실사법으로 중국 인권탄압·환경유해 제품의 유럽·독일 수출이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반도체 배터리 2차전지 등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우리 기업들이 EU·독일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나아가 우리에게 미중 사이에 낀 샌드위치 위기를 극복할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미국은 '국제 자유질서'를 깨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법)과 반도체법으로 자국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우리 배터리기업은 미국에 공장을 지어 대응한다. 글로벌 트렌드를 제대로 파악해 신기술·신산업 분야에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점을 우리 정치인·기업인들이 파악하길 바란다.

김택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