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 위스콘신대

핼러윈이 다가오고 있다. 여름이 끝나가는 8월 말이 되면 미국의 상점들은 이미 핼러윈 용품을 팔기 시작하고, 주택가 곳곳에서는 일찍이 온갖 장식품들을 전시해두며 두달여 간의 준비기간을 갖는다. 핼러윈은 일반적으로 캐릭터 분장을 하고 술집에 가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을 모으는 등 미국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축제 중 하나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이 휴일의 뿌리는 수천년 전 고대 켈트족 축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후 1745년, 성자의 밤을 뜻하는 기독교 용어 '핼러윈'(Halloween)에서 이름을 처음 얻게 되는데, 이날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허물어져 사람들이 저승의 생물과 교류할 수 있는 날로 여겨졌다.

다른 인종의 문화 희화화 논란

핼러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가 점차 세속화되면서 관련 행사들도 따라 변화해왔다. 특히 핼러윈 행사에서 빼놓고 말하기 힘든 것 중 하나인 의상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핼러윈 의상을 입는 행위는 1585년 악마 유령 마녀 괴물 등 초자연적인 인물을 닮은 의상을 집에서 만들어 입던 관습으로 처음 기록됐다.

20세기 초 미국인들은 흑인들을 흉내 내기 위해 검은 얼굴로 분장하거나 아시아 등 이국적인 국가의 터번과 기타 상징물을 착용하는 등 다른 인종의 문화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핼러윈 의상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변질됐다.

'스미스소니언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얼굴을 까맣게 분장하는 행위는 1830년대 백인 공연자들이 짙은 화장과 가발, 과장된 의상을 입고 노예를 조롱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부터 백인들은 종종 이러한 분장을 통해 흑인을 게으르고 무지하고 비겁한 사람으로 묘사해왔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 저렴한 의상이 대량생산되면서 핼러윈 의상 역시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했다. 괴물과 유령 의상은 여전히 핼러윈 의상 인기목록에 있었지만, 어린이와 어른들은 배트맨 슈퍼맨 등의 히어로 의상에 점차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는 흑인들을 따라하는 수준에서 좀더 확장돼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의식에서 사용하던 의상을 본떠 만든 인디언과 카우보이 의상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도 여전히 매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인기상품 중 하나다.

이렇게 특정한 날에만 다른 인종이나 민족의 신체와 의상을 따라 하는 행위는 무의식적이라도 해당 그룹을 희화화하는 의미가 내포될 수 있다는 '문화적 전용' 혹은 문화 도용 논란이 꽤 오래전부터 점화되고 있다.

다행히 교육기관 언론 온라인 등에서 정치적·문화적으로 적절치 않은 의상은 삼가야 한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하이오대학에서는 2011년부터 '우리는 의상이 아니라 문화입니다'라는 포스터 캠페인을 통해 핼러윈 행사에 주로 발생하는 문화적 전용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후 콜로라도대학 오리건대학 덴버대학 등 미 전역의 많은 학교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전용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해 전문 교육 프로그램으로 확대하는 등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이들은 핼러윈 의상을 선택할 때 그 문화를 대표하는 인종 커뮤니티가 어떻게 인식할지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난 수년 동안 소셜미디어에서도 '우리의 문화가 당신의 옷은 아니다'라는 의미의 해시태그 캠페인(#notyourcostume, #mycultureisnotyourcostume)이 등장하면서 문화적 전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와 함께 소셜미디어 '인증'과 '취소'(cancel)문화가 급부상하면서 문화적 도용이라는 문제 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여기서 소셜미디어 취소문화는 특히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의 팔로우(follow)를 의도적으로 취소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최근 이러한 방식으로 손가락질 받은 사람 중에는 저명한 요리 전문잡지 '본 아뻬띠'(Bon Appetit)의 전 편집장 아담 라포포트가 있다. 그는 수년 전 핼러윈 파티에서 우스꽝스러운 '푸에르토리코인' 복장을 하고 찍었던 사진이 공개돼 해고됐다. 본 아뻬띠의 전·현직 직원들은 그의 복장 문제는 라포포트가 수년간 지속해 온 '백인이 아닌 인종'(BIPOC, Black Indigenous and People Of Color)을 겨냥한 학대, 특정 인종에만 차별적으로 지급됐던 저임금 문제 등 빙산의 일각을 보여줬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몇몇 보수 단체에서는 지나친 문화적 예민함이 하나의 관습적 행위를 정치적으로 몰아간다고 주장한다. 2019년 퓨 리서치센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핼러윈에 백인이 다른 인종으로 보이기 위해 피부를 어둡게 화장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응답한 미국인은 53%에 그쳤다.

백인 거주지역 사탕 주는 시간도 달라

미국 내 인종문제는 핼러윈 의상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수년 동안 백인 거주지역에서는 가난한 동네의 흑인과 라틴계열 사람들이 사탕을 훔쳐가는 것에 대한 불평이 언론을 통해 터져나왔다. 몇년 전 자신의 동네에서 사탕을 받아가는 흑인과 라틴계열 사람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댓글을 온라인에 올렸던 오하이오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휴직처분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뉴욕 브루클린의 한 카페가 백인 아이들에게만 사탕을 나눠줬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인종별로 각자 구별된 구역에 사는 것으로 미국 내에서 악명 높은 밀워키의 예를 살펴보자. 지난해 밀워키에서는 핼러윈 당일 저녁 대신, 핼러윈 직전 일요일 오후 1시부터 4시 사이에 도시 전체에서 사탕을 나눠주는 행사를 열었다. 물론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교외지역에서도 형식적으로는 비슷한 시간대에 행사를 열었다. 이는 밀워키와 비슷한 규모의 도시에서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일반적 수준의 핼러윈 행사였다.

그런데 주로 백인 및 교외 지역의 커뮤니티센터는 낮에 개최하는 행사 외에도 토요일이나 핼러윈 당일 야간에 사탕 증정 이벤트를 진행하는 예도 드물지 않게 나타났다. 이러한 이벤트는 지역마다 조금씩 형식이 달랐지만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친구만으로 제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일부 백인 거주지역에서는 야간행사 없이 낮에 사탕을 주는 행사만 열렸다. 그리고 야간행사가 계획되었던 동네에서도 동네 전체 주민들이 참여한 것이 아니라 일부 가구만 동참했다.

그러나 결국 핼러윈은 이제 인종차별적, 계층화된 축제로 자리잡게 됐다. 일요일 오후에 도시 전체가 사탕을 나눠주는 날이면 도심의 아이들은 더 좋은 사탕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득 안고, 멋진 집들이 늘어선 거리에 이끌려 부유한 교외 지역으로 향했다. 반면 백인 동네 아이들은 사탕을 받으러 낮에 돌아다니기보다는 밤에 열리는 동네행사에만 참여했다. 일요일 낮에 백인 거주 지역의 초인종을 누르는 아이들은 흑인과 라틴계들이 대부분이지만, 핼러윈 저녁에는 거의 백인 아이들만 사탕을 받으러 돌아다녔다. 어떤 아이들이 어떤 시기에 찾아가야 할지 결정돼 버린 것이다.

인종과 계급에 대한 편견으로 얼룩진 휴일

매년 핼러윈이 되면 미국인들은 서로에게 문을 연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여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핼러윈에 참여한 아이들은 점차 보이지 않는 차별을 체감할 것이다.

그들은 과연 즐거움으로 가득했어야 하는 이날 무엇을 배우게 될까. 그들이 여기서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나'와 '그들'을 구별 짓는 고정관념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핑계로 핼러윈은 인종과 계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얼룩진 '차별의 휴일'로 변하고 있다.

김찬송 위스콘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