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 대구대 교수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영국의 총선이 내년 가을쯤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1년 넘게 제1야당 노동당의 지지도가 보수당보다 18~20%p 정도 높다. 수낵 총리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계속 하락추세다.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스타머 노동당 당수의 지지도가 수낵보다 25%p 높다.

지난달 15일부터 사흘간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에서 스코틀랜드민족당(SNP) 전당대회가 열렸다. 비교적 늦게 열린 SNP 전당대회에서는 이전의 환호성이나 낙관적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3월 말 새 당수이자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이 된 험자 유사프(Humza Yousaf)가 대회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SNP는 연합왕국 영국(UK)으로부터 탈퇴를 묻는 주민투표로 분열돼 있고, 이게 노동당에게는 내년에 있을 총선에 호재가 되고 있다. 집권여당 보수당은 지지도를 만회해보려고 고속철도 건설 계획도 일부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스코틀랜드에서 노동당 지지 크게 상승

SNP가 원하는 대로 됐다면 지난달 19일 영국으로부터의 탈퇴를 묻는 두번째 주민투표가 스코틀랜드 전역에서 치러졌을 것이다. 2021년 5월 지방선거에서 당시 니콜라 스터전 당수가 이끌던 SNP는 과반에 1석 모자란 64석을 획득했다. 스코틀랜드민족당은 2011년부터 내리 4번이나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스터전 당수는 선거공약으로 제2 주민투표를 내걸었다. 이후 구체적인 주민투표일까지 잡았지만 영국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탈퇴를 묻는 주민투표가 자문적이라도 연합왕국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중앙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판결했다. 집권 보수당은 2014년 9월 UK에서 탈퇴를 묻는 스코틀랜드의 주민투표가 마지막이라 명확하게 못박았다. 여기에다 가뜩이나 경제도 좋지 않고 국제정세도 불안정한데 두번째 주민투표를 허용해 줄 이유가 없다.

스터전 당수는 지난 2월 갑자기 사임했다. 신임 유사프 당수는 전당대회에서 "다음 총선에서 스코틀랜드민족당이 하원의 과반을 얻는다면 영국정부와 제2 주민투표 협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판결 때문에 주민투표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지만 정치적 카드로 계속 활용하겠다는 속내다.

반면 전임 당수의 지지자들은 "다음 총선은 사실상의 제2 주민투표"라는 그의 강경한 입장을 지지한다. SNP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던 제2 주민투표 요구가 이제는 당을 분열시키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스코틀랜드의 제2 주민투표에 힘을 실었다. 2016년 6월 말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 유권자의 62%가 유럽연합 잔류를 원했다. 잉글랜드가 원해서 이뤄진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스코틀랜드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그래서 두번째 주민투표가 지지를 받았으나 그곳의 유권자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가장 최근의 설문조사(지난 9월 말, 유거브)에 따르면 독립에 반대하는 의견이 53%로 탈퇴보다 6%p 정도 높다. 이 정도 격차가 1년 내내 유지되고 있다.

지난달 5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교외의 루더글렌(Rutherglen) 보궐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하자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이번 노동당의 보궐선거 승리는 스코틀랜드 정치지형을 뒤흔드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스타머 당수가 한 지역의 선거 결과를 이렇게 평가한 이유는 이전의 이 지역구 총선에서 SNP를 지지한 유권자의 20%가 이번에 노동당 지지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올 초부터 노동당은 스코틀랜드 주민의 정당지지도에서 SNP를 평균 5%p 정도 앞서기 시작했다. 2021년 중반까지만 해도 SNP가 2위 노동당보다 약 20%p 정도 높았다. 그러나 이후 노동당의 지지도가 꾸준하게 상승하면서 올 초부터 역전됐다.

영국 하원 650석 가운데 스코틀랜드에 할당된 의석은 59석이다. 2019년 12월 총선에서 SNP는 이 의석 가운데 43석을 거머쥐었다. 스코틀랜드에서 현재의 노동당 지지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다음 총선에서 SNP는 최소 20석, 최대 40석 정도를 잃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했다. 즉 스코틀랜드민족당의 하원의석수가 대폭 줄어든다면 최대 수혜자는 노동당이 될 듯하다. 현재 노동당은 스코틀랜드에서 2명의 하원의원을 보유중이다.

스코틀랜드 유권자들은 분리독립 주민투표보다 경제와 건강보험(NHS) 대기자수 축소에 우선순위를 둔다. 스코틀랜드는 초중고 학생들의 학업성적 평가에서 잉글랜드에 뒤처진다. NHS 대기자수도 올해 6월 말 기준 7명 중 1명으로 잉글랜드보다 좋은 편이 아니다.

보수당, 고속철도 건설 도박성 모험

스코틀랜드의 정치가 노동당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 보수당은 지지도를 만회해보려고 큰 도박을 감행했다. 지난달 4일 집권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는 고속철도(High Speed Two, HS2) 노선 건설계획을 대폭 축소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유럽 최대의 인프라 프로젝트가 철회됐다. 영국의 정책 신뢰성이 크게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HS2는 원래 런던을 출발해 잉글랜드 중부의 버밍엄을 거쳐 서쪽의 맨체스터, 동쪽의 리즈까지 연결하는 최대 국책사업이다. 2009년 당시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정부가 건설계획을 발표했고 2010년부터 집권 여당이 된 보수당도 이 사업을 계승했다. 맨체스터와 리즈 등은 산업혁명 때부터 제조업으로 유명한 도시였는데 제조업 쇠퇴 후 잉글랜드 북부지역 도시들이 어려움을 겪어 왔다. 고속철도 건설은 북부지역 부흥 프로젝트로 보수당이나 노동당 모두 공감했던 사업이다.

그런데 총선을 1년여 남겨 둔 시점에서 리시 수낵 총리가 돌연 절반만 건설하겠다고 결정했다. 2년 전 수낵의 전임자 보리스 존슨 총리는 건설 비용이 너무 급증하자 버밍엄-리즈 노선을 건설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바 있다. 수낵 총리는 남은 버밍엄-맨체스터 노선 철회를 결정했다. 이번 결정으로 런던에서 버밍엄까지만 고속철도가 건설된다. 잉글랜드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철도가 영국에는 없게 된다. 철도를 발명한 영국의 상황이 이렇다.

정책결정자로 변신한 수낵에 여론 냉담

수낵 총리는 재무장관 재직 때 여러 난제를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아 '문제해결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고속철도 건설의 절반을 백지화하면서 그는 "과거 30년 간 영국 정치에서 만연했던 현상유지를 타파하겠다"며 '급진적 결정'이라고 자평했다. 문제해결자 이미지에서 벗어나 이렇게 인기없는 결정을 내리는 냉철한 정책결정자의 이미지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2025년 1월 안에 총선을 치러야 하는데 전문가들은 내년 가을 총선이 유력하다고 전망한다. 총선을 앞두고 그는 총선 승리가 유력한 노동당을 공격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수낵의 전임자 4명의 총리가 고속철도 건설을 백지화하지 말라고 촉구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기후변화 정책도 후퇴했다. 내연기관 신차 금지가 2030년에서 2035년도로 미뤄졌다. 고속철 건설 철회나 기후변화 정책 후퇴로 절감한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총선 대비용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1년 넘게 제1야당 노동당의 지지도가 보수당보다 18~20%p 정도 높다. 수낵 총리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계속 하락추세다.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스타머 노동당 당수의 지지도가 수낵보다 25%p 높다.

도박에 가까운 수낵의 정책선회에도 여론의 반응은 차갑다.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는 경제와 건강보험 대기자수 축소, 그리고 이민통제다. 그런데 이 3개 핵심 이슈에서 수낵은 1년 전 취임 때와 비교해 '잘한다'는 비율이 최소 20% 정도 줄었다.

선거승리와 정권장악이 정당의 존재 이유라지만 대규모 국책사업을 번복하고 글로벌 이슈인 기후변화에서조차 후퇴하고 있는 영국이다. 반면 제1야당 노동당은 일부 실현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여당 덕분에 지지도가 오르고 있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