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송 위스콘신대

성탄절이 왔다. 미국 공공장소 곳곳에는 수많은 전구와 장식으로 한껏 꾸며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돼 있다. 뉴욕을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인 록펠러센터에서는 매년 11월 말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을 미국 전역에 생중계할 정도다. 대공황 시기에 록펠러센터 주변을 개발하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많은 일자리가 창출됐기에, 이 크리스마스트리는 미국 경제의 희망을 상징했다고 한다.

공공장소뿐 아니라 미국의 많은 가정에서도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며 연말 분위기를 즐기고 있다. 성탄절을 대표하는 영화 '나 홀로 집에'에는 주인공 케빈이 혼자 집에 남겨진 상황에서도 가족들을 기다리며 트리를 손수 장식하는 장면이 나온다. 특히 필자는 인조나무가 아닌 '진짜' 나무를 집까지 혼자서 직접 끌고 오던 케빈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상상했던 12월의 미국 가정은 천연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장식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올해의 크리스마스트리는 그 어느 해보다 가짜 나무로 장식됐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 홍보 단체인 미국 크리스마스트리 협회(National Christmas Tree Association) 설문조사에 따르면 올해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미국인의 77%가 인조나무를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인조나무는 여러해 동안 재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77% 응답자 모두가 매년 인조나무를 구매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조나무는 물을 주거나 줄기나 잎을 다듬어야 하는 관리의 번거로움이 없다. 심지어 조명이 내장된 제품도 있다.

혹자는 비용 절감 때문에 인조나무를 선택할 수도 있다. 180㎝가 넘는 플라스틱 트리는 약 120달러 미만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인조나무를 한번 구매하면 수년 동안 재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년 천연 크리스마스트리를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2015년에는 천연 크리스마스트리의 평균 가격이 63.88달러였지만 지난해에는 86.94달러로 7년 전보다 36% 상승했다. 천연나무에서 인조나무로의 변화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경기침체 겪으면서 인조 트리 사용 급증

1994년부터 트리 수입을 추적하기 시작한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인조 트리의 수입은 1990년대 중반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관련 공급망 문제에도 불구하고 2021년에는 급증했다고 한다. 인조 트리가 점점 더 실제 나무처럼 만들어지고 일반 가정에서 더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천연 크리스마스트리 산업은 40~50년 동안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고 한다.

2008년 경기침체가 시작되면서 전국적으로 판매된 천연 크리스마스트리도 급감했다. 천연 크리스마스 트리 총개수가 1998년 1930만개에서 2009년 1280만개로 34% 정도 줄었다. 이로 인해 관련 업계의 농부들은 묘목을 줄이거나 다른 작물로의 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아예 폐업해버리는 농장도 많아졌다고 한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묘목을 키우는 데에는 평균 7년, 때로는 10~15년 이상이 소모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트리를 판매하는 농장에서는 10년 후 어떤 묘목이 팔릴지, 또 얼마나 팔릴지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다.

미국 최고의 천연 크리스마스트리 생산지인 오리건주의 크리스마스트리 농장들도 2008년 이후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9년 미 전역 판매량의 약 1/3을 차지한 오리건주조차도 총 트리 농장수가 1590개에서 490개로 급감했다. 미국의 천연 크리스마스트리 생산량이 서서히 감소함에 따라 캐나다에서 나무를 수입하는 추세도 늘어났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평균 200만그루의 트리가 수입됐지만 2022년에는 280만그루로 대폭 증가했다.

밀레니얼 세대 소비가 천연 트리 버팀목

1994년 이후 인조나무를 구매하는 미국인의 수가 30% 이상 급증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천연나무에 대한 선호가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 중심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다.

미국 내 밀레니얼 세대는 주택 관련 산업부터 다이아몬드 마요네즈 건포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참치통조림 관련 산업까지 어려움을 겪게 하는 주요 세대로 지목돼 왔다. 하지만 천연 크리스마스트리 산업만큼은 밀레니얼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에 감사하고 있다.

'진짜로 하기(Keep it Real)' 캠페인을 통해 미국 크리스마스트리 협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금융서비스 회사 스퀘어(Square) 조사에 따르면, 크리스마스트리의 선호에도 분명 세대 격차가 있다고 한다. 베이비붐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자녀가 성인으로 성장한 후에는 그동안 매년 구매해왔던 전나무와 소나무 구매를 중단했다. 오히려 이제는 밀레니얼 세대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 트리를 구매할 수 있게 되자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로 천연 크리스마스트리를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2018년 천연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점을 강조하기 위해 100만달러 규모의 캠페인을 시작한 미국 크리스마스트리 협회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천연 트리의 가격이 20% 상승한 것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적은 점을 중시하고 '지역산 구매'를 우선하는 젊은 세대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는 천연나무와 인조나무 모두 환경적 경제적 측면에서 각자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 트리 사용으로 천연나무를 베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크리스마스트리 소비에 영향을 미쳐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소비자는 수년 동안 인조나무가 천연나무보다 더 환경친화적이라고 믿어 왔다.

PVC 플라스틱 강철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지는 인조나무는 관련 제품들이 생산되는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운송되는 과정에서 포장 및 기타 재료가 추가로 필요하다. 실제로 인조나무는 6~9년 정도 장기간 재사용할 수 있어 매년 천연나무를 사는 것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수 있지만 재활용이나 생분해할 수 없다. 대신 몇 세대에 걸쳐 매립지에 쌓여 플라스틱 오염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반면 천연나무는 재배와 운송에 훨씬 적은 자원이 필요하다. 또한 트리로 사용된 이후에는 바이오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으며 산소를 생산하고 동물의 서식지를 포함한 녹지 공간을 보존할 수 있다. 천연 크리스마스트리를 구매하는 것은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지역 농장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세인트 조제프 대학의 식물학자 클린트 스프링거(Clint Springer)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위해 벌목하는 행위 자체가 환경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매사추세츠주 자연보호협회의 산림 생태학자인 앤디 핀턴(Andy Finton)의 주장에 따르면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이 어린 숲과 비슷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나무 한그루를 수확하기 위해서 2~3그루의 묘목을 심는데 크리스마스트리 농장은 사용하지 않는 농지에 종종 조성되기 때문에 녹지공간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환경적 요인 놓고 논쟁 계속될 듯

이렇게 크리스마스트리를 천연나무로 할지, 인조나무로 할지와 관련된 결정은 '연말연시에 얼마나 많은 자금을 사용할 수 있는지'부터 '살아있는 나무를 돌볼 시간이 있는지' 등 다양한 상황들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향수, 환경에 대한 우려까지 미국인들의 가치관마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 내에서 인조트리와 천연트리에 대한 논쟁은 쉬이 사라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크리스마스트리가 평화와 기쁨이 가득하기를 염원하는 상징적 소품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가족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던 케빈을 올해도 떠올려본다.

김찬송 위스콘신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