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진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

2024년 첫번째 태양을 금문교에서 맞이했다. 적확하게는 태평양 연안 산중턱에서 금문교를 바라보며 해가 솟기를 기다렸다. 태평양 표준시로 2024년 1월 1일 오전 7시 22분 샌프란시스코에 새 해가 떠올랐다. 압도적인 풍경이었으나 도취되고 싶지 않았다. 3년 근무가 끝나가면서 귀국이 임박함에 따라 떠들썩한 다짐보다는 차분한 정리가 필요했다. 태양을 응시하며 마음 속으로 구호 하나를 되뇌었다.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다(There is Hope)."

처음 실리콘밸리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 곳이 금문교다. 금문교의 자전거 전용도로는 예상보다 훨씬 좁았다. 하릴없이 자전거를 접어서 끌고 걸었다. 걸으면서 보는 베이 지역의 풍광도 운치가 있었지만 자전거를 타고서는 그냥 지나쳤을 법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생과 사의 경계에 서서 금문교에 올랐을 사람들을 위한 비상전화 카운슬링 안내였다. 직통전화의 문구는 간략하면서도 명료했다. '희망이 있습니다, 전화하세요(THERE IS HOPE, MAKE THE CALL).' 촌각을 다투는 결정적 순간, 짧고 굵은 한마디가 사람을 구할지 모른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희망이 있다'는 문구는 이후 필자의 가슴에도 깊숙이 박혔다. 고백하자면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막막한 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희망이 있다"를 곱씹었다.

숨가쁘게 바뀌는 실리콘밸리 기술 흐름

무엇이 막막했을까. 압도적인 규모와 속도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흐름조차 따라잡기가 벅찼다. 근무 첫해는 모두가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당시 품었던 의문은 '우리가 언제쯤 디지털 세상에서 완전한 의식주를 영위할 수 있을까'였다. 답을 찾으려다 보니 선행되는 물음은 '완전한 디지털 전환이 이뤄졌을 때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였다. 한가한 고민으로 해석될 여지가 컸기에 애써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1년이 지났다. 코로나19가 안정되면서 사람들은 보란 듯이 대면 활동에 나섰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들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해방감을 만끽하듯이 밖으로 나왔다. 디지털 전환을 외치던 테크기업들은 확장이 여의치 않자 대량해고를 감행했다. 지금은 누구도 디지털 전환을 내세우지 않는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디지털 전환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공통된 무엇이 반드시 있다'는 결론에는 도달했다.

근무 2년차에 떠오른 기술 화두는 '메타버스'였다. 메타버스를 이해하기 위해 실리콘밸리에서 열리는 테크 콘퍼런스를 찾아다녔다. 당시 한국에서는 '메타버스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가 주된 담론이었다. 메타버스 시대를 대비해 우리가 뒤처지지 않고 수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많은 이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테크 콘퍼런스는 메타버스 시대가 불러올 급속한 가치변화와 새로운 인간 윤리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콘퍼런스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은 메타버스가 보편화되었을 때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인간의 권한을 얼마나 부여하고 인간의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할 것인가'였다.

실리콘밸리 테크 콘퍼런스 현장에서 이처럼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가 오간다는 점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도전자 입장일 수밖에 없는 한국에서는 주로 한가한 소리로 치부되는 주제에 대해 미국 현지 연사들이 진지한 토론을 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쟁점은 결국 '기술 발전과 함께 인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다.

언젠가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할 것은 크게 의심하지 않지만 메타버스가 현재 인류를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 메타버스 이야기를 하는 유일한 사람은 마크 저커버그뿐"이라는 기술 전문잡지 '와이어드'의 평가가 있을 정도로 시장의 관심은 빠르게 식었다. 이와 달리 순식간에 각광을 받은 기술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다. 근무 마지막 해에는 실리콘밸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챗GPT를 이야기했다. 메타버스에 미적지근한 대중이 챗GPT에는 열광했다. 이러한 차이를 보면서 다시금 떠올린 생각은 '인간이 공통적으로 감응하는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래리 페이지와 일론 머스크의 논쟁

거대 기술기업 구글이 머뭇거리는 사이 상대적으로 기민한 오픈AI가 GPT 서비스를 선점한 것도 근무 하반기의 커다란 화제였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둘러싼 둘의 대결은 오픈AI를 공동 설립한 일론 머스크와 구글 창업자 래리 페이지의 가치관 차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 나파밸리에서 열린 머스크의 생일파티에서 둘은 인공지능을 두고 충돌한다. 머스크는 "인간의 의식은 우주의 소중한 불꽃(Human consciousness was a precious flicker of light in the universe)"이므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Unless we built in safeguards, artificial intelligence systems might replace humans)"이라고 말했다.

래리 페이지는 즉각 반발했다. "언젠가 기계가 지능과 의식 수준에서 인간을 능가한다고 해도 이는 그저 진화의 다음 단계일 뿐(If machines someday surpassed humans in intelligence and consciousness, it would simply be the next stage of evolution)"이라는 게 페이지의 기본 입장이다. 페이지는 아예 머스크를 인간만 편향적으로 우월시하는 '종차별주의자(specist)'로 규정할 정도였다. 머스크의 대답은 짧지만 단호하다. "나는 친인간적이에요(I am pro-human)."

인간과 기계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은 기업가마다 다르다. 래리 페이지는 기계가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고 보며 언젠가 이러한 시점이 다가올 것으로 예상한다. 래리 페이지와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설립하면서 컴퓨터 과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과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사실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튜링은 컴퓨터와 로봇이 스스로 학습해 인간을 뛰어넘는 사고까지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커즈와일은 언젠가 인간이 영생할 수 있는 '특이점(singularity)'이 온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2005년 처음 책이 발간될 당시 2045년으로 제시된 특이점은 현재 기준 2029년으로 당겨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기술혁신시대에도 인간의 자리는 있다

반면 21세기를 대표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두 명은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능력, 다시 말해 인간다움에 방점을 찍는다. 둘은 바로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다. 지난해 발간된 일론 머스크 전기를 보면 머스크가 "나는 정말로 인간다움을 좋아한다(I like humanity)"고 받아치는 장면이 나온다. 거침없는 그답게 F로 시작하는 욕설을 섞어서 강조하며 말한다.

죽음을 앞둔 스티브 잡스는 보다 담담하게 고백했다. 그는 전기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혁신에는 인간애가 흐르고 있다(There's a deep current of humanity in our innovation)"고 서술한다. 한발 더 나아가 "훌륭한 기술자(engineer)와 훌륭한 예술가(artist)는 비슷한 사람들"이라고까지 말한다.

실리콘밸리 근무를 마감하며 큰 질문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마련하고 떠나야겠다.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에 가깝다. 기계가 인간을 능가해서 사고하는 시점이 올 수 있겠지만 그때까지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능력을 갈고닦을 생각이다. 그게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체험과 직관과 의외성에 기반한 글을 창작하면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밝혀둔다. 기술자는 못 되더라도 예술가는 되고 싶었다. 희망이 있다.

김욱진 코트라 실리콘밸리무역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