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현 고려대 연구교수,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미국과 멕시코가 접해 있는 국경도시들이 최근 이민자 급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23년 미국으로 입국하기 위해 남서부 국경을 넘다가 미국 국경순찰대에 체포된 불법이민자가 200만명이 넘었다. 역대 최고치다. 지난 12월 한달 동안에만 약 30만명이 월경을 시도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미국정부는 포용적인 이민정책을 포기하고 다시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고 다리를 폐쇄하고 철도 운행을 중단하는 등 국경단속을 강화하는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도 물밀듯이 밀려드는 불법이민자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합법적 경로로 안전하게 미국에 입국하려면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의 모바일 앱에서 면담 예약을 하고 국경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하지만 그마저도 예약인원이 한정돼 있거나 앱이 다운되기 일쑤다.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으로 어렵다.

그렇다 보니 국경지역은 망명 신청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불법 월경을 시도했다가 추방된 사람들로 포화상태다. 지역주민들과 이민자들은 생필품 외에도 깨끗한 물, 위생시설, 식량, 숙소가 부족하고 범죄와 폭력에 노출돼 있다. 뿐만 아니라 멕시코 국경까지 오기 위해서 정글과 강을 건너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강에서 죽기도 하며 무장단체의 공격을 받아 돈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렇게 열악하고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중남미인들이 미국에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출신국에서 존엄하고 안전한 삶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 미국으로 가려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 불안과 폭력 증가로 심각한 정치사회적 위기를 겪고 있는 에콰도르가 좋은 사례다. 2023년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체포된 에콰도르 출신 불법이민자 숫자는 11만6229명으로 2022년 2만4060명 대비 4배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에콰도르 내의 폭력과 범죄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새로운 마약 유통 중심지 된 에콰도르

에콰도르는 지리적으로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인 콜롬비아와 페루 사이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 간 마약밀매와 폭력이 난무했던 이웃 국가들과 달리 마약밀매로 인한 문제가 없는 평화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나라였다. 2016년까지 강력한 콜롬비아혁명군(FARC)이 마약 운송을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갱단과의 충돌이 없었다.

그러나 2016년 콜롬비아 평화협상으로 콜롬비아혁명군(FARC)이 해체되자 갱단이 마약밀매에 직접 간여하게 됐고 콜롬비아와 멕시코에 대한 마약소탕 전쟁으로 에콰도르가 새로운 마약 유통 중심지로 부상했다. 콜롬비아에서 생산된 코카인의 1/3 이상이 국경을 통해 에콰도르로 들어와 수출품 컨테이너에 실려 미국과 유럽으로 반출됐다. 이에 미국은 에콰도르를 최대 마약밀매 및 생산국가 목록에 포함했다.

넓은 태평양 해안을 끼고 있는 에콰도르는 항구로서의 이점과 미국 달러화를 법정화폐로 쓰기 때문에 돈세탁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멕시코와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매력적인 활동무대가 됐다. 거대 마약 카르텔은 지역 갱단을 통해 에콰도르를 마약 유통 중심지로 만들었다.

에콰도르에서 폭력과 마약밀매의 진원지는 바로 교도소였다. 갱단 두목들은 많은 특권을 누리며 교도소에서 마약사업을 관리하고 있었다.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 에콰도르 대통령(2007~2017)의 엄격한 징역형 정책으로 2021년 교도소 수감자는 2009년 대비 4배 증가한 4만명에 달했다. 2020년 12월 에콰도르에서 가장 오래되고 위험한 갱단인 로스 초네로스(Los Choneros)의 리더 호르헤 루이스 삼브라노(Jorge Luis Zambrano)가 살해된 후 하위 갱단인 로스 초네킬러스(Los ChoneKillers), 로스 로보스(Los Lobos), 로스 피포스(Los Pipos), 로스 티구에로네스(Los Tiguerones)가 마약 유통경로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싸움을 벌이면서 교도소 내 폭력사태가 시작됐다.

2021년 한해에만 총 500명이 넘는 수감자가 살해당했다. 교도소 내 폭력이 거리로 확대되면서 2023년 동안 폭력으로 인한 사망자는 7592명으로 2022년의 4603명과 비교해 약 64.9% 증가했다. 2023년 살인사건 발생률은 인구 10만명당 40명에 달할 정도다. 경찰 언론인 시민사회활동가, 심지어 검사까지 살해됐다.

이처럼 에콰도르 내 폭력과 범죄의 증가로 에콰도르 국민의 치안 불안도 급격히 증폭되었다. 멕시코의 거대 마약조직인 시날로아 카르텔(Sinaloa Cartel)은 로스 초네로스와, 그리고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Jalisco Nueva Generacion Cartel)은 로스 로보스와 협력했다. 돈벌이가 되는 마약 사업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전 FARC 게릴라들과 일부 베네수엘라 갱단까지 마약 사업에 개입하면서 에콰도르의 폭력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방송국 뉴스룸 습격해 생중계한 갱단

지난 1월 9일 에콰도르 최대도시 과야킬에 있는 TC텔레비시온 방송국 뉴스룸에 산탄총과 기관총 수류탄 다이너마이트 등으로 무장한 복면괴한들이 난입해 뉴스 진행자에게 총구를 겨누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 장면의 주인공들은 바로 마약카르텔과 연계된 갱단 대원들이다.

2023년 극심한 혼란 속에서 야당이 부패 혐의로 기예르모 라소(Guillermo Lasso) 대통령 탄핵을 시도하자 대통령은 국회해산권으로 응수했다. 결국 에콰도르는 새로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조기 대선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게 됐다.

그런데 대선과정에서 범죄소탕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Fernando Villavicencio) 대통령 후보자가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콜롬비아 출신의 용병들이 체포됐고 전문가들은 멕시코 마약조직 시날로아 카르텔과 연결된 로스 초네로스를 배후로 지목했다.

대선에 승리한 세계 최연소(35세) 대통령이자 바나나 재벌의 아들인 다니엘 노보아(Daniel Noboa)는 취임 후 교도소 내 마약조직 소탕을 목적으로 갱단의 두목들을 보안이 강한 '라 로카(La Roca)교도소'로 이송할 것을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마약범죄와 차량폭탄 테러 납치 살인사건에 책임이 있는 로스 초네로스(Los Choneros)와 로스 로보스(Los Lobos) 두목들이 탈옥했다.

이에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교도소에 군병력을 투입하자 전국의 교도소에서 교도관 납치와 폭동이 일어났고, 급기야 갱단이 방송국을 습격해 생중계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노보아 대통령은 이 상황을 '내전'으로 규정하고 범죄조직을 통제하기 위해 즉각적인 군대 투입을 명령했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국 습격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검사가 또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포심에 개인의 자유와 인권도 양보

노보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국가를 군사화함으로써 범죄율을 줄인 엘살바도르의 나입 부켈레(Naib Bukele) 대통령의 강경노선을 모방하고 있다.

폭력과 범죄에 휩싸여 정상적으로 살 수 없다는 두려움과 공포감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미국 국경으로 밀어내고 있다. 90% 이상의 국민이 독단적인 부켈레 대통령을 지지하는 엘살바도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안전을 잃은 사람들은 사실상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기꺼이 양보한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면 제도는 약화되고 독재정치는 강화되며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된다.

국가가 무력에 대한 독점권을 상실해 영토를 통제할 수 없거나, 능력과 자원 부족으로 시민의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면, 또는 제도적 위기로 권위와 정통성을 상실하면 결국 국가는 '취약국가(Failed State)'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손혜현 고려대 연구교수,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