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증시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일본정부의 저금리정책 등 거시경제 변화의 영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10년 전부터 실행한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이 주효했다. 일본 증시가 30년 이상 전개된 장기 박스권에서 탈출한 중심에는 2014년부터 시작한 ‘스튜어드십 코드’와 2015년부터 시행된 ‘기업지배구조 코드’가 있다. 일본에선 이른바 ‘두개의 바퀴’라고 불린다.

책임 있는 기관투자가의 원칙인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와 기업들이 대화를 통해 성장전략을 수립하게 했고 주주를 배려하는 경영개선 방안을 유도했다. 기업지배구조 코드는 특수관계인과 일반 주주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주주의 권리 및 평등성을 확보하게 했다. ‘두개의 바퀴’를 추동하는 데는 일본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 공적기금의 통합 리더십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증시 사상최고치 경신, 아베 전 총리의 개혁 결실

2013년 아베 전 일본 총리는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모회사와 자회사의 이중상장과 순환출자, 소액주주 권리 외면 등으로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아베 전 총리가 경제성장 정책일환으로 기업지배구조 개혁과 이를 통한 기업가치 증대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2014년 금융청 주도로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했고, 일본 공적기금은 투자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베 전 총리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재계 단체들은 아베의 개혁을 희석시키려 저항했지만 그는 꿋꿋하게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아베 전 총리가 해외 행동주의펀드까지 접촉하면서 직접 설득에 나서자 주주가치 제고를 요청하는 외국계펀드를 ‘기업사냥꾼’으로 몰아가던 분위기는 수그러들었다.

도쿄증권거래소 주도로 주주환원 확대에 대한 이해관계자 논의도 활발히 진행됐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야마지 히로미 대표는 상장사와 행동주의 투자자 사이의 “솔직하고 공개적인 토론”을 촉구하는 등 건설적인 대화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자 했다.

일본 증시 반등의 직접적 계기는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 실행이다. 지난해 4월 도쿄증권거래소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미만인 상장사를 대상으로 자본 수익성과 성장성 제고를 위한 개선 방침과 구체적인 이행 목표를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또 자기자본이익률(ROE), 자본비용, PBR 1 이상 기업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일본거래소그룹(JPX) 프라임(Prime)150 지수를 출시해 기관투자자가 투자성과를 비교·분석할 수 있게 했다. 올해부터는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재한 기업을 매월 공표하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가 개선안을 요구한 후 올해 2월 니케이지수와 토픽스지수는 30% 가까이 올라 선진국 내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에 따른 기업가치 제고가 상당부분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로 인해 2023년 일본 증시의 자사주 매입규모는 1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ROE가 10% 이상인 상장사비중은 25%에서 33%로 증가했다.

윤석열정부, 일본 금융청 ‘강제’ 이행한 정책 의지 배워야

4월 총선을 앞둔 윤석열정부는 한국 증시 활성화 방안 찾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러나 최근 금융당국이 기업에 ‘밸류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내놓은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안에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매년 이해 당사자에게 알려야 할 ‘공시’를 ‘강제’가 아닌 ‘자율’로 하라는 점 때문이다. 일본의 자본시장 선진화 과정에서 금융청이 총대를 메고 정책 이행을 강제하고 우수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윤석열정부가 기업 밸류업 과정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대목이다.

한국 증시의 지배구조상 문제점은 대주주에 집중되는 경영권 프리미엄, 낮은 주주환원 유인 등이다. 소액주주 및 기관투자자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주식매수청구권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제도가 미비한 상황이다. 낮은 배당성향 등 주주환원 미흡과 지배주주 사익추구 등은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 때문이다. 이것은 재벌 중심 경제구조의 잔재로 만성적 한국 증시 저평가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기업 가치를 장기간 파괴한 상장기업들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국 주식의 저평가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 일본 자본시장 선진화는 금융청의 정책 의지가 작용했지만, 글로벌 일류기업을 목표로 일본 상장사들이 ‘절치부심(切齒腐心)’한 결과이기도 하다. ‘소유’의 문제가 중요하지만 기업은 ‘경영’으로 승부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