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농산물 면세 혜택 더 축소 … 집행위 초안보다 기준 강화

지난 2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의회 건물 인근에 농민들이 트랙터 수십대를 몰고와 유럽연합 본부 주변 도로를 봉쇄한 채 시위를 벌이는 모습. AP=연합뉴스
농민시위로 연일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연합(EU)이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농축산물에 대한 면세 조처를 1년 더 연장하는 대신 면세 규모는 사실상 축소하기로 했다.

EU 상반기 의장국인 벨기에 정부는 이날 오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27개국 대사들이 우크라이나 상품에 관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 ‘자율적 무역 조처’ 연장에 관한 새 타협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벨기에 정부는 새 타협안이 “우크라이나 지원과 EU 농업 시장 보호 사이에서 균형 잡힌 접근을 담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율적 무역 조처는 EU가 시행 중인 농축산물에 대한 한시적 관세 면제 혜택이다. 2016년 EU-우크라이나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산 상품은 면세 혜택이 적용됐으나 농축산물은 FTA 체결 이후에도 수입 할당량이 유지되고 관세도 계속 부과됐다.

그러다 EU는 2022년 2월 전쟁이 발발하자 우크라이나 지원책의 하나로 같은 해 6월부터 1년간 농축산물도 한시적으로 관세 면제 대상에 포함했다. 지난해 6월 면세 혜택은 1년 연장됐으며 올해도 추가 연장이 합의돼야 이 조처가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전쟁 장기화와 함께 면세 혜택을 받은 값싼 우크라이나산 농축산물 공급이 이어지면서 EU 농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불만이 고조된 것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트랙터 시위’에 참가한 농민 대다수도 EU 규제와 함께 우크라이나산 등 수입 농산물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집행위는 지난 1월 면세 혜택 추가 연장을 위한 계획을 발표하면서 설탕·계란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량 급증시 면세 혜택을 중단하는 장치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지난 20일 27개 EU 회원국과 유럽의회는 이 같은 집행위 초안을 토대로 2022~2023년 평균 수입량 초과 시에는 다시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에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폴란드와 프랑스 등 다수 회원국들이 잠정 합의에 포함된 면세 제한 조처가 불충분하다고 제동을 걸면서 후속 조처가 지연됐다. 각국 농민단체를 비롯한 농민들 항의에 회원국들이 굴복한 셈이다.

결국 의장국인 벨기에 중재로 우여곡절 끝에 다시 합의된 새 타협안에는 면세 혜택 중단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평균 수입량 참고 기간을 2021년 하반기부터 2023년까지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2021년 하반기는 우크라이나산 농축산물이 면세 혜택을 받기 이전으로 수입량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이 기간이 포함되면 ‘면세 상한선’이 낮아질 전망이다. 관세가 다시 부과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다.

이날 합의된 타협안은 유럽의회 표결을 거쳐 EU 장관급 이사회에서 공식 승인돼야 확정된다. 그런데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가 있고 현재 의회 회기는 내달 말이면 종료된다.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기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의미다. 타협안 처리를 최대한 서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이르면 내달 9일쯤 개최될 유럽의회 산하 국제무역위원회에서 새 타협안에 대한 동의가 이뤄지면 이후 곧바로 의회 본회의에서 투표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절차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거나 EU 회원국 중에서 다시 제동을 거는 경우에는 6월부로 면세 혜택이 아예 종료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째 접어들면서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이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서방의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전황이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서 EU 각국이 자국 농민 다독이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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