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 이란에 대한 추가제재 논의 … 주요국 정상간 통화로 확전방지

16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의 미사일 사진과 페르시아어로 ‘이스라엘은 거미집보다 약하다’는 문장이 적힌 거대한 반이스라엘 광고판 근처를 이란 남성이 걸어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충돌로 중동정세가 급변하면서 세계 주요국들이 확전방지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이란에 대한 추가제재 논의에 본격 착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의 확전방지를 위해 이란과 이스라엘 모두를 설득하는 모양새다. 중국과 러시아 등은 서방과 달리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지는 않지만 더 이상의 확전을 막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이다. 가자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금도 벅찬 가운데 중동전쟁까지 추가로 불붙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공감대로 보인다. EU 27개국 외교장관은 16일(현지시간) 긴급 화상회의를 통해 대이란 추가 제재 논의에 착수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오후 회의가 끝난 뒤 “일부 회원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공격과 관련, 기존 대이란 제재를 확대할 것을 요청했다”며 이날 제안을 토대로 구체적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보렐 고위대표는 이란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 중인 러시아에 드론을 공급하는 것과 관련한 기존 제재 확대뿐 아니라 중동 지역내 대리세력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레바논 국경지대나 예멘,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이란산 무기가 사용된 정황을 예로 들었다.

일부 회원국은 이란이 생산하는 무기에 들어가는 부품도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렐 고위대표는 27개국 외교장관이 모두 이란의 공격을 강력히 규탄했으며,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EU의 확고한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EU는 수일 내에 구체적 논의를 거쳐 오는 21일 외교이사회 회의에서 다시 이 사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면서도 보렐 고위대표는 “추가적인 긴장 고조를 피해야 한다는 데 단합된 입장으로, 모든 당사국에 자제력을 발휘할 것을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미국도 독자적인 대 이란 제재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날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이스라엘을 공습한 이란에 대한 추가적인 경제 제재를 수일내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나는 수일안에 이란에 대한 추가적인 제재들을 채택할 것으로 전적으로 예상한다”면서 “미국은 이란의 석유 수출 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에 관해 더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옐런 장관은 회견문을 통해 “재무부는 이란 정권의 악의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동을 계속 차단하기 위해 우리의 제재 권한을 사용함에 있어 동맹국들과 협력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옐런 장관 발언은 IMF 총회 참석을 위해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장들이 워싱턴 D.C.에 모이는 시기에 나왔으며 미국은 각국을 상대로 이란을 압박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전망이다.

전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주요 7개국(G7·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이 이란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경제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제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확전 방지를 위한 움직임도 분주하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 통화를 통해 이란과 군사 충돌에서 침착한 대응을 촉구했다고 영국 총리실이 16일(현지시간) 밝혔다. 총리실은 “총리는 심각한 갈등 확대가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으며 중동 내 불안만 심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며 “침착함이 우세한 순간”이라고 전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지난 13일 이란의 대이스라엘 공습 이후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하면서 이란에 대한 반격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확전방지에 가세했다. 중국은 이란,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 연쇄 접촉을 통해 상황 관리 및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15일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이란을 두둔하면서 이스라엘을 비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1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왕 주임은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무장관과 통화에서 지난 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이란 영사관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심각한 국제법 위반이며 용납될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의 조치가 제한적이며, 이란 영사관에 대한 공격에 대응한 자위행위라는 이란의 성명에 주목했다”면서 “이란이 현 상황을 잘 처리하고 자국의 주권과 존엄을 수호하면서 더 이상의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아미르압돌라히안 장관은 왕 주임에게 “현 상황은 매우 민감하다”면서 “이란은 자제력을 발휘할 용의가 있고 상황을 더 악화할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같은 날 중국은 이스라엘과도 접촉했다. 자이쥔 중국 중동문제 특사가 이스라엘 요청으로 이리트 벤아바 주중 이스라엘 대사를 만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자이 특사는 가자지구에서 즉각적인 휴전과 적대행위 중단을 요구했으며 지역 내 긴장 고조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왕 주임은 또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과도 전화 통화를 하고 중동지역 충돌 확산 방지를 위해 협력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이란과 러시아 정상간 통화도 이뤄졌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중동지역 긴장이 증폭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라이시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과 한 전화 통화에서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 공격은 제한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지역 전체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새로운 긴장을 방지할 수 있도록 모두가 합리적인 자제력을 발휘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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