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일반담배 흡연 통로 역할” … 제도 미비로 학교 앞서도 판매

WHO, 중독성·유해성에 청소년 해악 우려 … 신종마약 수단 악용도

청소년들의 일회용 액상형 전자담배(액상 전자담배) 흡연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일반담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하기 쉽고, 부모와 선생님 등의 눈에 띄지 않게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액상 전자담배가 유해성도 문제지만 일반담배 흡연으로 넘어가는 통로 역할을 한다며 우려한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액상 전자담배는 담배에 포함되지 않아 정부 정책과 규제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이런 사이 액상 전자담배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자담배 24시 무인매장이?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상반기 IFS 프랜차이즈 창업·산업 박람회를 찾은 예비 창업자들이 전자담배 24시 무인매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질병관리청의 ‘2023 청소년 건강행태 조사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중1~고3) 남학생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3.8%로 나타났다. 전년(4.5%)보다는 소폭 감소한 수치지만 2020년 2.7%, 2021년 3.7%였던 것을 고려하면 증가세다. 여학생의 경우 2022년 2.2%에서 지난해 2.4%로 증가세를 보였다.

◆들키지 않고 흡연 가능성 높아 = 전문가들은 액상 전자담배를 찾는 청소년이 증가하는 이유는 일반담배에 비해 어른에게 들킬 염려가 적고, 건강에도 ‘덜 나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실제로 액상 전자담배는 일반담배나 궐련형 전자담배에 비해 냄새가 적고, 담배 같지 않은 디자인 때문에 청소년들이 몰래 휴대하며 흡연하기 편하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액상 전자담배 대부분은 손 안에 감출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아 선생님은 물론 부모들도 발견하기 쉽지 않다”면서 “특히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 사이에서도 액상 전자담배가 상대적으로 인체에 덜 해롭다거나 금연보조제라는 환상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액상 전자담배가 건강에 덜 나쁘다는 학술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오히려 학계는 액상 전자담배 가열 시 발생하는 화합물에 의해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특히 심장과 호흡기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소비자학회가 ‘담배 유해성 관리제도의 현재와 미래 진단’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식의약 안전 열린포럼’에서 신호상 국제특성분석연구소 교수는 “궐련형 담배를 만드는 제조 환경과 달리 액상 전자담배는 가내 수공업 수준으로 만들어지는 제품도 많다”면서 “이미 발암 물질로 알려진 유해 성분이 포함된 제품도 있다”고 지적했다.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어 =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청소년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흡연율을 높이는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청소년들 사이에선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성인 인증을 통해 기기와 액상을 구매하는 방식이 공유되고 있다. 성인 인증을 마친 계정만 있으면 구입이 가능할 뿐 아니라 별도 성인 인증 없이도 구할 수 있는 웹사이트나 블로그를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일반담배(귈련)는 온라인에서 구매가 불가능하다.

‘담배 자판기’도 사각지대다. 담배 자판기는 신분증 스캔을 통해 성인 인증이 진행되는데 그 헛점을 이용하는 방법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가 지난해 11월 온라인 모니터링과 현장 점검 결과에 따르면 62곳 중 52곳이 출입문을 상시 개방해 제대로 된 성인 인증 장치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청소년 유해 물건’에 해당하는 액상 전자담배가 학교 주변 무인 판매점에서도 팔린다는 점이다.

국가금연지원센터가 모니터링한 서울지역 19개 무인 판매점 중 5곳이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에 위치해 있었다.

교육환경법에 따르면 교육환경 보호구역 내에선 담배자판기를 설치해선 안된다. 하지만 현행법상 액상 전자담배는 담배에 포함되지 않아 자판기 설치를 막을 뾰족한 수단이 없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현재 담배사업법에 담배의 정의가 연초 잎 제품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면서 “어떤 법률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보니 관련 부처가 없어 규제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유해물질”이라고 말했다. 이어 “담배 정의가 확대돼야 관할 부처가 정해져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며 “진입장벽이 낮은 액상 전자담배를 이용하던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일반담배 흡연으로 넘어가는 '게이트웨이 이팩트'를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구입경로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종마약 유통 악용 우려 = 또한 액상 전자담배 기기장치(카트리지)가 신종 마약 사용의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런 대목이다. 카트리지에 니코틴 액상과 함께 또는 니코틴 액상 대신 액상 대마를 넣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전자담배 액상 카트리지에 합성 대마를 넣어 10대와 20대에게 판매한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 센터장은 “시음행사로 위장해 마약이 들어간 음료를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나눠주고 일부 학부모까지 협박했던 일명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을 생각하면 현실적 위험”이라며 “마약상이 니코틴 액상으로 속여서 팔면 중독된 이후에야 이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액상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청소년들도 위험군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판매금지 등 규제는 세계적 추세 = 이런 이유들로 세계 각국은 액상 전자담배 판매 자체를 규제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일회용 액상형 전자담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또 올해 안에 일회용 액상형 전자담배의 제조·광고·공급을 금지하는 법안도 도입할 예정이다.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일회용 전자담배 판매 금지 △학교 및 마오리 마을 회당 300m 이내 신규 매장 입점 금지 △어린이 대상 마케팅 금지 등 관련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2020년부터 과일향이 나는 일회용 전자담배 ‘퍼프바’의 미국 내 판매를 금지했다. 10대 청소년의 흡연을 부추긴다는 이유다. 같은 이유로 프랑스 영국 등도 액상 전자담배의 판매를 금지하거나 수입을 금지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 벨기에는 일회용 전자담배의 온라인 판매를, 독일은 향이 첨가된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했다.

현재 세계 34개국이 액상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액상 전자담배가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중독 위험과 유해성, 아동·청소년 등을 유인하는 마케팅 등으로부터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단위의 시급하고 강력한 전자담배 규제 강화 행동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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