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일본은행은 드디어 통화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정책금리를 - 0.1%에서 0~0.1%로 10~20bp 인상해 그동안의 마이너스금리를 플러스금리로 올려놓았다. 주식시장 개입을 위해 직접 투자했던 상장지수펀드(ETF)와 부동산투자신탁(REITS) 매입도 중단했다. 10년국채 수익률을 1%에서 통제하는 수익률곡선통제(YCC)도 함께 폐지했다.

일본은행이 2007년 이후 정책금리를 인상한 것은 국내 경제사정이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수준인 2%를 넘어섰고 기업의 수익이 크게 늘어 올 춘투에서 평균임금 인상률도 5%에 달했다. 물가와 임금이 선순환 구조를 보이면서 내수경기가 호조인 데다 주식시장도 활황세를 타고 있으니 더 이상 마이너스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채매입중단 빠진 일본의 통화정책 전환

그럼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일본은행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의 핵심인 국채매입정책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 연준 등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을 양적완화에서 긴축으로 변경할 때는 예외없이 정책금리 인상과 함께 국채매입을 중단하고 보유국채의 만기가 도래할 때 재투자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차대조표를 줄이는 양적긴축정책을 병행한다. 그런데 이번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변경에는 유동성을 공급하는 국채매입정책의 중단이 포함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첫째, 일본은행이 20년 넘게 초완화적 통화정책을 운용했고 경제주체들도 이 상황에 너무 익숙해 있다. 통화정책 방향 전환시 장기금리 급등 등 금융시장이 예기치 못한 혼란에 빠지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장기금리를 통제할 수 있는 수익률곡선통제도 폐지했으니 국채매입은 금융시장의 중요한 안전판이 된 것이다.

둘째,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은 재정과 너무 긴밀히 연결돼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2024년 지출예산(112조6000억엔)중 국채원리금 상환용 예산은 27조엔(이중 국채이자 상환용 예산은 9조7000억엔으로 전체 예산의 8.6%)으로 전체 예산의 24%를 차지하는데 사회보장예산(37조7000억엔) 다음으로 많다.

수입예산에서는 국채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35.4조엔으로 전체의 31.5%를 차지하는 중요한 재원이다. 예산의 중심에 국채 발행과 상환이 자리잡은 구조에서는 국채발행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본은 초고령사회에 맞춰 사회보장예산 등을 늘리려 한다. 그러나 증세는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는 터라 쉽지 않다. GDP대비 국가부채비율(2023년 기준)도 255%에 달해 국채발행 확대도 용이하지 않다. 그러니 사회보장예산 등을 늘리려면 국채발행 비용을 최소화해 국채원리금 상환예산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재무성에 따르면 금리가 1% 오르면 국채이자 부담은 3조7000억엔(2025년 기준) 늘어난다. 그런데 시장금리를 안정시켜 재정수요를 충족시키려면 일본은행의 국채매입(현재 일본은행은 일본국채 발행잔액의 53%를 보유)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과다한 국가부채로 부작용 겪는 일본경제

과도한 민간부채가 경제성장을 제약하듯이 과다한 국가부채는 일본은행의 시의적절한 통화정책 운용을 제약한다. 이미 이에 따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8월부터 작년까지 3%대를 보이면서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고 엔달러환율도 당초 기대와 달리 34년 만에 154엔을 넘어서는 등 약세를 지속하면서 물가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와중에 중동 사태에 따른 에너지가격 상승도 물가상승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으니 지금 일본 국민들은 잃어버린 3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실질임금 하락과 같은 인플레이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본의 경제사정은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황 성 전 한국은행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