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기후소송 제기 4년 만에 첫 공개변론

“생명권·환경권 침해” vs “40% 감축 문제없다”

청소년 활동가들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기후소송’ 변론이 헌법재판소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헌법재판소는 23일 오후 2시부터 청소년 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기후변화 소송 4건을 병합해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이날 공개 변론은 첫 기후 소송이 제기된 이후 4년 1개월 만이다. 기후소송 공개 변론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처음인데 기후변화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는지가 집중 논의될 전망이다.

청소년 환경 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 회원 19명이 2020년 3월 헌법재판소에 국내 첫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정부가 옛 녹색성장법과 시행령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7년 대비 24.4%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기후 위험을 예방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2021년 탄소중립기본법, 2022년 같은 법 시행령이 차례로 제정돼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로 감축한다는 목표가 설정됐다. 그럼에도 청소년기후행동은 △옛 녹색성장법이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구체적 기준을 명시하지 않고 행정부에 백지위임한 것 △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불이행한 것 등이 자신들의 환경권과 생명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시민 123명, 영유아 62명의 부모, 다른 시민 51명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잇따라 헌법소원 청구인으로 나서 하나로 병합됐다.

이날 공개 변론의 쟁점은 기후변화로 인해 소송 당사자 혹은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는지 여부다.

청구인들은 “예상되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포함하는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특히 “한국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남아있는 탄소 예산을 과도하게 소진해 2030년 이후를 살아갈 세대에게 막대한 감축부담과 기후변화 피해를 전가하므로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우리가 미래세대의 권리를 끌어다 소진하고 있는데 이는 다수에 의한 소수 권리의 침해”라며 “침해를 막는 것이 헌법재판소 본연의 역할이자 책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청구인들의 주장은 근거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각국의 산업 구조, 배출량 정점 및 감축 시작 시기 등 실정에 맞춰 결정하는 것인데 이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40% 감축’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측은 “한국은 녹색성장법과 탄소중립법을 통해 다양한 정책을 실행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해 왔으므로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제조업 비율이 높은 국내 여건에서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산업 부분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줄인 조치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이 2028년 이후 높아지는 이유는 감축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필요한 시간, 정책 효과 발생을 위한 시차 등에 따른 것이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또 정부는 “청구인들은 심판대상조항들 및 계획의 효력을 직접 받는 상대방이 아니고 사실상 이해관계가 있을 뿐이므로 자기관련성이 없다”며 “심판대상조항들 및 계획은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시책 등으로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므로 직접성이 없으며, 심판대상계획으로 인한 기본권침해의 현재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날 변론에는 전문가 참고인으로 청구인측이 추천한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과 국무조정실장 등 정부 이해관계인측이 추천한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가 출석한다.

한편 서울 구일초등학교 4학년 3반 이예솔 어린이는 지난 11일 기후소송 변론에 앞서 “요즘 점점 기후 변화가 심해지고 있어요. 지구가 1도씩 올라갈 때마다 온갖 자연재해가 일어난대요”라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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