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대교수, 사직 가능 시점 놓고 이견 … 외래진료 축소 움직임

의대증원을 반대하며 의과대학 교수들이 제출한 사직서의 효력 발생 시점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각을 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대교수들 사이에서 피로도를 호소하며 외래진료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23일 의료계는 의대교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시작한지 한 달 째인 오는 25일 실제로 의료 현장을 떠나는 사례가 나올 것이라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지난 19일 온라인으로 총회를 연 뒤 보도자료를 통해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변함이 없다”며 “적절한 정부의 조치가 없을 시 예정대로 4월 25일부터 교수 사직이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비대위도 지난 20일 브리핑에서 “사직서를 낸 의대 교수들은 이르면 이달 25일에 사직서가 수리될 거고, 수리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날 사직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인 교수들도 많다”며 “대통령이 대승적 차원에서 원점 재논의라는 결단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민법은 고용계약 해지 의사를 밝힌 뒤 1개월이 지나면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대교수들은 3월 25일부터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부가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1년 유예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며 의료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힌 2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대 교수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수리하지 않으면 효력 없어” = 하지만 정부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사직서 효력이 발생한다는 주장에 반박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지난달 25일 사직 서류를 냈어도) 수리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국립대 전임교수는 민법에 앞서 특별법인 ‘국가공무원법’을 적용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립대 교수의 사직은 통상 민법 대신 ‘사립학교법’을 적용한다고 보고 이 역시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한다는 주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가공무원법에서 의원면직(사직)은 행정처분에 해당하므로 임용권자의 사표 수리가 없으면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총장 또는 학교법인 이사장이 이를 수리하지 않으면 사직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수 이탈 계속될 듯 = 하지만 의료계 곳곳에서 일부 교수들을 중심으로 조용히 사직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무더기 사직이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교수들의 이탈이 지속해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강희경·안요한 교수는 최근 환자들에게 오는 8월 31일까지만 근무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들은 “병원 곳곳에 게시된 안내문의 사유로 인한 저희의 사직 희망일은 8월 31일”이라며 “믿을 수 있는 소아신장분과 전문의 선생님들께 환자를 보내드리고자 하니 아래 병원 중 희망하는 병원을 결정해 알려달라”고 안내했다.

이들뿐 아니라 이른바 ‘빅5’ 병원 중에서도 사직 시기를 저울질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직을 고려하는 교수들은 돌보던 환자를 정리하고, 새로운 병원·의료진에게 연계해주는 등의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각자의 상황이 다른 탓에 사직 시기는 제각각일 가능성이 크다.

◆서울대 '주1회 전원 휴진' 논의 = 의대교수들은 또 진료를 더 줄이겠다고도 압박하고 있다.

전의비는 지난 19일 “장기간 비상 의료 상황에서 교수들의 정신적, 신체적인 한계로 외래와 입원 환자에 대한 진료가 재조정될 수밖에 없다”며 “대학별 과별 특성에 맞게 진료 재조정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진료 재조정’은 첫 방문 환자 진료를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 교수들은 이번 주부터 매주 금요일 외래 진료를 휴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대 의과대학·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23일 총회를 열고 ‘주 1회 전원 휴진’ 방안을 논의한다.

◆의대생, 총장 상대 소송 확산 = 한편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이 대학 총장을 상대로 내년 입학전형 계획에 증원분을 반영하지 말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충북대 의대생 168명은 22일 정부와 충북대 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학 입학 전형 시행계획 변경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앞서 의대생들은 정부를 상대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지만, 법원은 증원의 직접 상대방은 각 대학 총장이라 신청인 적격이 없다며 잇따라 각하했다.

이에 당사자적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가처분 신청으로 법적 대응 방향을 돌린 것이다.

이날 강원대·제주대 의대생들도 같은 취지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

또 이번주 안으로 성균관대·동국대·단국대·인하대·울산대 등 나머지 대학들도 동참할 예정이다.

의대생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는 “민사 가처분 심문은 보통 일주일 내에 열리고 2주 내로 결정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달 말 안에는 결정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다음주쯤 유급당하는 의대생들을 대리해 윤석열 대통령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박민수 복지부 차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라며 “헌법소원은 각하된 행정법원 집행정지의 즉시항고 결정까지 지켜보고서 의대생·전공의·수험생·교수 사건을 모두 모아 제기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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