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건 계류, ‘임기말 폐기’ 예고 … “차기 국회 계속 심사해야”

국민 5만명이 동의한 청원이 국회의원 임기 만료와 함께 무더기로 휴지조각이 될 위기에 처해졌다. 국회의원 임기와 상관없이 제안된 국민동의청원이 국회의원 임기에 맞춰 대규모로 폐기되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의원들이 직접 소개한 ‘의원소개 청원’과 구별돼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국민의힘이 설치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30일 안에 국민 5만명의 동의를 얻은 국민동의청원은 105건이었다. 이중 10건은 본회의 불부의, 1건은 철회되는 등 11건이 처리됐고 나머지 94건은 계류 중이다. 다음달 29일에 국회의원 임기가 마무리되면 계류된 국민동의청원은 모두 ‘폐기’될 전망이다. 20대 국회땐 2020년 1월에 도입된 국민동의청원 7건이 당시 기준 ‘30일 이내 10만명 동의’ 조건을 넘어 상임위에 회부됐지만 2건만 ‘본회의 불부의’ 됐고 나머지 5건은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지금껏 채택된 국민동의청원은 단 한건도 없다. 한 달 안에 유권자 5만명 이상으로부터 동의를 얻은 청원이지만 제대로 심사 한 번 하지 못한 게 수두룩하다. 국회의원들은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국민청원 인기에 자극 받고 ‘법적 청원 기관’으로서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전격적으로 국민동의청원을 만들었지만 이후엔 외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국민동의청원의 경우엔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소개한 의원소개 청원과 달리 국민 5만명의 동의로 올라온 만큼 임기말 폐기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51조에서는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기타의 의안’에 대해 국회의원 임기와 함께 폐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법은 ‘의안’과 ‘청원’을 구분해 규정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민동의청원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제출했다는 점에서 임기 제한을 받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가 발의·제출한 의안과는 다르게 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민주당 윤영덕 의원, 신영대 의원 등은 국민동의청원이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하더라도 차기 국회에서 이를 계속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입법조사처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제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청원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이면서 공동체 의제에 관한 다수의 의사를 결집하는 플랫폼”이라며 “국민동의청원은 법률 제·개정 성과를 기대할 수 있어 국민의 입법과정 참여를 보장하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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