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성공하며 의욕만 앞세워서는 소탐대실할 뿐이다. 현재 주식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밸류업 정책이 시험대에 서 있다. 정부는 밸류업 정책의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5월 중 정책을 확정할 예정이다. 만약 정부가 주가부양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기업들은 정부의 주주환원 유인책과 사회적 압력에 의해 배당 확대에 동참할 수밖에 없고 정책은 성공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미래를 준비할 기업의 투자재원이 고갈되어 기업의 혁신성장은 차질을 빚게 되고 밸류업 정책은 소탐대실의 정책으로 평가될 것이다.

실패한 ‘경쟁력업정책’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시대의 현안에 대한 판단 미스로 정책실패를 경험했던 ‘경쟁력 10% 이상 높이기 정책’(경쟁력업정책)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자. 경쟁력업정책은 자본자유화와 개방 확대로 해외자본이 유입되고 수입이 늘면서 물가는 뛰고 경상수지는 큰 폭으로 악화되던 1996년 9월 탄생했다. 경제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경쟁력업정책은 물류비, 인건비, 공장용지 가격, 기업 금융비용 등 경제 전체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고비용 요인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정보화, 기술혁신, 경영혁신 지원을 통해 창업과 신산업을 육성하는 등 한국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했다.

경쟁력업정책은 한국경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신한국’을 건설하려는 이상적인 정책이긴 했으나 통찰력이 부족했다. 자본자유화 시대에서는 경상수지 안정화가 최우선 과제라는 점과 환율정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고비용 해소와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동시에 달성하고 물가와 경상수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환율인상 정책을 활용하지 않은 것은 수출가격 인하를 통한 헐값 수출 증대의 악순환을 끊고자 하는 결의가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환율정책의 배제와 경쟁력업정책의 경쟁력 제고효과 지연이 겹치면서 1996년 경상수지는 전무후무한 250억달러 수준의 적자를 기록하고 다음해 한국은 외환위기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밸류업 정책은 일견 간단한 정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시대의 최대현안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세계경제는 평화공존의 세계화 질서가 붕괴되고 국가와 기업 모두에서 각자도생과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세계화 시대의 우등생이었던 우리나라와 한국기업은 새 시대를 맞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으로 중국의 반도체 시장은 닫히고 미국 주도 동맹에서는 첨단분야에 관한 미일협력과 같은 위상을 차지하지 못해 어중간한 상태에 놓여 있다. 최근 일본이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의 지분 매각을 압박하는 것은 동맹 간에도 각자도생과 힘의 질서가 통용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혁신성장과 사업재편 지원 우선돼야

엄혹한 글로벌 환경에서 한국경제가 사는 길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해온 기업들이 힘겨운 첨단기술 경쟁과 축소되는 시장에서도 혁신성장과 기업가치 제고를 달성해 글로벌 선두그룹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는 외길밖에 없다. 경쟁력업정책이 자신만의 동굴에 갇혀 경상수지 적자 탈피와 환율정책의 중요성을 소홀히 취급해 실패했듯이 밸류업 정책이 현시대의 현안인 혁신성장과 기업가치 제고의 중요성을 소홀히 취급하고 주가부양의 동굴에 머문다면 최악의 선택이 될 것이다.

일본 사례를 보면 기업들은 저수익 사업을 여러 이유 때문에 떼어내지 못하고 계속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혁신성장 분야로 적극 진출하고 저수익 사업을 신속하게 떼어낼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현 시점의 한국경제에 필요한 밸류업 정책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주환원을 고집하지 않고 기업들의 진정한 밸류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혜안을 기대한다.

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