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이뤄진 여야 영수회담이 싱겁게 끝났다. 결과의 시시함에 반해 (친)야권 진영의 비판은 꽤나 매섭다. 총선에서 대패했으면 국정기조를 바꿔야 하는 데 그럴 기색을 전혀 볼 수 없다는 게 골자다.

총선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정운영에 있어서 독단-독선-독주 양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평이다. 대통령 가족(김건희 여사) 비리 의혹,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이태원 참사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 통과와 이를 위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자제, 그리고 민생회복 지원금 실시 여부 등 시시비비와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의제들에 대해 윤 대통령이 수용불가라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는 설명(변명)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이나 더불어민주당의 회담 준비 양상을 보면 쟁점 사안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는 게 딱히 목적인 회담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퇴장하는 기자들을 다시 불러 자신의 요청 의제 및 사항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윤 대통령이 그 의제들에 대한 자기 입장을 늘어놓는 데 주력한 것도 다 그런 이유였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소통의 물꼬를 트기 위한 만남 그 자체의 성사와 각자의 입장을 털어 놓는 데 방점을 찍고 준비하고 실행한 회담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이 바뀔 것을 기대했다거나, 그 기대에 비추어 실망스럽다며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

거리둠과 지켜봄, 기다림을 견디는 인내 필요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바뀐 모습을 기대했거나 바뀌지 않은 모습에 심히 실망한 것은 ‘집권세력의 총선 대패 → 국정쇄신 → 야당의 요구 수용’이라는 연쇄 공식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또 ‘야당의 총선 승리 = 민심수용의 결과’ ‘야당의 요구 의제 = 민심’이라는 등치 공식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식에 기초한 사고와 시각은 타당하다. 대의민주주의론의 ‘교과서’ 상으로는. 하지만 현실은 교과서와 다르다. 우리 보통사람들의 삶도 그렇고 정치도 마찬가지다. 교과서는 (특정한 ‘가상의 조건’ 위에서만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끌어낼 본질이 있음을 가정하고 울퉁불퉁하고 꼬불꼬불한 실제의 경우를 사상(捨象)한 추상적 원리를 담고 있을 뿐이다.

본질의 가정과 원리의 추출이 고유 임무인 학문의 세계나,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자신이 옳다는 메시지를 신속하고 간명하게 전달해야만 하는 언어정치(이데올로기의 담론화)에서는 그러한 원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성만이 아닌 반지성적 감정마저 작동하는, 또 생각과 처지가 서로 다른 이들의 관계 속에서만 해법이 도출되는 삶과 정치의 구체적 현실에서는 그 중요성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원칙 위반이라는 혐의를 받는다고 해도, 또 시간이 더디고 효과가 덜 나온다고 해도 뒤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샛길로 들어서야 할 때도 있다. 삶에서도, 정치에서도 모두 거리둠과 지켜봄과 기다림을 견디는 ‘인내’가 중요한 이유다.

그게 언제든 회담형식을 통해 합의 의제 도출을 목적으로 삼고 협치 환경을 조성하려면 지지부진함을 인내하며 ‘거래’를 준비해야 한다. 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자 내어줄 것을 추려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치에서 거래는 다소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상대가 있어 어느 한측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는 관계적 실천에서 거래는 필수다. 얻어야 할 것들의 우선 순위와 포기하고 양보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정해야 한다. 주고받을 것의 항목들을 정하라는 것이다. 또 거래 실행의 타이밍도 정해야 한다. 회담의 결렬과 상대방에 대한 비판은 그러한 거래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거래할 의사 없음 표명할 기회로 삼았나

사실 이번 영수회담은 거래의 준비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했어도 될 일이었다. 양측 다 급하게 만나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거래의 의사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오히려 양측 다 거래 의사가 없음을 표명할 기회로만 삼았던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계속 만나자는 약속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든 간에 거래를 염두에 둔 준비를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싱겁지도 시시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근사한 영수회담과 협치를 진짜 하겠다면 말이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 휴마니타스칼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