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채 상병 익사사건 진상규명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윤석열정권이 기를 쓰며 막아섰지만 진실을 밝힐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남은 것은 윤 대통령이 총선 민심을 받아들여 이를 수용하느냐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느냐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리란 것이 대체적 전망이다. 하지만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끝나는 게 아니다. 분노한 국민저항은 물론이고 국회 재의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설사 21대 국회에서 특검 재의결이 안되더라도 민주당 등 야권은 의석수가 더 많아진 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시간의 문제일 뿐 특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의 실정법 위반이 확인되면 탄핵사유도 될 수 있다.

거부권 행사 하더라도 시간문제일 뿐 특검 피하기 어려워

입대한지 넉 달도 안된 해병대원이 공명심에 눈먼 상관 지시로 급류에 들어갔다가 숨진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원칙대로만 처리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정권의 명운을 걸 사안은 아니었다. 이 사건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될 정도로 커진 데에는 윤석열정권의 ‘속성’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윤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법을 무시하는 내로남불 행태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해병대사령관 해군총장 국방부장관의 결재를 받아 경찰에 이첩하기 직전까지는 규정대로 진행됐다. 문제는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구명조끼도 없이 장병들을 급류에 밀어 넣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 임성근 사단장을 빼라는 윗선의 부당한 간섭이 화근이었다.

장관 결재내용이 하룻밤 사이에 뒤바뀌고 이를 억지로 관철하려다보니 무리가 따르고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군내 성폭력과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1차 기초수사를 한 뒤 민간에 이첩하라는 군사법원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내용이었다. 썩어빠진 관성대로 힘으로 찍어눌러 뭉개면 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을지 모르나 오판이었다.

박정훈 수사단장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당한 지시였다. 현장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이 모두 아는 채 상병 죽음의 진상을 어둠에 묻을 수는 없었다. 권력의 부당한 지시를 따랐다가 모든 책임과 불명예를 혼자 덤터기로 뒤집어쓰고 법의 심판까지 받을 개연성이 컸다. 고민이 많았으리라. 일개 대령이 위의 뜻에 반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곧은 길’을 택한다는 것은 형극의 길이고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국방부는 항명죄를 들씌워 ‘입틀막’을 시도했다. 그러나 진실을 완벽히 파묻을 수는 없었다. ‘외로운 박 대령’을 지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대통령실이 부당하게 개입한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외압이 시작된 지난해 7월 31일 이종섭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통화기록이 나오고, 윤 대통령의 심복 중 심복이라는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에게 전화한 기록도 확인됐다. ‘빼박’ 증거들이다.

한번 잘못 낀 단추는 계속 어긋날 수밖에 없다. 국방부장차관 해병대사령관 등 관련자들이 곧 드러날 거짓증언을 거듭해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핵심 관련자들에게 국회의원 공천이나 보직영전 등 특혜를 베풀고, 퇴임한 국방부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해 빼돌리려던 것이 국민의 분노를 사 총선악재로 작용했다. 대통령의 잘못된 대응이 온 나라를 멍들게 하고 군기를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 모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특검 가능성 임박하자 각자 제 살길 모색하는 ‘공범대열’

특검이 임박하자 일사불란해 보이던 ‘거짓말 공범대열’에 균열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해병대 수사기록 회수는 나중에야 알았다고 실토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낙선 후 국민의힘을 탈당한 신범철 전 국방부차관, 재임용을 포기한 유재은 법무관리관 등의 언행은 여차하면 입을 열어 제 살길을 도모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의문이 있다. 해병대 소장에 불과한 사단장이 뭐 길래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온통 나라를 들쑤실 부당한 간섭을 했을까. 부하장병을 사지로 내몰고도 책임을 부하들에게 전가하는 ‘철면피 사단장’이라면 온갖 곳에 줄을 대며 자신의 구명로비에 목을 맸으리란 것은 능히 짐작된다. 그러나 결정권자까지 움직여 명백한 혐의사실을 빼도록 만들기란 쉽지 않다.

항간에 유력하게 나도는 최고 비선실세 연관설은 차마 믿고 싶지 않다. 특검 수사만이 분명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