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지분율 규제 완화 … 총수일가 지배권 강화로 악용

공정위 "기업 투명성ㆍ책임성 강화하기 위한 정책적 판단"

우리나라 지주회사 제도는 몇 번의 개악으로 '무늬뿐인 지주회사'로 전락됐다는 평가다. 정부 주도의 공정거래법 개정은 지주회사 규제를 완화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유도한 반면 재벌의 경제력집중 심화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27일 국회 정무위 채이배 의원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된 때는 1999년 2월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고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정거래법에 지주회사 설립ㆍ전환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과도한 지배력확장 문제를 억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행위제한 규정을 마련했다.


지주회사 체제 도입시 경제력집중 우려 = 지주회사 체제는 1986년 이후 경제력 집중 우려를 이유로 금지돼 왔다.

당시 정부의 개정 법률안 제안이유에는 '경제력집중 억제'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법안에도 이를 반영한 행위제한 규정이 눈에 띤다.

자회사가 사업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없는 손자회사를 소유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따위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도 100%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금융과 비금융 자회사 동시 소유 금지도 명시돼 있다. 지주회사를 허용하되 행위제한 규정을 둬 지주회사를 허용함에 따라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후 공정거래법 개정은 규제 완화가 대부분이었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은 2007년 4월 100%에서 200%로 상향 조정됐다. 자회사와 손자회사 지분율 요건도 완화됐다. 상장사나 공동출자법인은 30%에서 20%로, 비상장사는 50%에서 40%로 각각 내렸다. 주식가격의 급격한 변동 등 불가피한 사유발생시 지주회사 행위제한 의무 유예기간이 2년 추가 연장됐다.

자회사와 손자회사간 사업관련성 요건은 2007년 8월 개정 때 폐지됐다. 손자회사가 100% 지분을 소유할 경우 증손회사를 예외적으로 인정했다. 4단계 출자구조가 가능해진 것이다.

채이배(국민의당·비례) 의원은 "지주회사 제도는 경제력집중이라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용돼야 한다"며 "그동안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보다는 지주회사 규제 완화를 강조해 왔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남동일 기업집단과장은 "기업집단들의 지배구조가 순환출자 등 복잡했으나 지주회사 체제 도입으로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됐다"며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경제력집중이 소홀히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 자회사 지분율 100% 관행의 이유는 = 이같은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지주회사 제도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문재인정부와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이다.

19대 대선 전 당시 야3당의 공동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김상조 한성대 교수(현 공정거래위원장)는 '재벌개혁의 전략과 과제'에서 '지주회사 제도 개선'을 재벌개혁의 중기과제의 하나로 명기했다.

자료집에 따르면 기업집단은 독립기업이 흉내낼 수 없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반면, 규율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침해할 가능성도 안고 있다.

지주회사체제가 상대적으로 투명성과 유연성을 갖춘 기업집단 조직형태라는 점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문제는 지주회사 제도가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침해하고 재벌 총수일가의 지배권 강화, 승계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의 지주회사 행위제한 규제를 강화해 지주회사에 대한 규율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은 금융지주회사를 제외한 일반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부과하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대신 지주회사(자회사)가 자회사(손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는 완전자회사 형태로 지주회사 체제가 현실 관행화돼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김 교수는 발표자료에서 "다른 측면의 규율 압력이 작동하기 때문"이라며 "크게 보면 대표소송과 집단소송 등 소송수단이 갖춰져 있다는 점과 지분율 80% 이상 보유해야 조세편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율을 낮게 유지한다는 것은 외부주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 외부주주가 지주회사 독단적 경영판단에 잘 갖춰진 소송수단을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지분율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다중대표소송과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소송 등 다양한 소송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런 소송제도를 담는 상법 개정이 지주회사 제도 개선을 위한 전제조건임을 지적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연결납세 등 조세편익을 받기 위한 자회사 지분율 요건을 80% 이상으로 하고 있다. 모회사와 자회사를 연결해 법인세를 납부하는 연결납세 제도는 세금을 줄일 수 있는 방편이다. 이같은 세법상 장치에 의해 자회사 지분을 높게 보유하고 완전자회사화(100%)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김 교수는 "현행 법인세법에서 지주회사에 대한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 허용 기준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돼 있다"며 "익금불산입률을 점진적으로 높여 지주회사 스스로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게 유지할 경제적 유인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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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주 이제형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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