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영역에서 했어야"

"잘못됐을 때 부담 커"

교수시절 강하게 반대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은산분리 규제완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정부와 여당이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금융감독당국의 수장이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지만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는 못했다. 원장 취임 전까지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반대해 온 윤 원장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으로 해석된다.
"은산분리 훼손 규제완화 반대합니다"│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은산분리 훼손, 명분없는 규제완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윤 원장은 16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시작 시점에서 너무 넓게 가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최근 미국에서도 금융자산 제한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워낙 경제가 재벌 의존이라서 그쪽이 잘못됐을 때 부담이 커서 걱정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하는 ICT기업의 자산 제한 기준인 10조원을 완화하려는 움직임과 관련해 부정적인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의 인터넷전문은행을 보면 특정 분야에 존재한다. 자동차 관련 업종에서 하거나 저축은행 등 좁은 영역에서 한다"며 "우리도 그렇게 했어야 하지 않을까. 은행으로 너무 오픈하지 말고"라고 말했다.

◆정부 추진 방향에 반대는 못해 = 인터넷전문은행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원장은 "산업자본을 불러와서 그걸 인터넷전문은행의 활성화를 위해 잘 쓰자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ICT기술 갖고 있는 기업이 기여하도록 하려는 부분에서 장점이 있다"면서도 "재벌의 사금고 문제, 실물자산이 금융을 지배하면 자원배분 공정하게 안 되거나 또 인터넷전문은행의 추진이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는 것과 배치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이고 금감원장을 맡았다는 점에서 다소 말을 아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게 금감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윤 원장은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보면 은산분리를 부분적으로 완화하고 산업자본 자격이나 적격성 규제하고 감독도 강화해서 부작용에 대해 예방하는 것인데 정부가 원하니까, 한번 해봐야 하지 않나"라며 "정부가 추진방향을 잡고 나가는 상황에서 감독기구는 그것이 혹시라도 가져올 부작용, 예를 들면 소비자 보호나 건전성 문제에 대해 나름 방안을 잘 모색해서 문제가 최소화 되도록 뒷받침 하는 게 저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원장은 금감원장 취임 전인 교수 시절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강하게 반대했다. 원장으로서 입장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이 같은 소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금감원장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있어서 제가 어떤 경계를 넘어서 밖을 보고 뭐라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며 "생각이 바뀌었다라고 인식할 수 있지만 실제로 생각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혁신위원장 당시 부정적 입장 밝혀, 금융위는 권고 무시 = 윤 원장은 지난해 금융행정혁신위원장을 맡아 금융위원회에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금융위에 "혁신위는 현 시점에서 은산분리 완화가 한국금융 발전의 필요조건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며 "국회 및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은산분리 규제완화의 득과 실을 심도 있게 검토하기를 권고하다"고 말했다. 윤 원장은 또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를 동일시하지 않도록 권고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당시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34% 또는 50%까지 소유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10~15% 정도까지는 검토해볼 수 있지만 갑작스럽게 50%까지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금융위는 금융행정혁신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전문은행을 핀테크와 연결시키며 '규제완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3일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기업의 협업 강화 및 향후 핀테크 활성화 방향'에 대한 현장간담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은 혁신기술을 촉진하고 확산해 핀테크 생태계에서 하나의 구심점으로 금융산업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활성화를 위한 '인터넷전문은행법', '금융혁신지원특별법'의 조속한 입법을 위해 국회 논의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산분리 규제완화에 반대하는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기관도 정보통신기술 전문 인력을 확보해 인터넷전문은행의 기술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굳이 정보통신기술 기업에게 인터넷전문은행의 대주주 지위를 인정해줄 필요가 없다"며 "다른 금융기관이 인터넷전문은행을 경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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