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트럼프와 정상통화서 밝혀

북한 비핵화·미국 상응조치 성과 위한 시도

미국 내 대북 부정여론 낮추기 위한 의도도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경제협력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통화에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견인하기 위한 상응조치로서 한국의 역할을 활용해달라"며 이같이 밝혔다.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와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후속조치를 끌어내기 위한 당사국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문 대통령이 남북정상이 3번의 회담을 통해 합의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SOC 사업과 경제협력 문제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한 점이 눈에 띤다.
문 대통령, 국회 한미동맹 강화사절단 초청 간담회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 접견실에서 열린 국회 한미동맹 강화사절단 초청 간담회에서 사절단원들로부터 방미 결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사진 청와대 제공


◆트럼프 대통령 운신의 폭 고려 = 문 대통령은 이날 밤 통화에서 한반도 경협사업의 역할을 한국이 맡을 수 있고 '그것이 미국의 부담을 더어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로 미국이 제재완화에 나설 경우 한국이 경제적 부담을 나눠 갖겠다는 약속이다. 다분히 미국내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를 확대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미 하원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여전한 상황이다. 미 행정부 안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가 북미 관계정상화에 대한 같은 궤적을 보이고 있다고 평가 받는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불신론'을 가진 정치집단에 둘러쌓여 있는 형국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이 19일 오후 한미동맹강화사절단으로 미국을 다녀온 국회의원과의 대화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드러난다. 문 대통령은 "미국도 과거와 달리 점점 정파적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면서 "아직도 미국 조야 일부에서 북한에 대한 불신과 적대의 시선이 높고 북의 변화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론이 높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결정이 연속성을 갖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경제적 부담을 나눠 미국의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공식화해 트럼프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남북관계도 성과로 평가받는 시대" =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평화체제의 구체적인 성과물로 '퍼주기' 논란 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일 종단지도자 초청간담회에서 "1차 남북정상회담이 1년도 안 지났지만 그 사이에 엄청난 진도를 이뤘고, 앞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민주당 지도부 초청 행사에서는 "남북관계의 경우 '종북·친북·퍼주기' 등 색깔론이 과거처럼 강력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남북관계가) 진척되면 지지를 받고, 주춤하면 실망하는 등 성과를 중심으로 지지강도가 좌우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남북경협 등의 실행조치에 대한 색깔론 공세가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려운 수준까지 왔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예산안 가운데 1조1063억원을 남북협력기금으로 배정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산림 협력 등 4000억원 이상의 남북 경협 사업과 관련한 예산도 여기에 들어 있다. 지난해 말 예산안 심사에서 자유한국당 등은 국회비준을 받지 못한 판문점 선언 비준 예산 등을 비공개 예산으로 처리했다며 반발했다. 문 대통령의 약속대로 남북경협 사업이 현실화되고 한국정부가 맡게 된다면 예산 부담 또한 늘어나 '퍼주기' 시비도 이어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북미가 협상을 본격화 한지 25년이 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과거를 매듭짓는 성과를 낸다면 국민 설득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큰 성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한다. 계속해서 문 대통령과 긴밀히 상의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하노이 회담을 마치는 대로 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회담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고, 또 그 결과를 문 대통령과 공유하기 위해 직접 만나기를 고대한다는 의사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관계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과 나, 우리 두 사람은 아주 잘해오고 있으며 한미관계도 어느 때보다 좋다"고 확인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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