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도 아래 단거리 발사체와 단거리 미사일까지 잇따라 쏘면서 판을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쾌감을 표시하면서도 신뢰를 깬 것은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보다는 물러서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보할 뜻을 내비치지 않으면서도 판을 깨려는 것은 아니라며 강경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서 김 위원장이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올 하반기부터 재선 캠페인에 돌입하기 때문에 '북핵협상 실패'를 자인하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예측불가를 즐기는 스타일이어서 협상의 판을 깨고 제2의 '화염과 분노'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 에브라함 덴마크 윌슨 센터 아시아 국장 등 대화파 전문가들은 물론 부르스 클링너 헤리티지 재단선임연구원 등 대북 강경파들까지 북한의 도전행동이 아직은 협상용이고 미국도 판을 깨려 하지는 않고 있어 시기적으로는 올 하반기 위험이 한계점에 도달하는 순간 충돌이 아니라 비핵화 협상이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정은 선 안넘는 도전, 협상용 도발 = 북한의 도발은 군사적 의도라기 보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워싱턴에서는 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직 트럼프 대통령이 초강경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중장거리미사일이나 핵실험 카드를 꺼내들지는 않고 있다.

북한이 지난 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은 단거리 미사일 추정체가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내 대북 강경파들도 아직은 북한이 선을 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헤리티지 재단의 부르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미국에 비핵화 협상에서 더 유연성을 보이라고 압박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의 소리방송(VOA)에 출연한 에브라함 덴마크 윌슨 센터 아시아 국장과 스콧 스나이더 선임연구원도 협상용이라고 풀이했다. 오바마 시절 미국방부 동아시아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덴마크 국장은 "북한은 우리는 무시당하지 않을 것, 외교가 풀릴 때까지 수수방관하며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며 미국을 압박하되 일정시간에는 협상장에 돌아올 것이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북한은 미국과 협상재개 조건들을 정하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핵능력을 무조건 포기하지는 않을 것, 시간은 트럼프 편이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북한이 원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다시 움직이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다시 달래기로 돌아서 = 트럼프 대통령은 어르고 달래기로 대응하고 있다. 처음에는 대응을 자제하다가 닷새만에 또 쏘자 "신뢰위반은 아니다"라며 달래기로 돌아섰다. 김정은 위원장이 선을 넘지 않으려는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도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신뢰 위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치전문 폴리티코와 전화 인터뷰에서 '펜타곤이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쐈다고 확인했는데 당신과 김정은간의 신뢰 위반(a breach of trust)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아니다. 아니다. 전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그것들은 단거리이며 나는 이를 신뢰 위반으로 전혀 간주하지 않는다"라고 거듭 밝혔다.


다만 "어느 시점에는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아니다"라고 말해 금지선을 넘지 말라는 경고는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 전날까지 "유쾌하지 않다.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주시 하고 있다"며 실망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북한이 협상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경고한지 하루만에 톤을 낮춰 판을 깨지 않으려는 듯 어르고 달래기에 나섰다.

◆미국의 북한 선박 압류 전환점 되나 = 트럼프 대통령이 불쾌하다는 반응을 내놓은 날 미국이 제재위반을 이유로 북한선박을 압류했다. 연방법무부는 9일 맨하튼 연방지법에 "북한 수송선이 유엔 제재를 어기고 불법으로 석탄을 수송하다가 인도네시아에서 나포됐으며 미국금융기관을 이용한 제재위반으로 지난달 압류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덴마크 국장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북한선박 압류조치를 공표한 것은 김정은 정권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행동만 예의주시하고 있는게 아니라 다른 불법행동도 집중 추적하고 있으며 이번에 조치한 인도네시아 등 전세계에서 대북제재를 각국과 손잡고 강하게 집행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선박 압류가 북미협상 국면에서 터닝 포인트(전환점)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처음으로 북한 자금줄을 조여 당황시켰던 뱅코델타아시아(BDA) 사태와 비슷한 조치로 해석했다. 그는 "미국은 BDA 때 처음으로 북한정권을 직접 건드린 것인데 이번 선박압류도 직접 건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박압류조치에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시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북한정권 돈줄을 직접 조이는 조치를 취하면 협상재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김정은 추가 도발 계속 우려 = 김정은 위원장은 앞으로도 일정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 테스트할 것으로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스스로 "올연말까지 미국이 담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공언해 놓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도전적 행동까지 용인하고 유연성을 보일지 가늠해 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미국이 용인할 한계선은 제시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5일 일요토론에서 "북한의 시험 동결은 핵실험과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집중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덴마크 국장은 "폼페이오 장관의 이런 말은 북한 지도부가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같은 다른 도발은 가능하다고 해석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 지도부는 폼페이오 장관이 말한 한계선으로 핵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만 하지 않으면 미국도 절제된 반응을 보일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덴마크 국장은 밝혔다. 그러면 북한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를 계속 시험해보면서 자신들에게 보다 유리한 조건아래 미국이 협상장에 다시 나오도록 만들려고 추가 도발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덴마크 국장은 내다봤다.

◆알수 없는 트럼프 인내심 한계가 문제 = 가장 우려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까지 참을 것인지, 그 인내심 한계를 아무도 알수 없다는 것이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누구도 자신이 어떻게 대응 할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성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며 "그래서 북한의 어떤 행동까지 용인해줄지 트럼프 대통령의 한계를 알수 없다"고 밝혔다. 달리 말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판을 깨지는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언제 어떤 도전에 180도 다른 맞대응을 하고 나설지 측근들도 알수 없다는 우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북미정상회담 직전에도 정상회담 취소카드를 썼고 2차 하노이 정상회담에선 노딜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에 앞서 2017년 여름에는 화염과 분노라는 용어로 한반도에 전쟁 먹구름을 짙게 하다가 2018년 초부터 대화와 협상 분위기로 180도 바꾸고 북미정상회담까지 가진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사에 적성국, 라이벌, 심지어 동맹국을 가리지 않고 정상외교에서 하루 아침에 입장을 번복하는 맞대응 조치를 취해왔다. 이른바 미치광이(Mad man) 전략을 최대의 강점으로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여 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계선, 경계선을 넘나드는 도전을 이어간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중단, 화염과 분노 2.0으로 유턴할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 한계, 미국이 용인하는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 테스트하지 않는게 가장 좋다"고 경고했다.

◆위험속에 기회 있다 = 워싱턴 의회에서는 공화, 민주당 할 것 없이 비핵화 협상 회의론과 대북강경론이 더 늘어나고 있다. 코리 가드너 상원외교위 동아태소위원장(공화)과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민주) 등 연방의원들은 당파에 상관없이 김정은 정권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며 회의론과 보다 강력한 대북압박을 주문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협상의 판이 흔들릴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 위험속에 협상재개와 진전으로 이어질 기회는 분명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대북 강경파로 꼽히는 헤리티지 재단의 부르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작은 군사활동에 미국이 과도하게 대응해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워싱턴은 화염과 분노로 다시 되돌아가서는 결코 안되고 그렇다고 북한에게 유리하게 협상의 바를 낮춰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대화의 문은 계속 열어놓는 동시에 북한 도발에 대한 인내심 한계에 점점 근접하고 있다는 점도 북한에 알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 한계에 가까워 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 극적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재개될 수 있다고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내다봤다.

워싱턴에 있는 한반도 전문가 다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재선 캠페인에 본격 돌입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올 연말 시한을 설정해 놓고 있어 올 하반기에 한반도 안보상황이 판가름날 것이며 현재로서는 화염과 분노 2.0보다는 비핵화 협상 재개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