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간 이견 크고 여야 합의 가능성 낮아 … EU 무역분쟁 압박이 변수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미비준 4개 핵심협약 중 3개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지난 20일 ILO 핵심협약 비준 협상이 불발된 지 이틀 만이다.

앞서 경사노위는 지난해 7월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노동자 단결권을 논의한 뒤 경영계 요구사항을 수용해 단체교섭과 쟁위행위 개선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하려 했다. 하지만 노사 간 견해 차가 워낙 커 합의에 실패했다. 논의 과정에서 노동계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것은 원칙의 문제라 노사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경영계는 균형성 있는 노사관계 틀 마련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런 노사 간 이견은 정부의 비준 추진 발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노총은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진일보했다고 볼수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아쉽다"면서 "노사의견수렵 등 절차를 거친다고 했는데 만에 하나 파업중 대체근로 허용이나 부당노동행위 처벌조항 삭제 등 사용자단체가 주장하는 현행제도 개악안이 포함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가 늦게마나 선입법 입장을 철회하고 우선비준 추진으로 돌아선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 "ILO핵심협약 비준 취지에 맞춰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직권취소 조치를 반드시 병행해 정부의 실질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추진할 법 개정과 제도개선 내용은 ILO협약 기본원칙에 부합하고 결사의 자유 위원회 권고에 바탕해야 한다"면서 "사용자의 노조공격권 등 개악안 끼워넣기는 누적된 분노를 폭발시켜 전면대결을 부를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총은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비준은 우리 노사관계의 기본 틀이 바뀔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며 "국가별로 자국의 경제·사회·문화적 상황에 따라 비준 여부를 결정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 역시 냉철한 시각으로 현재 노사관계 제도와 환경 등을 고려해 비준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와 국회 논의 상황을 지켜본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를 통한 협상에 실패한데다 국회 파행도 길어지고 있어 더는 한발 물러나 있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여기에 협약 비준을 요구해온 유럽연합(EU)의 외교적 압박도 거세질 전망이라 더 이상 방관만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특히 다음 달 10일부터 ILO 100주년 기념총회가, 23~26일에는 EU 의회 선거가 열리기 때문에 무역분쟁 해결절차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패널 소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도 정부 입장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안이 비준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정부는 비준 동의안 초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비준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법과 상충해 법 개정이 필요한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에 대해서는 국회가 동의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야 간 공감대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정부가 비준동의안을 제출했다는 상징성 이외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해고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는 부분이다. ILO 핵심협약이 비준되면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가 합법화된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공무원과 교원의 노조 가입을 확대하는 내용도 문제다. 해당 협약이 비준되면 고위공무원이 기존 공무원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경총 관계자는 "정부가 금년 정기국회에서 3개 협약에 대한 비준동의안과 관련 법안이 함께 논의될 수 있도록 차질없이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정부가 ILO핵심협약비준에 관한 공을 국회로 넘기겠다는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국회 상황에서,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제대로 논의될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편 20일 국회에서 이용득 의원(민주당) 주최로 열린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과 과제' 토론회에서 조용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ILO 핵심협약은 보편적인 가치를 가지는 국제규범"이라며 "국내 제도와 상황의 특수성을 이유로 적용의 예외나 유예가 허용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본협약의 비준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며 "지금까지 오랜 세월 이런 저런 국내적 사정을 들어 4개 핵심협약의 비준을 미뤄 왔는데 더 이상의 지체하는 것은 보편적인 국제규범을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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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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