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친미 구도 아닌 국익 앞세워야 … 집권초기 청사진 현실에 맞게 진화시켜야

"한국외교의 병폐 중 하나는 진영논리다. 사안별로 보지 않고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입장에 기초해 보면서 우리의 정책옵션을 고사시킨다. 정책옵션은 객관적으로 열어 놓고 국익을 보고 살펴야 한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의 지적이다. 현직시절 북미국장과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내면서 외교부내 대표적 '북미통' '북핵통'으로 꼽혔고, 현재도 외교가의 전략가로 통하는 그는 미중의 대결구도가 장기간 지속될 것이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외교가 지혜롭게 좌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사진 이의종 기자


위 전대사는 또 북핵협상에 대해서는 다소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미국이 대선으로 치달으면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해지고 이 과정에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도발하면 제재와 압박을 하고 다시 또 도발하고 제재 하는 악순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문재인정부를 향해서는 집권초기 설정한 청사진에 너무 집착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실천해 나가는 과정에서 현실을 반영해 가는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북핵에 대한 피로감과 무용론이 혼재돼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재선 후에 보자는 분위기다. 재선될 경우 트럼프 2기에도 북핵 문제 끌고 갈 수 있으리라 보나.

아직은 너무 먼 얘기다. 변수가 다 안 나와 있는 상태에서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아무튼 2018~2019년 벌어진 북핵협상은 지난 30년 협상과정에서 아주 예외적이다. 왜냐면 그때 처음으로 정상이 직접 협상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전까지는 차관급 정도에서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상이 직접 하는 톱다운 방식이다. 기회지만 리스크도 큰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 쪽은 너무 기회 측면만 크게 본 점이 있다.

잘 안될 경우 후과도 크다. 그런 특이한 형태의 정상회담 과정이 사전 준비 없이 진행됐다. 왜냐하면 북한이 그것을 원했다. 정상끼리 만나서 담판 짓는 것이다. 그렇게 싱가포르를 했고 하노이를 했다. 그런데 결국 잘 안됐다.

사실 톱다운(하향식)과 보텀업(상향식)은 방법론의 문제이고 상호보완적인 것이다. 탁구로 치면 포핸드와 백핸드 같은 것이다. 백핸드는 나쁘고 포핸드는 좋다는 것이 아니다. 두 개가 어떻게 섞여서 포인트를 따느냐 하는 문제다.

톱다운과 보텀업 방식이 섞였어야 하는데 북한은 보텀업 준비과정을 피하려 했다.

작년 하노이 이후 서서히 잘 안 되는 분위기로 왔고. 미국 내에서 그런 기류가 많이 자리 잡았다. 트럼프 1기까지는 정상회담이 약간 리드하는 과정이었고 트럼프가 이끈 것이다.

이런 트럼프 방식과 기존 워싱턴 기득권층 방식이 현재 혼재돼 있다. 싱가포르, 하노이까지는 트럼프적인 접근이 좀 더 무게가 실린 상태였다. 그런데 하노이 이후부터는 전체적으로 관심을 덜 보인 것이다.

트럼프 역시 선거도 오니까 관심을 덜 갖게 됐다. 이렇게 되면 기존 워싱턴 정가의 방식이 점점 더 올라가는 구도가 되는 것이다.

트럼프 2기가 되면 기존구도가 좀 더 전면에 나오고 트럼프가 그걸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큰 틀은 계속 협상도 하고 제재도 하면서 비핵화를 추동하겠지만 1기 때처럼 트럼프가 '정상회담 합시다'하는 방식은 잘 안될 것이다.

기존 접근방식인 제재와 압박을 하면서 기회를 보는 그러면서도 미국은 양보를 잘 하지 않고 북한에 대해 전향적 조치를 주문하는 그런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많다.

2011년 7월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이용호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과 1차 남북비핵화회담을 가진 후 기자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미국 내 흐름이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나.

우선 북한은 당장 도발을 예고하고 있고 실제 도발을 진행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본다. 미국내 추세가 대선으로 향해 갈 때 북한이 도발하면 어떻게 되느냐. 제재 압박이라는 기존 구도에 무게가 실리는 추세가 더욱 가속화된다. 그러면 북한은 또 도발한다. 이런 식으로 하향 침체하는 국면이 될 수 있다.

그게 조금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아무래도 트럼프 2기에 가면 1기처럼 정상회담이 턱턱 생기는 그런 일은 잘 없을 것이고, 압박과 제재 그리고 도발이 반복되면서 평탄치 않을 가능성이 많다.

■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현정부가 호흡을 고르면서 중장기 전략 짜는 게 맞는 것인지, 개별 관광 등으로 독자 돌파하는 게 맞는지 궁금하다.

호흡 고르는 편이 낫다고 본다. 지금 객관적인 상황은 북한의 어떤 도발까지 가고 나서야 판단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구조라고 본다. 그게 바람직하지는 않고 또 막으려 노력을 안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독자 공간 말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도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마음속에서는 개연성으로 도발 생기고 상황 나빠지고 대처 공간이 생길 거란 점을 상정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일단 궁으로 가서 통으로 가는 궁즉통이라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걸 그럴 일 없다고만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상황까지도 상정해야 하고 그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을 추진하는 반면 미국은 제재에 대해 확고하고 단호한 입장이다. 정부 구상이 방향은 옳은지 그리고 미국에 통할 것으로 보는지 궁금하다.

정부로서는 그동안 몇 가지 해봤다가 난관에 봉착하게 되니까 뭔가를 해서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당위론적 생각이 앞서 이런 생각을 끄집어낸 거 같다. 이해가 되긴 하지만 객관적 현실을 보면 그게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은 못 된다고 본다.

우선 북한이 이걸 받아주느냐 하는 문제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완전중단 상태까지 몰고 가고 있는데 가령 북한이 노하면 힘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미국이 동의하기도 쉽지 않다. 여태까지 해오던 노선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도발을 예고하고 있지 않나.

북한이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도발을 해버리면 그 상황에 압도돼서 떠내려갈 가능성 이 있다.

여건은 썩 좋지 않다.

타이밍 측면에서도 현재는 미북 상황이 교착상태에 들어갔고 북한은 도발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은 한미공조를 강화하려 한다. 독자행동 하지 말고 힘을 합쳐서 대처하자는 논리다. 그런 시의적인 측면에서도 우리가 이걸 꺼내기가 썩 좋은 시기는 아니다.

더구나 북한이 거부하거나 도발해버리면 더 어렵다.

■ 최근 미국 행보가 과거와 다르다. 예전 인도태평양 전략차원에서 점잖게 얘기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노골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비롯한 한미관계 변화 어떻게 보나.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의 부상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응답 같은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중국에서) 일대일로 나왔을 때 한국의 반응은 꽤나 긍정적이었다. 호의적으로 대하고 참여할 생각도 비쳤다. 심지어는 일대일로 방향성이 한국 쪽으로는 왜 없느냐. 서쪽으로만 가고 동쪽으로는 없지 않느냐. 이런 얘기도 나오고 꽤 긍정적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는 안 그랬다. 굉장히 경계심 있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중국에 비해볼 땐 미국에 대해 더 조심러운 태도였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과는 동맹이고 중국과는 파트너십(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지리적으로는 중국에 붙어있고 미국은 여기에 기지도 갖고 있고 주한미군도 있는 독특한 환경에 처해 있다.

한국은 미중 간에 좌표를 정해야 한다. 좌표 없이 헤매면 더 어려워진다. 그 좌표는 심플한 사실관계 즉 한국은 미국의 동맹이고 중국의 파트너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좌표는 동맹쪽에 약간 더 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좌표가 명료하지 않으면 중국은 계속 견인하려 할 것이고, 미국은 그걸 막으려 한다. 우리는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좌표를 잘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미국이나 중국의 주요한 정책 방향 즉 일대일로나 인도태평양전략 등에 대해 우리의 초기반응은 일단은 포용적이어야 할 거 같다. 그 대신에 우리 좌표를 고려해 사안별로 들어가면 된다.

지금 인도태평양전략도 우리가 일부 사안별로 들어가고 있지 않나. 동남아에서 협력한다거나 하는 경우 들어가고 어떤 것은 안 들어가고 이런 식이다.

일대일로도 마찬가지다. 기본접근은 긍정적인 톤을 유지할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뺄 것은 빼고 넣을 것은 넣어가며 맞추면 된다. 그 배합률의 전제는 동맹 대 파트너십이라는 기준점을 갖고 배합해야 한다. 만약 그게 없으면 중국은 계속 기대치 올리게 된다. 한국은 당기면 온다는 식이 될 수 있다. 좌표를 잘 정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안이 사드다.

사드는 우리 안보에 관한 것이고 동맹에 관한 것이다. 그때 좌표를 잘 챙겼어야 한다. 이 정부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다. 박근혜정부와 더 들어가면 이명박정부까지 올라간다. 그때부터 사드에 대한 대비가 아주 모호했다. 그게 중국에 몰렸고,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미중 관계에서 우리 좌표를 잘 설정하고 그 좌표에서 상대가 볼 때 예측 가능하게 해야 한다. 중국이 볼 때 한국은 결국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에 이 이상은 당기기 어렵다. 그런 걸 알게 해야 하는데 사안별로 우리가 흔들림을 크게 하면 상대는 때리면 자기 쪽으로 온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끝없이 흔들리게 된다.

지금 중국은 당기면 온다는 기대감을 미국은 저쪽으로 갈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 속에 우리가 있는데 그 편차를 줄여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좌표를 세울 수밖에 없다.

■ 모범적으로 풀어낸 다른 나라의 사례가 있나.

나라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나름의 좌표가 있다. 일본은 좀 더 확실하게 미국 쪽에 근접한 좌표를 갖고 대처한다. 일본은 중국한테 미래를 걸지 않고 있다. 미국에 건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있으면 산술적 중간에서 미국 쪽으로 더 가 있다. 호주도 마찬가지다. 호주는 일본보다 더 미국 쪽에 가 있다.

우리도 중간보다는 미국 쪽에 좀 더 가 있다. 동맹이니까. 그런데 우리가 만약에 완전히 중간에 서 있으면 중국으로 이동해갈 가능성이 많다.

인도 같은 나라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들어가 있다. 참여까지는 아니더라도 들어가 있다. 그럼 인도가 친미반중이냐하면 그건 아니다.

인도 쪽 전략 계산은 중국 쪽에 예속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까 미국 쪽에 약간 와 있다. 산술적 평균에서 아마 한 2~3도 정도 더 가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인도보다는 조금 더 미국 쪽에 가야 된다는 것이다. 일본보다는 아니더라도. 그런데 우리가 인도보다 더 중간지점에 가 있는 그런 선택지는 어렵다.

중국의 사례는 우리가 사드를 하면서도 겪어봤고 여러 경우에 보고 있다. 중국이 중요한 파트너인 게 현실이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한국의 오천년 역사에 처음 있는 존재다.

바다 건너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에 그것도 대중국 균형추가 된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현실에 맞닥뜨려 본 역사적 경험이 모자라고 해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거의 오랫동안 하나의 중심과 일해 왔다. 중국과 일해 오다가 미국과 일해 왔다. 수십 년간 중국은 끊어졌으니까.

그러다가 탈냉전이 되면서 우리가 양쪽으로 갖게 됐는데 이것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헤매고 있는 상황이다. 빨리 한국사회가 사회적 담론 통해 방향을 잡아가야 한다.

■ 한일 지소미아 관련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있고 급해진 건 우리다. 원천적으로 지소미아 카드 적절했다고 보는지 그리고 우리가 다시 깰 수 있다고 예상하나.

지소미아를 지난번에 중단시켰다가 많은 논의와 협의 거쳐 조건부로 다시 붙여 놨다. 우리가 지소미아 발동 걸었을 때와 다시 가동시키겠다고 한 상황까지 경과를 냉정하게 복기해보면 우리가 우위에 있진 않았다. 약간 밀려 있었다. 그런데 이걸 다시 카드로 쓰기엔 힘든 오르막길이다. 쉽지 않다.

지난번에는 우리가 일을 저질러서 카드로 썼는데 그때도 조금 밀렸는데 다시 이 카드를 쓰기는 좀 그렇다. 한다면 하는 거지만 그 결과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강력한 뭔가가 있을 것이고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미국도 그런 생각을 안 하지 않겠나. 물론 한국에서 우리는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미국은 그렇게 이해를 했을까.

정말 한국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언덕 너머로 밀어놨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다시 또 올라온다면 미국은 깜짝 놀랄 것이다. 미국이 가만히 있겠느냐.

다시 이 문제를 하게 되면 그쪽 에너지가 큰 것이다. 이미 우리가 밀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언덕으로 치고 올라간다는 것인데 쉬운 일이 아니고 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현될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라 단정할 수는 없다.

■ 한미 한일은 고사하고 한중, 한러 모두 좋지 않다. 한국외교 현 주소와 방향은.

현 정부 들어와서 몇 년 됐다. 출범 전 촛불민심이라는 게 있지 않았나.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촛불민심이 현 정부에 큰 지지를 줬고, 현 정부 엘리트들도 그걸 의식하고 있다. 유례없는 국민으로부터의 권한위임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국정전반을 개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했다. 외교에서도, 남북관계에서도, 한미관계도 새롭게 해보려고 했다. 그렇게 지난 2년 반에서 3년 가까이 해 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집권 초기에 오리지널 청사진을 그려놨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북핵문제 한미관계는 이렇게 풀어보겠다는 식이고 민심을 받아서 우리가 해보겠다는 열정이 있었다. 그런데 원래 그런 일이라는 것이 청사진이 있고 실행에 옮기면 현장에서 오는 반작용이 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일본 북한 중국 러시아를 데리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영향력이나 파워가 더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 반응을 보고 오리지널 계획이 진화해 가야 하는 데 약간 그대로 한 느낌이 있다.

그러니까 북핵 대미 대일전선에 약간 미진한 점이 드러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했던 것을 한 번 보고 조정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젠하워가 이런 말을 했다. 밀리터리 플랜은 작전이 시작되면 별 소용이 없다. 그렇게 안되니까. 그러나 그런 밀리터리 플랜을 만들어봤던 밀리터리 플래닝 경험은 작전에서 제일 중요하다. 만들어보는 것은 중요하지만 거기에 매이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워낙 큰 권한위임을 받았다는 인식도 있고 소명의식 같은 것이 컸다. 우리정부는 전 정부를 탄핵시키고 민심으로 채워져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새롭게 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새롭게 했는데 이제는 그동안 경과를 갖고 다시 현실을 보고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러관계는 어떻게 보나.

러시아 관계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기본 구도에 관한 것이다. 미러 관계는 최저점에 있다, 그런 환경은 한국에 부담이 된다. 왜냐면 한국은 미국에는 동맹이고 러시아와는 동반자관계다. 중국과 비슷한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중국과 다른 점은 중국이 갖고 있는 끝없는 기대감을 한국에 작동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러시아는 한국을 잡아당기면 미국으로부터 나한테로 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간 기대를 한다. 그런 기대가 우크라이나 사태 등등에서 대러 제재로 인해 만족스럽게 되지 못하니까 불만이 있는 것이다. 이게 하나다. 구도적으로 미러 대결구도 속에서 미국이 동맹인 한국이 운신할 공간이 많지 않다.

둘째는 이 정부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그동안 미국 중국 북한 여기에 과도하게 쏠려 있어 그 나머지 나라들은 대개 좀 소홀히 했다. 러시아도 그중 하나다. 그러다보니까 지금 이 상태로 있다. 조금 더 러시아와 교감해야 하고 러시아를 더 끌어들여서 한반도 평화안정, 비핵화협상에도 역할을 주고 협조를 많이 해야 한다. 아직 거기까지 못 가 있다.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 외교 병폐 중 하나가 진영논리라 생각한다. 사안별로 보지 않고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입장에 기초해 보는 게 우리의 정책옵션을 고사시킨다. 정책옵션은 객관적으로 열어놓고 국익을 보고 살펴야 한다. 지금 말하자면 어떻게 해야 이 포위망을 빠져나갈까 이게 중요한데 포위망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진보적 전략만 채택하고, 보수적 전략은 채택 안한다거나 또는 그 반대라거나 그런 것은 의미가 없다. 이 포위망을 빠져나가서 부대를 구하고 역습을 할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찾아가야 하지 않나.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외교부의 대표적 북미·북핵통이자 외교 이론·전략가이다. 차분하고 섬세 하지만 원칙을 강단 있게 밀어붙이는 집행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 몬터레이 군사언어연구소에서 러시아어를 연수하고 주러 대사관에서 1등서기관으로 근무한데 이어 본부에서 러시아 담당 동구과장을 역임했다. 한소 수교의 물꼬를 튼 1989년 11월 영사처 설치 협상과정에서 실무적으로 참여해 협상 진전에 기여했다.

2003년 북미국장으로서 북핵 업무를 담당해 2차 북핵위기에 대응했으며 2009년 3월부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북핵 문제를 지휘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공전하던 비핵화 대화가 재개될 때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이라는 3단계 접근법을 마련해 주변국과 조율하기도 했다. 남북은 2011년 7월 6자회담이 열리지 않는 기간 사상 최초로 비핵화 회담을 개최했다.

주러시아 대사로 외교관 생활을 마무리한 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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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김기수 기자, 정리 김상범 정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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