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제도 도입 발표했지만 관계부처 협의 지지부진 …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게 의존하는 현 제도 취약해”

'원주 삼남매 가정'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출생통보제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출생통보제란 의료기관이 출생하는 모든 아동을 국가기관 등에 통보해 누락이 없도록 하는 제도다. 영국 미국 등 선진국은 아동 출생 후 의료기관과 부모에게 신속한 통보 의무를 공동으로 부여하고 있다.

지난 11일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이 실시한 '만 3세 아동 소재·안전 전수조사' 결과에선 이른바 '원주 삼남매 가정' 사례가 알려졌다.

첫째 자녀에 대한 학대 여부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생후 1년이 안 된 둘째와 셋째 자녀가 이미 사망해 유기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 중 셋째 자녀는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첫째 자녀의 경우 아동보호체계 하에서 위기 의심 아동으로 분류됐지만 방문조사에서 제외돼 도움을 받지 못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세이브더칠드런 등 21개 아동청소년 단체들은 출생통보제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했다.

이들은 "원주 삼남매 가정은 부모의 고의로 얼마든지 아동의 존재가 은폐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출생 미신고 사례”라면서 “생존자인 첫째 아동이 아니었다면 출생신고조차 안 된 '유령아동'이었던 셋째는 그 존재조차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선 아동은 출생 후 즉시 등록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선 출생신고의 의무를 부모에게 맡겨두고 있다. 부모가 아동의 출생을 알리지 않으면 그 아동은 존재 자체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아 각종 보호망에서 벗어나게 된다.

단체들은 "의료기관은 출생신고에 관여하지 않고 출생신고의 의무를 부 또는 모에게만 맡겨두는 현행 출생신고제도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준다"며 "대한민국의 출생통보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전이 없는 사이 우리는 이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아이들을 놓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 해 5월 정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 출생통보제 도입 계획을 공식발표했다. 보건복지부 등은 “의료기관이 출생하는 모든 아동을 누락 없이 국가기관 등에 통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기아동 발굴 및 보호체계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 방안을 마련하라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주문에 대해 출생통보제 및 보호출산제 도입 검토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일부 법개정을 통해 검사나 지방자치단체장이 부모 대신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지만 어느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아동의 ‘등록될 권리’는 여전히 충분히 보장되기 어렵다.

단체들은 "(출생통보제 관련) 관계부처의 협의가 지지부진한 사이 등록되지 않은 아이들은 아동학대와 유기, 방임 등 인권침해 상황에 여전히 방치되었다”면서 “아무도 그 죽음을 몰랐던 한 아이의 생을 이제야 목격하며 우리는 정부와 국회가 출생통보제의 도입과 나아가 보편적 출생등록제도의 확립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김형선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