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의 주거용 외 부동산 신탁후 매각 제도

참여정부 · 박근혜 · 이명박 “찬성” … 정치권이 ‘묵살’

원희룡, 김종인위원장에 건의 … 여야 여전히 ‘외면’

부동산 투기를 잡겠다던 청와대와 정부, 국회의 고위공직자 상당수가 다주택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고위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제가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위공직자는 주거 외 부동산은 갖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다만 십수년째 헛돌고 있는 백지신탁 도입 논의가 이번에도 여야의 ‘의도적 외면’으로 진척을 보지 못할 위기다.

고위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제는 고위공무원과 국회의원 등은 실수요 아닌 부동산을 중립기관에 백지신탁해 일정기간이 지나면 매각토록 하는 제도다. 정치권은 2005년 ‘고위공무원이 직무관련성 주식 3000만원 이상을 보유하면 매각하거나 백지 위임’하도록 하는 주식 백지신탁제를 도입한 바 있다. 백지신탁의 범위를 주식에서 부동산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부동산 백지신탁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병문 의원은 2005년 법안으로까지 제출했다. 야당도 호응했다. 2005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주식은 물론 부동산까지 포괄할 수 있는 자산 백지신탁제도를 반드시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2007년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는 “백지신탁제도는 동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의 생색은 여기까지였다. 고위공직자들의 무분별한 ‘부동산 재테크’에 분노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백지신탁을 꺼냈던 정치권은 이후 슬그머니 논의를 접었다.

이번에 고위공직자 ‘부동산’이 다시 논란이 일자,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롯한 정치권 일각에서 또 다시 백지신탁 카드를 꺼내들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7일 “공적인 권력을 가지고 대다수 국민의 사적 영역에 대해서 규제하고 개입하고 여기에 대한 권력을 행사하려면 손이 깨끗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 지사는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을 만나 백지신탁 도입을 건의했고 긍정적 반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정부와 민주당은 당장의 분노한 여론을 의식해 다주택 고위공직자에게 “집 팔라”는 독촉만 할 뿐이다. 통합당은 여권의 ‘부동산 헛발질’을 즐기는 모습만 보인다. 여야 모두 백지신탁 논의를 진척시킬 의지가 보이질 않는다. 통합당 관계자는 8일 “(백지신탁에 대한) 구체적 검토나 논의는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의 미숙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지적도 잇따른다. 최근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지만 소비자물가는 오히려 떨어졌다. 정부의 소비자물가 조사품목에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주택가격이 빠져있기 때문에 이같은 ‘왜곡’이 발생한 것. 이준원 전 농식품부차관은 내일신문 기고를 통해 “소비자물가지수의 신뢰를 제고하고, 서민가계 안정을 위해서는 주택가격을 소비자물가에 반영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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