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실형=법정구속' 24년만에 예규 개정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사유·필요성 있을 때'

개정이후 이재용 부회장 법정구속 … 논란 계속

1.2심 실형 선고 시 법정구속되는 비율이 줄어들지 관심을 끈다. 대법원 예규로 실형 선고 받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구속한다는 내부 규정으로 법정구속 비율이 30% 정도였는데, 최근 대법원이 이 예규 조항을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바꾼 것이다.

이 규정이 바뀐 뒤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면서 또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형사소송법 원칙에 충실" =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1일자로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인신구속사무 예규) 제57조를 개정했다.

기존 예규 조항은 '피고인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할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는 것이었다.

개정 조항은 여기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이란 문구를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바꿨다. 1997년 1월 1일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요령'에 실형을 선고할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한다는 조항을 둔 지 24년 만이다.

법정구속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 1심 또는 2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 없는 실형 판결을 받았을 때, 재판장의 구속영장 발부를 통해 현장에서 곧바로 구속되는 것을 말한다. 검찰 또는 피고인이 항소할 수 있기에, 실형 선고 직후는 시점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단계임에도 법정구속이 되면 피고인은 사실상의 수형생활에 들어간다.

판결이 최종 확정되지 않아 '무죄추정'을 받는 단계에서 이뤄지는 인신 구속이어서 검·경 수사단계에서 이뤄지는 구속과 본질상 유사하다. 처벌을 피해 도주하는 것을 막고 안정적으로 법을 집행하기 위해 형이 확정되기 전에 신병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수사단계에서의 구속과 법정구속이 추구하는 바는 일맥상통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24일 "구속에 관한 형사소송법의 원칙에 충실할 필요성이 있고, 실무상으로도 예규가 아닌 형사소송법에 따라 법정구속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주거불명, 증거인멸·도주 우려 등을 구속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만, 대법원 예규는 '실형 선고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인을 구속한다'고 규정해 판사가 구속을 남발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전국 법관 의견 수렴 = 앞서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3~4월 전국 법관을 상대로 인신구속사무 예규 제57조의 개정에 대한 의견 수렴을 진행했다.

답변자 450여명 중 80% 이상이 이 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된 반응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예규로 실형 선고 시 구속이 원칙이라고 규정한 것은 재판권 침해"라는 것이었다.

일부 법관들은 재판권을 침해하는 내용이라며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냈다.

이런 의견에는 법정구속의 예외 사유로 대법원 예규에 거론된 '특별한 사정'이 너무 모호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직 판사들 사이에서는 △사건이 판례가 축적되지 않은 새로운 유형이어서 상급 법원서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이 타 사건에 비해 커 보이는 경우 △인신 구속시 당사자간 합의를 통한 피해자 구제 가능성이 막히는 경우 △도주할 우려가 없는 경우 등이 법정구속을 하지 않는 '특별한 사유'로 통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명시적으로 나와 있는 기준이 없어 법정구속을 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판사의 재량이다. 형량은 그나마 대법원이 정한 '양형기준'이 비교적 상세히 나와있지만 법정구속은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법정구속을 피하는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 등 유력인사들에 대한 특혜 논란도 계속돼 왔다.

다만 행정처는 이 조항을 없앨 경우 '기본적으로 법정구속을 하지 말라'는 방향 제시로 오해가 생길 것을 우려해 형사소송법의 구속 원칙을 규정하는 정도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1심 법정구속 비율 30% 정도 = 사법연감 자료에 나와 있는 1심 선고 기준 법정구속된 사람(불구속 피고인으로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 중 법정에서 구속된 사람) 비율을 계산한 결과 2018년엔 29.9%, 2017년엔 28.2%, 2016년엔 29.1%, 2015년엔 28.5%, 2014년엔 28.9%로 약 30%정도 차지했다.

일부에서는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신구속사무 예규가 개정된 직후 사회 고위층 인사의 첫 법정구속 사례였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에서 "파기환송심이란 점을 감안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된다"고 했다. 법정구속하면서 바뀐 예규 내용(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명시하고, 향후 번복될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구속한다는 취지였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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