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유류품·유골 감춰

30년 지나 사망 알게 돼

"현정이 이름이 쓰인 책가방과 공책을 발견했으면 보호자에게 알려야지 왜 경찰이 숨겼는지 모르겠어요. 그때 유류품을 봤다면 아내가 30년을 기다리다 병에 걸려 죽지 않았을 겁니다." 김용복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경찰도 사람이고 자식 키우는 부모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경찰이 증거를 은폐하면 도대체 누가 찾으라고···" 김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의 딸 김현정양은 연쇄 살인범 이춘재가 2019년 자백해 뒤늦게 밝혀진 10번째 희생자다.

경기 광명시 자택에서 김용복씨가 딸(김현정양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의 사진과 지난해 12월 30일 날짜로 발송된 증거 은폐 경찰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이 적힌 서류를 들고 있다. 사진 이의종


1989년 7월 7일 경기 화성시, 초등학교 2학년 김양은 복숭아 씻어놨으니 학교 다녀와 먹으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오빠와 함께 집을 나섰다.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김씨와 아내는 사라진 딸을 찾아 김양의 친구들을 수소문하고 학교와 동네를 샅샅이 뒤졌다. 경찰에 실종 신고도 냈다. 하지만 소식은 없었다.

시간이 흘렀다. 언제 올지 모를 딸을 기다리며 가족은 문을 열어놓고 살았다.

원래 살던 경기 광명시로 집을 옮길 때도 전학 신고를 하지 않았다. 혹시 딸의 기억이 돌아오면 다니던 학교를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렇게 김씨 부부는 김양이 돌아오기만을 가슴 졸이며 살았다.

김현정양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건 2019년 8월부터다. 30여 년 전 살인 현장들에서 채취한 DNA가 이춘재의 것과 일치하고 이를 경찰이 추궁한 끝에 이춘재가 10건 외에 4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김양 사건도 추가로 밝혀진 4건 중에 하나다.

재수사 과정에서 1989년 12월 김양의 유류품과 양손이 묶인 유골 일부가 발견됐고 이를 경찰이 유족에게 알리지 않고 은폐한게 드러났다. 하지만 밝혀진 진실에 책임지는 수사관은 없었다.

두 명의 형사가 사체은닉과 증거인멸 혐의를 받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지난해 12월 검찰도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지난 1월 27일 내일신문은 경기 광명시 김용복씨 자택에서 사연을 들었다.

■김양의 유류품이 있었고 경찰이 숨겼다는 걸 언제 알았나

실종 신고 후 혹시 돌아오려나 기대하며 살았다. 2019년 TV 뉴스와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다 현정이 내용이 아닌가 싶어 방송 나가고 2주 후에 경기남부경찰청으로 찾아갔다. 며칠 후 경찰이 전화로 유류품을 발견했던 사실을 알려줬다.

■연락을 받고 어땠나

충격에 빠졌다. 아내는 오열했다. 한 달가량 재수사하는 경찰들과 여기저기 다녔지만 감췄다는 유류품은 찾지 못했다. 사체를 묻었다는 곳도 갔지만, 개발이 돼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의 사과가 있었는지

재수사하는 경찰들은 자주 찾아오고, 수사 상황을 계속 알려줬다. 선배 경찰들의 잘못으로 이렇게 됐다고 무릎 꿇고 사과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경찰이 죽인 것도 아닌데 무슨 죄가 있겠나. 그런데 당시 유류품을 감추고 사체를 묻은 경찰은 명예 운운하며 골프하고 다닌다고 들었다. 유류품 내놓고 사과하면 용서했을 텐데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해 매일 수면제를 먹고 있다.

■지난해 부인과 사별했다고 들었다

애 엄마는 30년을 숨죽이며 살다가 병원 입원 후 며칠 만에 갑자기 죽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아프다는 말도 못 했겠냐. 유류품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이렇게 가지는 않았을 거다.

■진상규명 요구하는 신청서를 냈는데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경찰에 화가 났다. 그래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신청을 했다. 믿고 있었던 경찰의 잘못에는 공소시효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 진상 규명과 수사 당사자 처벌이 있어야 한다.


한편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1월 25일에는 이춘재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경찰 권력으로 부당한 피해를 본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제출했다.

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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