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태헌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출판권에 대한 사회적 이해·보호 필요 … 디지털 전환 통한 출판비즈니스 발전 중요

■코로나19 상황에서 출판계도 어려움을 겪었을 법하다.

지난해 워낙 불황에 코로나19 상황까지 와서 출판사들이 긴장을 했다. 그런데 다행히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을 해서 집에서 교육을 받고 독서를 하게 돼 아동도서는 매출이 올랐다. 주식 부동산 재테크 자기계발 서적들도 반응이 좋았다.

아쉽게도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특수 수요가 없어졌다. 여행서 어학도서 교육출판 등 지난해부터 매출이 좋지 않던 분야는 계속 좋지 않고 특수 수요도 없어지면서 올해는 전반적으로 상황이 안 좋다. 특히 지역서점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려움이 많이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김태헌 한국출판인회의 회장│한빛미디어 대표이사/전 서울북인스티튜트 원장/전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전 한국출판인회의 감사/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비상임이사. 사진 이의종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출판을 문화산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문화적 측면만이 아니라 산업으로서의 출판정책, 장기적 전망을 수립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출판시장의 현 규모를 토대로 언제까지 얼마나 시장 규모를 키우겠다는 목표가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는 로드맵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또 저작권법 전부개정안을 국회 소관위에서 심사 중인데 출판권에 대한 이해와 정책이 필요하다. 출판사들은 기획을 하고 적합한 저자를 섭외하며 함께 글의 구조를 고민한다. 공동 창작의 요소가 꽤 많다.

저자와 출판사는 둘 다 저작물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권리도 있다. 저작권자의 권리 보호는 필요하지만 그것에만 치중하면 출판권을 위축시킨다. 예컨대 저작권법상 수업목적보상금은 저작권자에게만 지급되며 출판권자는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장강명 작가의 '인세 논란'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도 정책적 지원이 가능한가.

일반적으로 출판사는 기업이니까 강자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7만개 출판사 중 1년에 책을 1권 이상 출간하는 출판사는 5000개 정도로 추정된다. 이중 5인 이하 종사자로 구성된 출판사가 70%다. 그만큼 각 출판사는 영세하며 오래된 산업이 갖고 있는 노후성이 있다. 그리고 단행본에서 큰 출판사라고 해도 기업으로 보면 큰 규모가 아니어서 출판산업의 미래를 개척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이를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

인세 논란의 경우 의도적이었을 수도 있지만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결과적으로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작든 크든 대부분의 출판사는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 하나 없이 수작업, 반수작업으로 인세를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거의 모든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국내 인터넷 환경에서 3개월, 6개월 만에 저자가 자기 책의 판매량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후진적 모습이다. 그렇다면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보급을 하는 게 현실적 방안이라고 생각하는데 정부뿐 아니라 출판인회의도 놓친 지점이다.

■1일 정부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통전망)을 임시개통했다.

통전망은 출판유통정보시스템의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기대가 크다. 지금까지 정부 예산 45억원이 투입됐고 15억원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1일 시범개통에서 문제점이 발견될 수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출판산업의 인프라가 될 수 있도록 통전망에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출판사와 서점이 정부와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IT 플랫폼은 사용자가 이용을 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전망의 성공 여부는 출판사 서점 등 사용자에 달렸다. 따라서 정부는 사용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개선하는 데 집중했으면 한다.

■도서관 대출로 인해 저작권자와 출판권자가 입는 손해를 보상하는 공공대출권 도입도 현안 중 하나다.

공공대출권의 경우 종이책도 대상이 되지만 전자책과도 관련된다. 특히 전자책은 서버에 파일로 있으니 무한히 대출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한 도서관이 구매를 할 경우 전산망을 통해 다른 도서관들도 해당 전자책을 공유하고 서비스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관련된 법과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출판사는 자사의 이익이 걸려 있고 도서관은 예산이 한정되니 각자의 입장만 주장하게 된다. 상호간의 이해·협의와 함께 정부의 적절한 정책이 필요하다.

■불발됐지만 지난해 정부가 도서정가제 완화를 추진해 논란이 됐다.

먼저 도서정가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싶다. 왜 책에만 정가제가 있냐고 하는데 교통 서비스, 의료 서비스 등 공공성이 높은 분야는 대부분 정가제로 운영된다. 책은 지식과 지혜를 주는 사회의 쌀과 같다. 문화적 공공성을 사회적으로 인정한 끝에 정가제가 도입됐다. 다른 상품과 달리, 책은 도서관을 통해 국민들에게 대출 서비스를 하는데 이것도 책의 공공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두번째로 출판사로서 많이 답답한 오해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정가제 도입 이후 도서 할인율이 25%에서 15%로 줄었으니 책 1권을 팔면 10% 정도 이익이 늘어난다. 그 이익을 출판사가 가져간다는 오해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출판사들은 서점에 책을 공급할 때, 미리 정해진 공급률(정가 대비 비율)로 책을 판매하는데 정가제 도입 이전과 이후에 공급률은 거의 변화가 없다.

서점이 어떤 도서를 15% 할인판매를 하든 25% 할인판매를 하든 출판사에서 서점으로 공급되는 책 한권에 대한 공급 금액은 같다는 뜻이다. 출판사가 대형서점과의 거래에서 공급률을 높이기는 쉽지 않다. 이에 대해 국민들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출판법)상 한시적 제도로 3년이 지나면 또 관련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국민적 이해가 뒷받침돼야 도서정가제가 계속될 수 있다.

■서점 도서관 등 출판생태계의 다양한 주체들과의 협력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도서정가제는 어느 서점에서나 동일한 가격에 책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지역서점에 긍정적인 정책이다. 최근엔 지자체들이 지역서점을 통해 책을 구매하고 있다. 또 최근 개정된 출판법에 지역서점 활성화를 뒷받침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런 제도들을 통해 지역서점이 발전했으면 한다.

공공도서관의 경우 그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이나 전체 공공도서관의 자료구입비는 여전히 약 1000억원에 머물러 있다. 도서관은 자료가 핵심이다. 전국 공공도서관의 자료구입 예산이 3000억원은 돼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공공도서관이 한해 신간 발행종수의 30%를 구입할 수 있다.

■미래의 출판에 대해 출판사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사회가 디지털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됐고 국민들의 삶의 방식, 사고방식, 가치관이 변화하며 다양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자들이 책을 읽는 방식, 책에 기대하는 내용 등은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선 출판산업이 전반적으로 디지털화돼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산업들이 디지털 전환을 하고 있으나 역사가 오래된 출판산업은 아직 그렇지 않다.

또 출판사들은 디지털 소비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책을 기반으로 한 IT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출판사들의 규모다. 우리나라에서 단행본 매출액이 200억원이 넘으면 대형 출판사에 속하는데 10개 정도 된다. 그런데 대형 출판사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규모는 아니다. 종이책 비즈니스만 해오던 출판사들이기에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낮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책의 원초적 가치가 보존돼야 한다는 점이다. 유네스코 세계 책의 날 결의안에 보면 책은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며 이해와 관용,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SNS의 짧은 글은 줄 수 없는 책의 힘이다.

■베스트셀러가 더 이상 사회적 담론을 얘기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상당히 무겁게 다가오는 질문이다. 베스트셀러가 항상 좋은 책이거나 사회적 담론을 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지적은 사실일 수 있다. 예컨대 리영희 선생의 책은 우리 세대의 필독서였다.

기획력이 강한 책들이 많아지다 보니 상대적으로 놓친 지점일 수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담론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방식이 변화했다고도 볼 수 있다. 예전엔 지식인, 오피니언 리더들이 책을 통해 대사회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금은 SNS 유튜브 등 여러 채널에서 사회적 담론이 논의된다.

다르게 생각하면 '아프니까 청춘이다' '90년대생이 온다'와 같이 사회적 현상을 논하는 책들은 계속 출간되고 있다. 출판사들은 독자의 관점에서 책을 내야 하니까 MZ세대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방식으로 책을 출간한다고 할 수 있다.

■책과 독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 디지털 전환을 통해 출판비즈니스가 발전해야 한다. 독자들이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연구해 관련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도 있겠지만 이와 같은 출판계의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2018년 책의해 이후 독서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 정책인 '한 학기 한 권 읽기'도 반응이 좋다. 학생들이 책을 읽고 만족감을 느끼고 관련해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음해 대선이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대선 때마다 각 정당에 독서진흥에 대한 정책 제안을 해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책 읽기 환경 조성'이다. 19대 대선 때는 '책 읽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는 캐치프레이즈로 공공도서관의 도서구입비 확충 등 거시적이고 담대한 제안을 했다. 이번에도 같은 활동을 할 예정이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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