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42일 만에 숨져 … 산후우울증 인정

재판부 "국가의 모성보호 노력 부족" 강조

태어난 지 42일 만에 아이가 숨졌다. 열악한 여건에서 출산을 한 친모의 학대가 원인이었다. 1심에서는 실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집행유예로 감형했다. 심한 산후우울증에서도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홀로 견디기 힘든 육아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점을 고려한 판결이다.

17일 대전고등법원 형사3부(정재오 문봉길 이의석 부장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A씨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또 A씨에게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 아동관련 기관 취업제한 5년을 명령했다.

A씨는 2021년 2월 출산한 딸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통수를 한차례 때리는 등 학대를 한 끝에 같은 해 4월 지주막하출혈 등으로 인한 두부 손상으로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육아 스트레스와 산후우울증으로 판단력과 자제력을 잃고 학대했다"며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이상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출산은 행복의 원천 돼야" = 1심 선고후 A씨와 검찰 모두 양형부당을 이유로 각각 항소했다.

이 사건을 맡은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발생 이전에 국가의 육아 지원과 모성 보호에 대해서 따져들었다.

정재오 재판장은 "헌법 제36조 제2항에는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며 "임신과 출산이 여성에게 행복의 충분한 원천이 되지 못할망정, 또 다른 고통이나 불행의 씨앗이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고인 혼자서 육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전적으로 A씨만을 사회적으로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산모나 신생아 지원을 위해 여러 지원제도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도우미 지원이나 건강관리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마저도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 A씨 부부로서는 알지 못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지원이 주로 미혼모를 지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고 혼인을 했지만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임산부를 지원하는데 상대적으로 '매우 많이' 소홀하다"며 "지원부족과 불균형은 국가의 한정된 재원을 고려해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고 밝혔다.

A씨 부부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70만원이라는 자기부담금을 내야 했다. 열악한 경제상황으로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배우자를 비롯한 친인척도 도움을 주지 못했고, 어려운 여건에 출산을 했지만 정부는 외면했다.

◆"산후우울증으로 우발적 범행" = 산후우울증은 일반우울증보다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불안과 혼란을 넘어 환각과 망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심한 경우는 산모의 극단적 선택이나 영아 살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A씨는 1심 결과에 따라 구속수감된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책하고 있었다. 고통과 죄책감으로 인해 중증도 이상 우울증 진단을 받아 약물치료까지 받고 있었다.

변호인들은 A씨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를 증거로 제출했다. 주로 "친구관계가 원만하고, 규칙을 잘 지키고, 솔선수범하며, 어려운 친구를 돕는 등 배려심 많은 학생"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부친의 사업실패로 가족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어린 나이에 경제활동에 나섰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않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이 "생명은 가장 존엄하고 근본적인 가치이자 국가와 사회가 보호하여야 할 최고의 법익이고, 갓 태어난 아기의 생명도 예외일 수는 없다"며 "피고인의 범행은 이와 같이 절대적이고 소중한 가치와 법익을 침해한 것으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A씨가 임신 중 겪었던 우울증이 출산 직후 악화돼 극심한 산후우울증에 빠졌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혼자 아이를 돌보던 중 이성을 잃은 나머지 범행을 저질렀다"며 "A씨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일 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폭력적이거나 가학적 행동을 반복했거나, 범행이 그러한 성향이 발현한 것이라고 볼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감형이유를 설명했다.

A씨를 변호한 김은진 변호사는 "출산과 육아에 고통을 겪는 어린 엄마들을 고려한 전향적 판결"이라며 "출산과 육아를 보호하고 장려해야 하는데 사회가 이를 등한시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재판부가 참작해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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