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서울대 교수 자연과학대 생명과학부

"과학을 이루는 지식생태계가 잘 갖추어져야 훌륭한 연구업적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지식생태계는 아주 충격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단적인 예로 히틀러의 독일에서 과학자들이 탈출하면서 유럽의 과학이 무너졌고, 그 과학 생태계가 미국으로 통째로 이식되다시피 해서 미국의 과학이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유럽의 과학이 다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까지 50년이 걸렸습니다. 무너지기는 한순간인데 다시 세우기는 50년이 걸립니다. 이런 위험이 나의 나라에서도 보입니다. 기초연구에 대한 잔인할 정도의 예산 삭감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을 무너뜨리는 잘못이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됩니다."

201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대강당에서 열린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그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로스만 교수가 강연의 말미에 한 말이다. 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니면 그의 우려 덕분에 미국의 기초연구는 여전히 굳건하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상황이 2023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결말이 어떨지 걱정이다. 우려로만 끝날지 비극으로 끝날지.

과학 성과 내려면 끈기있게 기다려야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과학문화가 있어서 미국의 과학이 성장했다는 로스만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새로운 질문과 답을 찾아나서는 도전은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아주 큰 규모의 연구비가 있어서 할 수 있는 도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작은 규모도 있고 큰 연구시설과 예산과 인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구들에 대해 하나의 잣대로 성공과 실패를 가를 수 없듯이 예산도 획일적으로 책정할 수 없다.

아름드리나무도 깃털처럼 가벼운 싹에서부터 자라나온다는 옛말이 틀린 게 아니다. 그리고 모든 싹들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라지도 않을 것인데, 어떤 싹이 아름드리나무가 될지 모르니 많은 싹들을 정성껏 키워 내야 하는 것이리라. 도전적인 기초과학 연구도 정확히 그렇게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서 키워야 하는 분야가 있지만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아야 하는 풀뿌리 분야도 있음을 잊으면 나중에 선택할 다양한 싹들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기초과학에 투자를 확대해 왔는데 나온 것이 무엇이 있냐고 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겠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mRNA 백신을 개발한 분들에게 주어졌다. 혹자는 백신개발이 2~3년 전에 이루어졌는데 노벨상을 주었으니 정말 빠르고 예외적인 경우라고 말한다. 잘못 본 것이다. 이번 노벨상은 백신개발이 가능하도록 RNA의 특성을 변형하는 기초연구를 발표한 2005년 논문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 논문이 없었다면 지금의 RNA 백신은 그 부작용을 제거할 수 없어서 상용화는커녕 시도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이 그래도 상대적으로는 빨리 받았다는 점이 인정된다. 왜냐하면 평균적으로 연구업적에서 노벨상에 이르는 시간은 20~30년 정도라는 것이 정설이니까. 그러면 우리나라의 20~30년 전의 과학 수준은 어땠을까? 변변한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낼 수 있었던 것이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정도이니 그때 냈던 연구 결과가 노벨상 감이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기초연구 투자가 기록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에 10년만 더 기다려 보면 아마도 노벨상은 나올 것이다.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 기초연구의 특성이고 긴 호흡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당장 무엇이 나왔는지를 묻기 위해서도 끈기 있게 애정을 가지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고 필자는 답하고 싶다.

글로벌 R&D 확장이 퍼주기가 안되도록

그럼 기초연구는 선진국에서 하고 우리는 그 결과물만 잘 익혀서 써먹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가? 그것이 현명한 글로벌 R&D라고 한다면? 필자는 단호히 답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평생 따라가는 일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을지언정 앞서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2024년 정부 R&D 예산이 과학기술계에서는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되어 있다. 예산 삭감의 이유가 있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이유를 설명하는 정부의 거친 언행들이 연구자들의 가슴을 후볐다.

그 와중에 강조되고 있고 실제로 예산이 대폭 증가한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글로벌 R&D 예산이다. 무려 3.5배 증가라는 정부안이 국회에 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24년에 진행할 글로벌 R&D 준비를 2023년 12월에 시작해서 과연 가능할까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글로벌 R&D가 선진국의 연구업적을 베껴오거나 돈 주고 사 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끼리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수준이 맞는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아마도 모든 예산을 우리가 댄다고 해도 만만치는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과학기술은 국경이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얼마 전 미국 저명 대학의 모 학과 학과장이 체포된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은 세금탈루 혐의를 들었지만 실제는 중국과의 연구협력에서 민감한 정보를 누설했다는 의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과학기술 협력은 강화하되 그 주권 또한 강화하는 추세의 국제정세에서 우리가 잘 배우겠다는 순진한 방식으로 글로벌 R&D를 확장해서는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복잡한 매듭들을 잘 풀어내야 성공하는 것이 글로벌 R&D임을 명심하자. 그리고 당장 무언가를 이루려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자. 내년의 예산은 그런 준비를 위한 작업에 소요되기를 바란다. 글로벌 R&D 확장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졸속으로 추진해서 퍼주기 글로벌 R&D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여러 번 해 봤던 전철을 밟지 않으면 좋겠다.

과학자로 살기가 매력적이어야 할 이유

필자는 R&D 삭감위기의 이해당사자가 과학자들이라고 하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R&D 삭감위기의 이해당사자는 미래의 과학자, 또는 미래에 과학자가 될 수 있지만 과학자 되기를 선택하지 않을 많은 청소년들, 그리고 그 과학의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전 국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로 산다는 것에 매력이 남아 있지 않으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미래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지워질 것이다. 정책 입안자는 특히 이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2012년 무렵 필자의 연구실이 무대이고 필자를 포함한 과학자들이 주연이 된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됐다. 이 다큐의 목적은 과학을 하는 것이 항상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할 만한 가치와 보람이 있다는 점을 현장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지금도 온라인에서 '과학자로 산다는 것'으로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다. 2023년 한국의 R&D 삭감의 위기상황에서 과연 이 땅에서 과학자로 산다는 것은 10년 전에 비해 더 행복하고 보람이 있다고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미 많이 회자되는 내용이지만 너무나 지금의 상황에 들어맞는 부분이 있는 나치 관련 이야기를 하나만 더 들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느 목사님의 시라고 알려진 내용이다. "… 그후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들이 나를 덮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방치하면 내가 비상식적인 일을 당할 때 아무도 나와 함께 해줄 이가 남아 있지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