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임 후에도 물심지원

9일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장. 관람석에 있는 조양호(사진) 한진그룹 회장은 벅찬 감동을 느꼈다. 길고도 힘든 여정을 성공리에 마무리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었다.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가 떠올랐다. 자정을 넘긴 0시 20분, 자크로게 IOC위원장이 들어보인 흰색 종이에 쓰여 있던 ‘PYUNGCHANG 2018’. 두번의 실패, 10여년의 기다림 끝에 이뤄낸 승리였다.

조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 9월부터다. "국가적 대업에 심부름꾼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에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두번의 실패 뒤라 누구도 유치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후 2년간 34개 해외행사를 소화했다. 지구를 13바퀴 돌 수 있는 거리(50만9133km)를 누볐다.

유치 성공 이후 조 회장은 한진그룹 회장 역할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 사이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갔다. 경기장 등 시설 인프라 건설, 기업후원, 마케팅 등 모든 것이 지지부진했다.

다시 조 회장에게 조직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경기침체로 그룹 현안이 산적했음에도 불구하고, 2014년 8월 다시 돌아왔다.

당시는 조직위 출범 3년이 지난 상태였지만 아직 착공도 못한 경기장이 있었고, 후원사는 두개뿐이었다.

조 회장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깨어있는 하루의 90% 이상을 올림픽을 위해 썼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조직위 사무실로 출근했다.

조 회장 취임 100일 만에 지연되고 있던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이 착공했다. 6개 신설경기장 공사가 본궤도에 올랐고, 2개 후원사를 추가했다. 그간 불충분했던 국제스포츠계와의 소통도 강화했다.

2016년 2월, 조직위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 경기장과 각종 운영체계를 점검해보는 FIS 알파인스키 월드컵 대회가 열렸다. 예상치 못한 폭우 등으로 경기장이 제때 준비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조 회장은 해결책을 찾아 오스트리아까지 날아가는 수고 끝에 성공적으로 행사를 치뤘다.

당시 구닐라 린드버그 IOC위원은 기자회견에서 "스포츠에서 나오기 어렵지만, 100점 만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테스트이벤트는 조직위 직원들에게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러나 조 회장은 5월 3일 돌연 사임했다. 그룹 현안 때문이라 설명했지만, 의혹이 제기됐다. 국정농단으로 재판 중인 최순실씨의 청탁을 듣지 않아 ‘괘씸죄’에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임 후에도 조 회장은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조직위에는 대한항공 임원 2명 등 그룹 직원 48명이 근무 중이다. 이들의 급여는 그룹에서 지급하고 있다.

조 회장은 2016년 11월 조직위 그룹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당당하게 복귀하는 여러분의 밝은 미소를 꼭 보고 싶다”며 힘써 일해줄 것을 당부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올림픽 공식 후원사로 나서, 현금 및 항공권 등 현물을 후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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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기자 bg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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