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4주기 전날인 15일 정부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파릇파릇한 잔디 사이로 장식된 노란 리본, 노란 바람개비, 노란 배 등으로 추모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분향소 근처에서 내일신문은 청소년 3명을 만났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참사 희생자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미안한 이유는 지켜주지 못해서, 고마운 이유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줘서이다.

15일 '416민들레이야기'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다영 정혜인 최가람 양(왼쪽부터)이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 소공연장에서 내일신문과 만나 세월호 참사의 의미와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이의종


이들은 참사 당시에는 어려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가장 많은 희생자가 났던 안산에서 크면서 세월호 이야기를 주변에서 끊임없이 들었고, 이제는 당시 희생자들의 또래가 되어 그 참사가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다영(17.고2) 정혜인(15.중3) 최가람(14.중3) 양이 그들이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참사 이후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목소리를 내고 싶은 청소년들이 모인 416민들레이야기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중3이고, 고2면 학업 때문에 외부활동을 잘 못할 것 같다는 어른들의 편견이 있는데416민들레이야기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

정혜인 = 제 꿈이 초등교사인데 혹시나 교사가 되는 데 (세월호나 청소년) 활동이 혹시나 불이익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 때문에 교사 되는 데 불이익이 있다면 교사를 안 하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부모님이 해주셔서 참여하게 됐다.

최가람 = 봉사단 활동을 하다가 가입신청서를 봤다. 세월호 이후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듣는 작은 간담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다. 어른들이 청소년에 대해 가진 고정관념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 얼마 전에 제가 후배들한테 고정관념 섞인 말을 해서 나도 점점 어른처럼 변해가고 있나 싶어서 스스로가 싫어지더라. 이런 불만들을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앞장서게 된 것 같다.

이다영 = 부(副)리더를 맡고 있다. 그 전에도 청소년 선거권 활동을 해오다가 민들레이야기에 가입하게 됐다.

15일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416민들레이야기 발족식에서 청소년들이 세월호 참사 추모 플래시몹을 한 후 선언문을 읽고 있다. 김형선 기자


세월호 참사는 4년전이라 상당히 어렸을 때 일어난 일일 텐데 어떤 의미가 있나.

정 = 엄마아빠가 아침에 일어나시자마자 TV를 붙잡고 계속 근처에만 계시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자라면서 제 주위에 그 사건을 겪은 분들과 관계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 분들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들으면서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알게 됐다.

최 =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세월호 때문에 수련회를 못 갔다. 그때는 뭔 상관이 있다고 수련회를 못 가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고 우리가 뭔가 깨달아야 하는 문제구나 생각했다. 특히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이 마음에 남았다. 어른들은 항상 니네들은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상황 확인될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참사만의 문제가 아니고 청소년들에게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어른들 자체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친구들 중에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의 심각성을 못 느끼는 친구들도 많다. 이런 친구들에게도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이 = 한집에서 지내고 있던 언니가 세월호에 타고 있다가 다행히도 무사히 돌아왔다. 그 언니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밝게 웃는 언니를 봤는데 그게 더 마음이 아팠다. 위로하고 싶었지만 위로하면 언니가 더 힘들어 할 것 같아서 선뜻 하지 못했다. 참사를 겪으면서 슬프기도 했지만 어른에 대한 원망이 컸던 것 같다.

세월호 참사 이후 뭔가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가.

최 = 그 사건의 원인이 뭐였을까, 그 사건에 대해 우리가 할 말은 뭘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정 = 사건을 알게 될수록 차분해졌던 것 같다. 슬퍼만 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해결해 주지 않는 것 같다. 할 말도 많이 생겼던 것 같다. 어른들은 청소년을 무조건 애로 본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보호를 제대로 하지도 않는다. 이중잣대다.

최 = 어리기 때문에 나설 차례가 아니라고, 어른 되면 나서라고 하면서 어떨 때는 니네들이 다 컸으면서 무슨 도움을 요구하냐고 한다. 어른들은 모순되는 말을 많이 한다.

어른들이 청소년을 억압한다는 건가.

정 =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관리하는데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조용히 있는 게 가장 좋다는 말이다. 나쁜 길로 빠지면 안 된다고도 말씀하시는데 그 나쁜 길의 범주에 청소년(인권)활동이 포함되어 있다.

또 선생님들이 제 꿈을 억압하는 쪽으로 자꾸 가더라. 제 꿈은 교사인데 사람들이 보기에 최고로 높은 직업은 아니다 보니 선생님들이 나를 자꾸 설득하려고 했다. 왜 교사를 하려고 하느냐, 성적이 좋으니 다른 직업은 어떠냐 이렇게.

이 = 어른들은 우리가 아직 어리니까 생각이 짧다고 하는데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사회를 잘 만들어가고 운영하고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청소년들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산 지역 시민단체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청소년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고 하던데 설문 중 기억에 남았던 질문이 뭔가.

정 = 청소년으로 사는 것에 대한 점수를 주면 몇 점을 주겠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100점 만점에 20점 언저리 점수를 줬다. 청소년이란 학업에 집중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솔직히 다른 나라에 태어났으면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언어폭력이라고 간주될 만한 말을 많이 하고 친구들끼리도 인격을 모독하고 무시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정도면 청소년으로 사는 게 정말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최 = 그 질문에 한자리 점수나 많아 봐야 십몇점 준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구석에 처박혀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에서 청소년으로 사는 게 어떤 부분이 힘든가.

최 = 학업에 관해 강요하고 그런 게 힘들다.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학업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직업에 대한, 인생에 대한, 진로에 대한, 가정에 대한 공부일 수 있는데 너무 학업으로만 단정짓다 보니 애들은 공부는 지겨운 거라는 틀에 박혀 있다. 그런 고정관념이 박히게 된 것도 주입식 교육의 단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 =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에 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신이 중요하다. 그런데 3학년 시험에서 2개 이상 더 틀리면 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못 간다. 1년 동안 시험에서 두 세개만 틀리면 간당간당하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1년에 한두개, 두세개 틀린 게 고입을 위협하고 있는 거다.

최 = 진학하려는 고등학교가 디자인문화고인데 여기도 내신이 높으면 좋다. 작년에 최저내신이 159였다고 한다. 170, 180은 넘어야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데 지금 가내신이 193이지만 요즘 성적이 떨어져서 170이 나올까 말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 돈이 많이 들어서 돈 위주의 사회라는 게 너무 싫은 것 같다.

정 = 입시 영어학원 다니는데 같은 레벨끼리 모여 있다. 거의 비슷한 고등학교를 생각하고 있으니까 원서접수가 한 달밖에 안 남았다는 친구도 있고. 결국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신세한탄으로 시작해서 신세한탄으로 끝난다. 과학고나 외국어고 준비하는 친구들은 벌써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 친구들은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열심히 동아리도 했다고 생각했는데 진로와 관련한 동아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소서에 쓸 게 없는 상황이 되는 거다. 미술이 좋아서 미술동아리를 했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식이다.

최 = 솔직히 힘들다. 애들은 자소서에 대해 고민이 많다. 고입이나 대입이나 취직이나 다 자소서인데. 고입 준비하려면 그 이후의 대입이나 취직을 다 계산해서 준비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까 애들이 꿈이 없다. 현실적인 것에 부딪쳐서.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있어도 학비 때문에 못 가는 애들도 있다. 요즘 중3은 너무 힘들다.

정 = 초등 때만 해도 우주비행사 대통령이 꿈인 애들 진짜 많았는데 요즘은 반이 공무원이다. 경찰 소방 교직 행정공무원. 나머지는 사자 들어간 변호사 의사 같은 직업을 이야기한다. 나머지 성적이 낮은 애들은 아예 포기하고 꿈이 없다. 얘네들은 자기가 성적이 낮기 때문에 어떤 곳에도 취직할 수 없고 평생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모님에게 붙어 살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진전이 없다.

이 = 어른들이 이거 해라 해서 따라서 다 했는데 나중에 보면 자소서에 쓸 게 없어서 그동안 내가 뭘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이 하라는 건 이 쪽이어서 이쪽을 했는데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자소서를 쓰려고 하면 쓸게 없고, 반대로 동아리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 해서 좀 하면 나중에 어른들이 원하는 진로로 자소서를 쓸 때 또 쓸 게 없다. 다들 길을 잃었다.

이 사회에 대한 불만, 어른에 대한 불만, 가만히 있지 않고 얘기하고 싶다는 희망. 이런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세월호 참사 이후에 더 생각하게 된 건가.

정 =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고 나서기로 했다고 해도 그때 세월호 안에서 가만히 있었던 그분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가만히 있었던 게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최 = 참사 이후 청소년들이 용기를 가지고 나설 수 있게 됐던 것에 감사한다. 참사는 그분들의 잘못이 아니고 사회의 잘못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죄송하지만 감사하다.

이 = 저도 비슷한 마음이다. (참사 희생자들이) 저희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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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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