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규정 불구, 손실보상 사례 없어 … 경기도 "285.3㎞ 해제되면 1791억원 가치"

경기도 화성시에 땅을 가지고 있는 우 모씨는 황당한 일을 당했다. 땅의 일부가 고속도로 부지로 편입되고 남은 땅이 접도구역으로 지정돼 땅값이 떨어져 법에 규정된 손실보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소송도 했으나 패소했다.

토지보상법 제73조 제1항은 '사업시행자는 동일한 소유자에게 속하는 토지의 일부가 취득되거나 사용됨으로 인해 잔여지의 가격이 감소하거나 그 밖의 손실이 있을 때에는 그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손실보상 사례가 없다.

대법원 "도로공사 아닌 국토부에 청구" = 접도구역으로 지정되면 형질변경이나 건축행위 금지 등 엄격한 규제가 가해져 사실상 쓸모없는 땅이 된다. 우씨와 함께 접도구역으로 지정돼 땅값이 떨어진 14명은 사업시행자인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손실보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우씨 등은 2014년 3월 '잔여지 가치하락분 1억3000만원을 보상하라'는 손실보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우씨 등은 3년 4개월여 동안의 소송에서 졌다. 1심은 '도로공사는 손실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잔여지 가치하락이 발생했다는 증거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잔여지가 접도구역으로 지정돼 발생한 손실은 공익사업에 토지가 편입돼 발생한 손실이 아니라, 국토교통부 장관의 접도구역 지정이라는 별도의 행정행위에 따라 발생한 손실이므로 도로공사가 보상할 손실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16년 4월 경기도는 접도구역 자체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용역보고서를 발표했다. 하지만 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림은 경기도의 접도구역 폐지 시안 내용.


대법원도 2017년 7월 2심과 같은 판결을 했다. 도로법 제99조 제1항에서 '이 법 처분에 따른 처분이나 제한으로 손실을 입은 자가 있으면 국토교통부 장관이 행한 처분이나 제한으로 인한 손실은 국고에서 보상하고, 그 밖의 행정청이 한 처분이나 제한으로 인한 손실은 그 행정청이 속한 지자체에서 보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해당 부지를 고속도로 접도구역으로 지정한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손실보상을 청구해야지 도로공사에 청구한 것은 잘못이라는 판단이다.

손실발생해도 보상받지 못한 우 모씨 = 결국 우씨 등은 접도구역이라는 '제한(규제)'으로 인해 땅값 하락이라는 손실을 입었지만 어디에서도 보상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우씨 등은 접도구역 규제로 인한 잔여지 땅값 하락으로 인한 손실 외에 3년4개월 동안 소송에 따른 변호사 비용까지 떠안게 됐다.

사업시행자도, 정부도, 사법부도 시민의 재산권을 지켜주지 못했다. 헌법 제23조 제3항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제한은 정당보상을 해야 한다'는 조항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우씨는 국토교통부를 상대로 손실보상을 청구하지 않았을까.

접도구역으로 지정되면 토지 형질 변경, 건축행위 제한 등 엄격한 규제를 받아 재산권이 침해 당하지만 보상은 없다. 자료사진


한국부동산연구원 박성규 박사는 "토지소유자가 손실을 입증해야 하고, 토지수용위원회에 보상신청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소송을 해도 지면 또다시 변호사비용을 내야하고, 설령 소송을 통해 이기더라도 소송비용을 제외하면 실수령 보상금이 적다는 점 때문에 소유자는 이의제기나 보상청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5월 4일 국토교통부에 '도로법 제99조 제1항에 따른 손실보상 사례가 있는지' 질의했다. 국토부는 '보상사례는 한건도 없다'고 답했다.

여의도 면적 32배에 달하는 접도구역 = 접도구역이란 도로경계선에서 일정거리 이내에 지정되는 구역으로 도로를 보호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지정된다. 도로법 제40조 '접도구역의 지정 및 관리' 제1항은 '도로관리청은 도로구조의 파손방지, 미관의 훼손 또는 교통에 대한 위험방지를 위해 필요하면 소관 도로의 경계선에서 20미터(고속도로는 50미터)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접도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접도구역의 규모는 2014년말 기준으로 길이는 2만4904㎞, 면적은 274.9㎢에 달한다. 고속도로는 양쪽 각각 10m씩 51.8㎢(2588㎞), 일반국도와 지방도는 양쪽 각 5m씩 96.9㎢(9698㎞)와 126.2㎢(1만2618㎞)에 달한다. 전체 면적은 여의도 8.4㎢의 32.7배에 달하는 규모다.

제2항은 '접도구역에서는 토지의 형질변경이나 건축물, 그 밖의 공작물을 신축·개축 또는 증축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접도구역으로 지정되면 개발제한구역과 같이 엄격한 행위제한으로 사실상 쓸모없는 땅이 돼 땅값이 떨어지는 손실을 입게 된다.

대규모 해제는 과잉지정의 근거 = 접도구역으로 인한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 2016년 4월 26일 경기도는 보도자료를 통해 '도내 접도구역 285.3㎞가 해제되면 1791억원 규모의 개발가치가 유발된다'며 '도내 불합리한 접도구역 지정 해제를 통한 경제적 가치를 도민에게 환원하게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그동안 285.3㎞의 접도구역을 지정해 도민에게 1791억원 규모의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1㎞당 6.2억원의 손실을 입힌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나 경기도가 대규모 접도구역을 해제한 것은 그동안 접도구역이 과잉 지정된 증거로 해석된다. 국토부는 지난 2014년 10월 14일 전체 접도구역 면적의 22.4%에 달하는 토지 79.5㎢를 해제했다. 고속도로 접도구역을 양쪽 20m에서 10m로 절반을 줄이고, 군도는 아예 접도구역을 폐지했다. 국토부가 보도자료에서 접도구역을 축소하거나 폐지한 이유로 밝힌 것은 '도로변 토지이용 활성화와 국민불편 해소'다.

"접도구역 폐지해도 문제없어" = 경기도도 앞의 보도자료에서 '2014년말 개정된 접도구역 관리지침에 의해 지정제외 대상이 된 285.3㎞의 접도구역 해제를 추진했다. 나아가 경기도는 도로여건 및 기능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현행 접도구역 지정의 불합리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면서 폐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대신 도로구역을 절대도로구역과 상대도로구역으로 재설정하고, 상대도로구역안에 접도구역 기능을 포함시킬 것을 제안하였다. 도로구역만으로도 접도구역 기능을 포함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접도구역은 불필요한 규제인 셈이다.

대규모 접도구역 해제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나 경기도를 포함한 지정권자는 이제까지 접도구역 지정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지 않았다. 박성규 박사는 "피해완화 조치로 제도화된 매수청구는 그 실적이 미미하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낮다"며 "접도구역 과잉지정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도로 인접토지가 비효율적으로 사용되어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 도로국의 한 관계자는 "2004년 법 개정이후 고속도로 접도구역내 토지에 대한 매수는 6건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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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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