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피해 급증 추세 … 대만 범죄조직원 10만명 추산, 중국은 작년 피해 60여만건

2006년 국내에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처음 발생하고 10년이 지났지만 범죄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해 9월말 현재 피해액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면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대대적인 근절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0일 검찰의 한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발생한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의 대응에 분명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관련부처들이 협력해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은 대만의 흑사회 죽련방 조직이 처음으로 개발해 실행에 옮긴 범죄다. 1990년대 후반 죽련방 범죄연구소가 개발, 가족을 납치한 것처럼 속여 돈을 입금시키라고 협박한 뒤 인출해가는 수법과 세금 환급을 이유로 은행계좌번호를 알아낸 뒤 인출하는 수법을 이용했다.

지난해말 제주도에서는 대만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체포됐다. 이들은 제주도에 콜센터를 설치한 뒤 중국 본토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벌였다. 검거된 조직은 다국적 범죄조직인 '금오C파'로 대만 국적 51명, 중국 국적 7명, 한국인 2명 등 모두 6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이 불특정 중국인을 상대로 편취한 금액은 4억7000만원으로 2017년 4월부터 검거 시점인 12월까지 약 8개월간 벌어들인 금액이다. 한국인 이 모씨는 대만 총책으로부터 월급 개념으로 매달 400만원을 받았다.

경찰 조사결과 상담조직원들은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밤에 돌아다니지 못했으며 서로 이름을 말하지 않도록 지시를 받는 등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금융권, 보이스피싱 제로 캠페인 | 금융감독원과 경찰, 금융기관들은 이달 1일 부터 보이스피싱 제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24일 NH농협은행이 서울 수서경찰서와 함께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가두 캠페인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 NH농협은행 제공


◆동남아에 콜센터 두고 활동 = 국내에서 벌어지는 보이스피싱범죄는 초창기 대만 등의 범죄수법을 이용하고 중국인들이 공모한 범죄가 많았지만 점차 독자적인 조직을 형성하고 있다는 게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과거에는 총책이 대만 또는 중국인이 많았고 부총책으로 한국인이 포함되고 상담조직원은 조선족과 중국인 유학생, 대만인 송금책, 한국인 계좌모집책 등으로 구성된 다국적 조직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보이스피싱 단속이 강화되고 형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콜센터를 극동아시아 지역에서 동남아 등으로 옮기는 사례가 많아졌다. 주로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 서버와 콜센터를 두고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언어사용이 자연스럽지 않은 조선족은 더 이상 상담조직원으로 두지 않고, 국내에서 인력을 모집해 해외에서 훈련을 시킨 뒤 활용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대만조직인 금오C파가 국내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 범죄 조직은 필리핀과 베트남 등에 상담조직원들을 두고 국내인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인출책을 검거하더라도 콜센터 등 본거지를 일망타진 하지 않으면 근절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지난달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312명에게 '저금리로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고 속여 68억원을 가로챈 이 모씨 등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85명을 검거하고 이중 70명을 구속했다. 이씨는 보이스피싱 콜센터를 중국(옌지과 칭다오)과 태국(방콕), 필리핀(마닐라) 등에 두고 국내 전화번호를 대량 구매한 뒤 범행을 저질렀다. 신용등급이 낮아도 예외적으로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속였다. 조직원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취업이 어려운 젊은 층을 상대로 매달 500만원 수입을 보장한다고 유혹한 다음, 해외에서 감금과 폭행 등 가혹행위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광주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검거된 보이스피싱 조직은 단일 조직으로는 가장 많은 92명이었으며 이중 58명이 구속됐다. 이들은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 콜센터를 두고 범행을 저질렀다.

신상철 경찰대 교수는 "국내 범죄 조직이 독자적으로 범죄유형을 개발하고, 중국인과 합동으로 하는 형태에서 한국인이 독자적으로 동남아에 서버를 두고 범죄를 하는 조직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대만, 보이스피싱 문제로 갈등 = 보이스피싱 범죄가 처음 발생한 대만에서는 범죄에 가담하는 자국의 조직원이 10만명 가량(현지 언론 보도)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주로 중국 본토를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벌이는 조직들이다.

신 교수는 "중국은 인구가 많고 경제성장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신흥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범죄조직이 대만에 생겨난 것"이라며 "대만은 전화사기 범죄에 대한 형량이 낮고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보이스피싱 범죄자를 본토로 데려가려고 하는 반면 대만은 반대하고 있어 양국이 보이스피싱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범죄를 연구해 온 신 교수가 최근 발표한 '대만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국내 활동 분석'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대만 보이스피싱 조직은 캄보디아와 인도네시아에 콜센터를 두고 보이스피싱 범죄를 벌이다가 중국·홍콩·대만 경찰의 국제공조로 검거됐다. 인도네시아에 설치된 콜센터의 인터넷전화는 중국과 대만, 필리핀과 홍콩 등 아시아 각국에 설치된 서버를 경유하는 수법을 썼고 현지 경찰들의 공조로 검거가 이뤄질 수 있었다.

2016년에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대만인 45명과 중국인 32명 등 77명으로 구성된 보이스피싱 조직이 검거됐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케냐에 콜센터를 설치한 것이다. 케냐 정부는 범죄인들을 전원 중국으로 송환했는데 대만 정부가 재판관할권과 관련해 대만으로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국 본토에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 피해는 최근 계속 증가하고 있다. 중국 공안에 접수된 피해 사례는 지난 한해 동안 60여만건으로 2011년 10만건에 비해 6배 증가했다. 피해액은 약 3조6060억원에 달한다.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는 중국계(중국·대만) 조직원들은 대부분 20대들이고 일부는 미성년자들도 포함돼 있다. 국내에서도 청년 실업난이 가중되면서 직장을 갖지 못한 20대들이 고수익의 유혹에 빠져 범행에 가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피해 예방 차원에서 대국민홍보를 강화하는 것과 범죄조직을 뿌리 뽑기 위해 국제적으로 공조수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2015년부터 대대적으로 대국민홍보를 벌이고 '그놈 목소리' 등을 국민에게 알리면서 범죄 발생 건수가 주춤해졌지만 세간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발생 건수가 다시 증가했다"며 "홍보를 통해 국민들이 경각심을 갖고 속지 않도록 피해를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탄생한 대만, 국민들 안속아 = 신 교수도 "보이스피싱에 당하면 피해금액의 회수가 어렵기 때문에 사전에 당하지 않도록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며 "보이스피싱 사례에 대한 뉴스 보도 뿐만 아니라 드라마 내용에 보이스피싱 사례를 소개하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 자막으로 피해사례를 홍보하면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에는 10만명 가량되는 범죄조직이 있지만 자국민을 상대로 한 범행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대만 정부가 2003년 대대적으로 단속을 벌이고 국민들을 상대로 홍보를 강화한 결과 더 이상 보이스피싱에 속는 국민이 거의 없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국제적인 공조를 위해서는 현재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의 경찰청에 설치돼 있는 코리안데스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각종 범죄수사에서 활용되는 코리안데스크를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발생한 보이스피싱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찰청에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일선 지구대와 금융감독원, 금융회사와 통신사가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야간과 주말에 보이스피싱이 발생할 경우 금융회사와 통신사의 경우 야간 당직자가 없어 지금은 서로 간에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신 교수는 "이들 기관들을 핫라인으로 연결해서 골든타임 내에 자금인출을 막고 계좌추적을 통해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헌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장은 "금감원은 대국민 홍보 강화를 통해 보이스피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아지는 데 주력하고 경찰은 국제 사법공조를 통한 범죄조직 검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전화번호를 바꿔서 연락하는 소위 '변작'을 막아야 하는 등 각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각자의 역할을 해야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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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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