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연계 대부업체 193곳 조사해 수사기관 통보 … 시장 급속히 냉각, 법제도 마련 시급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상에서 자금공급자와 자금수요자가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자금 중개를 하는 P2P(Peer To Peer·개인 간) 대출 시장에 불법금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높은 사채이자로 고통을 겪는 빈민들에게 무담보 소액신용대출을 해주면서 98%의 높은 상환율을 달성했던 '그라민은행 프로젝트'를 모델로 출발한 P2P대출 시장이 당초 취지와 달리 일부 불법금융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올해 P2P대출 연계 대부업체 193곳을 9월말까지 전수조사한 결과 약 10%에 달하는 20여개 안팎의 업체를 사기혐의로 수사기관에 통보했다.


업체 점검을 다녀온 금감원 관계자는 "원금과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면서 투자자를 모은 뒤 투자금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거나 투자계획과 다른 곳에 사용한 업체들이 다수였다"며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국내 P2P대출시장은 지난해부터 급속히 성장했다. 크라우드연구소에 따르면 P2P업체의 대출취급액은 2015년 373억원에서 2016년 5916억원, 2017년 1조7111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말 누적대출액은 2조3400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성장속도가 더 빨라졌다. 9월말까지 누적대출액은 4조 2726억원으로 9개월간 2조원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월별 대출취급액이 평균 1000억원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2000억원으로 많아졌다.


◆아나리츠·루프펀딩 두 곳에서 1만2천명 피해 = 투자자들 사이에 '갓(GOD)나리츠'라고 불리던 아나리츠는 P2P대출업체 중 처음으로 대표 등 임직원 5명이 사기·횡렴혐의로 기소됐다.

금감원이 지난 5월말 검찰에 수사의뢰를 했고 한달 만에 수원지검 특수부는 아나리츠의 불법행위 전모를 밝혀냈다. 2016년 9월 영업을 시작한 아나리츠는 초기에 대출상품 1건당 투자유치금액이 1억원에 불과했지만 올해 5월에는 1건당 약 10억~30억원에 달할만큼 규모가 커졌다.

아나리츠는 1년 8개월 동안 138건의 대출상품에 대해 투자금을 모았지만 실제로 돈이 필요한 곳에 대출을 해준 상품은 10개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투자금을 받아 투자자들에 대한 상환자금으로 사용하는 이른바 '돌려막기' 방식으로 사용하거나 주식에 투자됐다. 1300억원의 투자금을 받아 978억원을 상환하는 데 사용했고 322억원을 상환하지 않았다. 검찰은 322억원 중 회수 가능한 대출채권이 112억원 가량이지만 나머지 210억원은 주식투자와 돌려막기, 회사운영비 등으로 이미 지출해서 피해회복이 어렵다고 밝혔다.

P2P대출에 대한 법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검찰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아나리츠의 계좌를 동결하고 계좌에 남은 금액을 피해금 상환에 사용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당초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된 계좌동결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사기이용계좌에 대해 즉시 지급정지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규정이다. 검찰 관계자는 "아나리츠 수사는 법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 P2P대출업체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됐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아나리츠를 검찰에 수사의뢰한 뒤 한달 만에 또다른 대형 P2P대출업체인 루프펀딩을 검찰로 보냈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루프펀딩 대표를 사기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루프펀딩은 약 8000명으로부터 투자금 400억원을 편취했다. 아니리츠가 약 4000명의 투자자들에게 300억원 피해를 입혔던 것보다 더 큰 규모다. 2개 업체에서 피해를 입은 투자자만 1만2000여명에 달했다.

루프펀딩의 '투자금 돌려막기'는 아나리츠와 동일했다.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금을 상환하는 구조로 결국은 전체 투자금이 부실화될 수밖에 없다.

루프펀딩은 부동산PF 대출 심사관련 전문인력이 없는데도 1개 건설사에 전체 대출금의 절반 이상인 900억원을 대출해줬다. 건설사 대표는 대출을 받을 당시 투자하겠다던 사업장에 실제 자금을 집행한 금액은 10억원에 불과했다. 검찰은 건설사 대표도 루프펀딩 대표와 공모해 실제 특정 부동산 개발 사업에 사용할 의사가 없었으면서 자금을 받아 편취한 혐의(사기)로 구속기소했다.

◆"투자자 관심 꺾여, 시장 어려워져" = P2P대출 투자자들이 모인 인터넷카페 '크라우드펀딩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크사모)에는 아나리츠를 포함해 8개 업체가 '먹튀 리스트'에 포함돼 있고 피해자들이 투자금 회수 등을 호소하고 있다.

금감원이 P2P대출 연계 대부업체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고 사기혐의 업체들을 검찰 등 수사기관에 통보하면서 P2P대출 시장의 급증세는 멈췄다. 7월까지 대출취급액이 매월 2000억원을 훌쩍 넘겼지만 8월과 9월에는 1000억원대로 줄었다.

크사모 운영자인 A씨는 "P2P대출 사기가 빈발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급격히 식고 시장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불법 업체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제도를 마련하고 투자자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P2P대출제도가 당초 취지대로 운영되면 투자자들은 중금리 수준의 비교적 높은 수익을 받고 돈을 빌리는 차입자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하다. 하지만 불법업체들이 난립할 경우 투자가 이뤄지기 어렵다.

검찰과 금감원은 불법 P2P대출업체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불법행위가 주춤해졌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고 보고 있다.

윤창의 금감원 부원장보는 "연계 대부업체들을 점검하면서 불법행위가 덜해졌지만 안정적으로 계속 갈 수 있는 구조는 아니고 잠정적인 상황"이라며 "P2P대출 관련 법제도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5개 법률안 계류 중, 우선 순위에서 밀려 = P2P대출과 관련한 법제도 마련의 필요성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제기됐지만 여전히 공백상태다. 5개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우선 처리 순위에서 늘 밀리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 금융당국이 당장 법제도를 마련할 것처럼 나서지만 단속을 통해 불법행위가 줄어들고 잠잠해지면 관심도 줄어든다"며 "인터넷전문은행 등 규제 완화에 주력하면서 P2P법제화에 대한 시급성은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도 아나리츠와 루프펀딩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P2P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출시장 규제를 위해 투자금 별도 관리와 공시의무 강화, 동일 차주에 대한 대출 한도 제한 등의 제도개선을 제안했다.

현재 P2P대출시장은 금융당국이 지난해 2월 발표한 'P2P대출 가이드라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법적 효력이 없는 행정지도에 불과한 상황이다. 금감원이 P2P대출업체를 검사할 법적근거도 없다. 다만 P2P대출은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대부 행위를 하는 것이어서 연계 대부업체를 통하지 않고는 불법업체로 규정될 수 있다. 금감원은 대부업체에 대한 검사권이 있기 때문에 P2P대출업체들을 간접적으로 규제할 뿐이다.

법제도가 없다보니 P2P대출채권을 '증권'으로 해석해야 할지 '대출계약'으로 봐야할지에 대한 논란도 여전하다. 현재는 대부분 대출계약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연계 대부업체를 통해 대출이 이뤄지는 구조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등록 불법대부업체가 된다. 다만 대부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중개 수수료를 받는 것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P2P대출업체들의 영업행위를 규제할 근거가 없어 투자자들은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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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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