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제출은 9월, 상임위 상정은 11월

심사기간 90일로 늘려놨지만 30일만 활용

깜깜이심사·상임위패싱 등 악순환 이어져

올해도 어김없이 예산심사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상임위의 예산심사기일을 빠듯하게 잡아 사실상 국회 스스로 예산심사권을 무너뜨렸고 예산심사 과정이 공개되지 않는 예산결산특위 소소위에 전권이 위임됐다. 그러고도 헌법에서 정한 예산안 통과시점인 12월2일까지 마무리짓지 못했다.

예산심사 파행이 관행화된 데는 국회의 책임이 크다. 우선 심사기간을 충분하게 줬는데도 국회가 스스로 확보한 심사기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야당불참 본회의 | 국회 본회의가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의원, 일부 정의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3일 오후 열렸다. 이날 본회의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은 본회의에 자동부의된 2019년도 정부 예산안 원안과 기금운용계획안 원안 등을 안건으로 올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도 예산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도 예산안이 제출된 2016년부터는 정부의 예산안제출일이 9월 3일까지로 확대해 90일간의 심사가 이뤄지도록 보장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적용됐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는 100일간의 심사기간을 줬고 1957년 2차 개헌때 120일로 늘어났다. 1963년 5차 개헌때 90일, 1973년 7차개헌때 60일로 줄었다. 2013년에 다시 90일로 늘리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2016년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예산안 심사기간 90일은 선진국그룹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인 86일과 비슷한 수준이다. 21개국 중 심사기간 가장 긴 나라는 미국으로 240일이고 그리스가 40일로 가장 짧다. 우리나라 국회의 예산 심사기간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90일간 뭐 하나 = 국회는 그러나 예산심사기간 90일 동안 많은 일들을 몰아서 해 왔다. 주요 쟁점법안 심사와 국정감사를 예산심사와 함께 정기국회 내에 진행하는 일정이 굳어져 있다.

정기국회 100일 중 초반을 교섭단체 연설 등으로 소비하고 한달 가까운 국정감사가 끝나면 11월부터 예산심사에 들어가는 게 관례다.

예사안은 회계연도 시작 30일전인 12월 2일까지 통과시키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이를 위해 국회 선진화법은11월30일까지 심사하도록 묶어놨다. 관행과 법률, 헌법이 맞물려 예산안 심사기간은 30일 안팎으로 줄어들게 됐다.

여당의 한 보좌관은 "국정감사 한 달을 하다보면 진이 빠진다"면서 "예산안은 예정처나 상임위 보고서에 의존하기 바쁘다"고 말했다.

주요 법안들이 정기국회때 다뤄지는 것도 예산안 심사를 방해하는 요인이다. 예산안과 관련된 법안을 논의할 때 다른 쟁점법안도 같이 상정되는데 이 법안들이 예산안과 얽혀 정쟁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예산안과 연관이 없지만 선거법이나 유치원 3법 등이 예산안 심사와 통과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행화된 상임위 패싱 = 예산심사기간 30일은 기본적인 일정만 잡기도 어려울 만큼 짧다. 종합심사를 하는 예산안예산결산특위의 기본일정을 소화하는 데만 20여일 걸린다. 예결위는 종합정책질의와 부별심사를 거친 후 예산안조정소위를 구성,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간다. 이때 감액심사, 증액심사 순서로 진행된다.

예결위 종합심사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이뤄지는 게 '상임위 패싱'이다. 국회의장이 예비심사기일을 지정해 그때까지 상임위에서 심사를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예결위에 넘길 수 있게 한다. 상임위 심사가 끝나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결위 종합심사를 해야 한다는 명분을 지키기 위해 상임위 심사기간을 거의 주지 않는 셈이다. 올해 상임위 상정일은 11월 1일, 예비심사기한은 11월5일이었다. 심사기간이 4일뿐이었다.

◆촉박한 시간, '나눠먹기 좋아' = 촉박한 심사기간은 결국 예결위로 모든 권한을 몰아넣어주고 공개되지 않는 회의로 넘어가 국회의원간 '짬짬이'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모 중진 의원은 "국회의 예산심사권이 사실상 무기력하고 깜깜이로 들어가는 게 국회의원들이 나눠먹기에 좋다"면서 "이런 식으로라면 굳이 상임위 심사나 예결위 심사가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관행화된 예산심사 파행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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